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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타의 여행] 가수 김기태 ① “내 노래가 위로를 준다는 말이 저를 살렸습니다”

늦게 핀 봄처럼 찾아온 가수의 시간

무명과 상처, 가족과 노래로 다시 일어선 삶

최치선 기자
[스타의 여행] 가수 김기태 ① “내 노래가 위로를 준다는 말이 저를 살렸습니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오후 2시, 서울 도산공원 앞. 김기태 가수는 검은색 세미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났다. 처음엔 조금 의외였다.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던 그는 거칠고 투박한 포크 감성의 가수에 가까웠는데, 이날 마주한 김기태는 생각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돈된 분위기였다. 요즘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타다운 옷차림이었지만, 표정과 눈빛에는 여전히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단정했지만 가벼워 보이지 않았고,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오래 참아온 사람의 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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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공원에서 김기태 가수(사진=민동근 국장)

 

촬영을 위해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산수유꽃이 막 피기 시작한 시기였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푸른 기운을 충분히 올리지 못했고, 평일 오후의 공원은 한산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대신 공기에는 여유가 있었다. 스타의 화려함을 덧칠하기보다, 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분위기였다. 

 

사진작가이자 트래블아이 민동근 사진국장이 카메라를 들고 김기태의 표정을 따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오래전 연예기자 시절의 기억도 떠올랐다. 오프라인 잡지가 강했던 시절에는 채시라, 최진실, 심혜진, 김혜수, 이정현, 최지우, 황신혜, 엄정화, 정우성, 이정재, 장동건, 김민종, 안재욱, 송강호, 한석규, 안성기, 최민수, 최재성, 김보성 등 90년대 를 주름잡던 남녀스타들을 인터뷰 했었다. 이렇게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을 인터뷰하며 살았던 시간들. 그러다 의료·일반, 여행 매체로 자리를 옮겼고,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김기태를 만나니 이상하게 그 시절의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인터뷰라는 일이 사람의 얼굴보다도 그 사람의 시간을 듣는 일이라는 사실도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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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가수(사진=민동근 국장)

 

30분가량 촬영을 마친 뒤 우리는 지엠엘 도산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묵직한 커피 향, 창가로 기울던 오후의 빛이 인터뷰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김기태는 1시간 가까이 자신의 삶을 풀어놓았다. 다만 그것은 흔한 성공담도, 스타의 화려한 비하인드도 아니었다. 버틴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고, 노래가 어떻게 삶의 마지막 끈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부터는 가수 김기태가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저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 제 노래만 보고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처럼 생각하시는데, 사실 저는 열아홉 살까지도 노래를 잘하지 못했어요. 적어도 제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많이 우울했습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꿈이 분명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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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그냥 막연하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행복해지려면 뭘 해야 하는지, 뭘 잘하는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결정적으로 부모님의 이혼이 제 삶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고, 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어요. 그때는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많았습니다. 상실감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버려졌다는 감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 아주 단순한 목표 하나로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면, 어머니도 나를 보게 되겠지. 내가 성공한 모습을 보면,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복수일 수도 있겠다. 지금 돌아보면 어린 마음의 상처였고, 서툰 다짐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저를 움직이게 하는 아주 강한 감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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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가수 (사진=민동근 국장)

 

처음부터 노래만 하며 살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현실은 더 냉정해졌고, 저는 기획사에 다니던 것도 접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사실상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됐어요.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배달 일을 했습니다. 몸으로 버는 일이었죠. 하루가 참 길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움직여야 했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리고, 시간에 쫓기면서 계속 뛰어다녀야 했어요. 어떤 날은 비를 맞으면서 일했고, 어떤 날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다리가 퉁퉁 부은 채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손은 거칠어지고, 어깨와 허리는 늘 뻐근했고, 씻고 나면 잠깐 주저앉고 싶은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렇게 몸이 무너진 날에도 노래를 하러 갔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그때 저에게 노래는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배달을 하며 버는 돈은 살아남기 위한 돈이었고, 노래는 살아 있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이었어요.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노래를 했습니다. 그 말은 정말 그대로입니다. 쉬는 시간은 거의 다 노래에 썼고, 홍대 거리로 가서 버스킹을 하거나, 작은 무대라도 설 수 있으면 어디든 갔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일해서 번 돈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됐을 수도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일했는데, 그 돈을 다시 노래하는 데 쓴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보였겠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라도 노래를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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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제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참 멋있는 분이셨어요. 저는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먼저 그 얼굴이 떠오릅니다. 잘생기셨고, 묵묵했고, 아들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던 분이셨어요. 제가 노래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아버지의 후원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넌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저는 압니다. 저는 그 믿음 덕분에 버텼습니다. 세상은 저를 몰라도 아버지는 저를 믿어주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조금 더 큰 기회를 잡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 참 힘들었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어요. 아버지가 떠난 뒤 저는 완전히 지하로 내려간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 시절 저는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완전한 지하방에서 살았어요. 연습실과 숙소를 함께 쓰는 공간이었는데, 말이 좋아 공간이지 사실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곳이었습니다. 아침이 와도 아침 같지 않았고, 밤이 돼도 제대로 쉬는 느낌이 없었어요. 햇빛이 안 드는 방이라는 건 사람 마음까지 조금씩 가라앉게 만듭니다. 문을 열어도 공기가 바뀌지 않는 것 같고, 오늘과 내일이 비슷하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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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그때 제가 살 수 있었던 건 정말 순전히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어요. 무대가 크든 작든 상관없었습니다.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생계는 늘 문제였죠. 일해서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먹고, 버텨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노래를 할 때만은 제가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 한쪽 구석에 있더라도, 저는 분명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특히 팬들과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지금처럼 큰 무대가 아니라, 정말 작은 공간이었어요. 버스킹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걸어줄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노래 듣고 위로받았어요.’ ‘힘든 일이 있었는데, 노래 듣고 조금 울고 나니까 마음이 나아졌어요.’ ‘김기태 씨 노래가 오늘 저를 살렸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내일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떤 사람은 제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처음 느꼈습니다. 아, 나도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 수 있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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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엘 커피전문점에서 김기태 가수(사진=민동근 국장)

