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식물원은 늘 좋지만, 솔직히 조금 어렵기도 했다. 이름은 낯설고 동선은 헷갈렸고, 어디부터 봐야 할지 몰라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치는 공간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이 그 불편을 정면으로 손봤다. 40년 동안 유지해온 식물원 전시관 명칭과 안내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올해 1월부터 숫자형 동선 안내체계를 도입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는 복잡하게 헤매지 않아도 된다. 숫자만 따라가면 식물원이 훨씬 쉬워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름이다. 기존의 기후대 중심 명칭 대신 선인장관, 열대식물관, 난대식물관, 식충식물관처럼 식물의 특성이 바로 떠오르는 이름으로 다시 정리했다. 낯선 분류 체계에 기대기보다,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택한 셈이다. 여기에 공간마다 번호를 붙여 선인장관에서 시작해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식충식물관까지 주요 전시공간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어렵고 딱딱한 식물원이 아니라, 처음 가는 사람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식물원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번 개편이 반가운 이유는 단순히 표지판을 바꾼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은 전시온실 관람을 식물표본전시관까지 이어지는 통합 코스로 묶었다. 식물표본전시관은 식물 진화를 보여주는 전시실, 식물과 생태계의 관계를 다루는 환경전시실, 식물도서관, 식물갤러리 등 4개 특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는 온실 관람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식물의 시간과 생태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다. 서울대공원 식물원은 2023년 말 기준 전시·재배·야외주제원을 합쳐 1587종, 16만8686본을 보유하고 있어, 한나절 코스로도 제법 밀도 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혼자 가도 심심하지 않도록 장치도 넣었다. ‘나혼자 식물원 투어!’는 전시온실과 야외주제원의 주요 수종 30종을 대상으로 QR 기반 시청각 정보를 제공하는 자기주도형 프로그램이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식물의 특징과 생태를 스스로 확인하며 걸을 수 있어, 설명판 몇 줄 읽고 지나치던 예전보다 훨씬 몰입감이 크다. 여기에 3월부터는 ‘이달의 식물’과 연계한 ‘식물 MBTI’ 콘텐츠도 더해졌다. 식물의 생태적 성향을 성격 유형처럼 풀어내, 관람객이 자신과 닮은 식물을 찾아보는 방식이다. 가볍지만 낯선 세계를 친근하게 여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서울대공원은 3월의 식물로 알로에를 선정해 관련 MBTI 콘텐츠를 공개했다.
봄철 나들이지로서의 조건도 나쁘지 않다. 서울대공원 식물원 전시온실과 식물표본전시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입장 마감은 오후 4시 30분이다. 야외 주제원은 3~4월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다. 전시온실이 실내 공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시기에도 부담 없이 찾기 좋다. 익숙한 동물원 코스에 가려졌던 식물원이 이번 개편을 계기로 별도의 목적지가 될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좋은 공간은 설명을 덜어낼수록 더 가까워진다. 서울대공원 식물원은 이번 개편으로 그 단순한 원칙을 보여줬다. 숫자를 따라 걷고, QR로 듣고, 식물의 성격까지 상상하며 머무는 시간. 봄의 식물원은 더는 어려운 공부방이 아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고, 생각보다 오래 남는 서울의 초록 산책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