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기억이 흐려질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극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마음을 붙들어주는 시간일지 모른다. 포천시가 국립수목원과 손잡고 정원 자원을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 ‘기억이음’ 참여자를 모집한다. 대상은 경도인지장애군과 치매고위험군이며, 프로그램은 5월 4일부터 9월 7일까지 격주 월요일마다 모두 10차례 진행된다. 경기도광역치매센터 공지에는 이 사업이 포천시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으로 안내돼 있다.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은 병원이나 강의실이 아니라 정원이다. 포천시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국립수목원 내 치유정원과 산책로 등을 활용해 정원관리, 식물관찰, 정원작품 만들기, 명상활동 등을 경험하게 된다. 정원치유 전문인력과 치매 전문인력이 함께 참여하고, 사전·사후 검사도 진행해 효과를 살필 계획이다. 포천시 보건소 역시 치매예방 및 인지강화교실에서 작업치료, 원예, 운동, 미술 등 다양한 인지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장소의 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포천 소흘읍에 있는 국립수목원은 광릉숲의 시간 위에 세워진 공간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이 일대 숲은 조선 세조의 능인 광릉 주변 보호림에서 출발했고, 지금의 국립수목원은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됐다. 예약제로 운영될 만큼 숲의 밀도와 보존 가치가 높아, 걷는 것만으로도 공기의 결이 달라지는 곳으로 꼽힌다. 테마정원과 숲길, 수생식물원, 생태 관찰로가 잘 갖춰져 있어 단순한 관람을 넘어 천천히 머무는 체험에 잘 맞는다.
정원치유의 가능성도 이미 여러 차례 확인돼 왔다. 국립수목원은 2021년 10개 기관과 함께 정원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참여자들이 우울·불안·활력·삶의 질·마음챙김 등 여러 영역에서 긍정적 효과를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프로그램에는 치매 환자와 가족도 참여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기억이음’은 이런 국립수목원의 축적된 경험이 포천 지역 치매예방 사업과 만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포천은 대개 한탄강이나 산정호수 같은 풍경 여행지로 먼저 떠오르지만, 국립수목원은 그보다 조용하고 깊은 방식으로 사람을 쉬게 하는 공간이다. 바람이 지나가는 숲길을 따라 걷고, 식물의 변화를 눈으로 좇고, 작은 정원 작품 하나를 손으로 만드는 일은 화려하진 않아도 오래 남는다.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수목원은 초록의 농도가 매주 달라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자연의 변화를 차분히 체감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이는 포천이 가진 자연자원이 단순한 관광 자원을 넘어 돌봄의 공간으로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포천시 치매안심센터는 현재도 치매예방 및 인지강화교실, 가족교실, 힐링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기억이음’은 그런 지역 돌봄 체계에 국립수목원의 정원과 숲을 결합한 특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시가 가진 가장 좋은 자연을, 가장 섬세한 돌봄이 필요한 시민에게 연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떤 치유는 약보다 먼저 풍경에서 시작된다. 포천의 ‘기억이음’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숲길을 천천히 걷고, 꽃과 잎을 들여다보고, 정원 안에서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일. 잊히는 것을 붙잡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또렷하게 돌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봄과 여름, 포천의 숲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기억을 이어주는 정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