 

제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은 그때 제 마음에서 나온 겁니다. 비록 돈은 벌지 못했지만, 제 노래에 감동하고 제 노래에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는 말에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세상에 필요한 존재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감정은 저한테 살아갈 이유가 됐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루를 한 번 더 버티게 하는 이유. 내일도 다시 노래하러 가게 만드는 이유. 그게 생긴 거예요. 저는 그 힘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중반쯤이었는데, 저한테는 정말 생과 사를 가를 만큼 큰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송 출연을 경력의 한 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달랐습니다. 그건 그냥 방송이 아니라, ‘이제 나에게도 한 번쯤 문이 열리는 건가’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무대 덕분에 김기태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제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 한 번 나갔다고 삶이 갑자기 달라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여전히 버텨야 했고, 여전히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었습니다. 길이 아주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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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제 인생을 크게 나누면 결혼 전과 후, 그리고 ‘싱어게인2’ 전과 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내와 아들 로하가 제 삶에 들어온 뒤로는 정말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이건 그냥 행복해졌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인생의 기운 자체가 바뀌었다고 느꼈습니다. 로하가 태어나고 나서 제 삶이 너무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어요. 방송 출연이 이어지고, ‘싱어게인2’에서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저는 정말 실감했습니다. 

 

김기태 “아내와 로하가 온 뒤, 제 인생의 기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 사람 인생에는 어떤 기운이라는 게 있구나. 그리고 그 기운은 누군가를 통해 찾아오기도 하는구나. 저한테는 그게 아내와 아들 로하였습니다. 그 둘이 제 삶에 들어온 뒤부터는, 제가 혼자 버티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예전에는 하루를 견디기 위해 살았다면, 그 후부터는 분명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저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사람을 완전히 바꾸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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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저는 후배들이나 무명가수들에게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노래를 놓지 않고 있는 당신은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요.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당신에게 올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갈 거라고요. 저는 제가 특별한 재능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한 게 있다면 정말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날도 많았지만, 결국 다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힘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믿습니다.

 

돌아보면 제 삶은 처음부터 봄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긴 겨울이 더 많았고, 어두운 시간도 많았고, 혼자 견뎌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오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봄은 빨리 오는 사람에게만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늦게 오더라도 결국은 옵니다. 중요한 건 그때까지 내가 나를 놓지 않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노래를 놓지 않았고, 삶을 놓지 않았고, 저를 믿어준 사람들의 마음도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무대에 설 때마다 같은 마음을 떠올립니다. 제 노래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사실 저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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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공원 촬영현장(사진=최치선 기자)

 

지엠엘 도산점 창가의 오후는 고요했다. 커피잔 사이로 스며든 빛은 과하지 않았고, 김기태의 목소리는 그 빛처럼 담담하게 흘렀다. 그는 처음부터 환하게 빛난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 어둠을 견디며 자기 계절을 기다려온 사람에 가까웠다. 쉽게 꺾이지 않았고, 늦더라도 끝내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 앞에 선 사람. 그날 우리가 마주한 것은 가수 김기태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의 깊이였다.

 

김기태에게 노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도, 성공을 위한 무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붙잡았던 마지막 끈이었고, 동시에 누군가를 위로하며 스스로도 살아남게 한 이유였다. 그는 무명 시절 수없이 작은 무대에 섰고, 큰돈도 큰 명예도 없는 자리에서 먼저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다.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를 울리고, 위로하고, 다시 버티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결국 김기태 자신도 살려냈다.

 

가수 김기태는 지난해 JMG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 폭을 넓히고 있으며, 2026년 3월에는 신곡 ‘사랑한 후에(2026)’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긴 무명의 시간을 건너 여기까지 온 그의 현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부에서는 김기태 가수의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대 위의 가수가 아니라 길 위의 사람으로서의 김기태다. 그는 어디에서 쉬고, 어떤 풍경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지, 왜 여행이 그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되는지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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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명곡 김기태 가수(제공=J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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