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유물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다. 한 도시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를 기억하며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보여주는 가장 조용한 증언이다. 포천이 이번엔 그 증언을 한자리에 모은다. 오는 4월 3일 포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2026년 포천역사문화관 학술대회’는 ‘유물로 보는 포천의 인물과 문화’를 주제로, 지역의 역사 인물과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포천의 문화적 결을 다시 들여다보는 자리다.
이번 학술대회는 단순한 연구 발표회라기보다, 포천이라는 도시를 읽는 방식에 가깝다. 기조연설에 이어 세 편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지는데, 발표의 무게중심은 ‘인물’과 ‘유물’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름만 남은 역사 인물을 교과서 바깥으로 불러내고, 문집과 병풍, 필사 자료 같은 실물 유산을 통해 그들의 사유와 미감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방식이다. 지역사 연구가 행정의 기록을 넘어 시민의 체감으로 옮겨가는 장면이라 할 만하다. 행사 문의처 역시 포천시 문화체육과 박물관팀으로 안내되고 있어, 이번 학술대회가 포천역사문화관의 연구·운영 축과 맞물려 추진되는 행사라는 점도 읽힌다.
첫 발표는 무호암 윤필병과 「무호암집」을 다룬다. 지역에서 배출한 문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다시 짚는 작업은, 지방의 문학사가 중앙 문단의 그늘에 가려져 온 오랜 관성을 뒤집는 일과도 닿아 있다. 두 번째 발표는 포천 출신 근대 소설가 이해조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다. 이해조는 「자유종」, 「봉선화」 등을 남기며 신소설 확립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 세계를 포천이라는 지역성과 함께 읽어보는 이번 발표는, 근대문학의 형성과 지역의 문화 토양을 함께 바라보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 번째 발표는 ‘금인명 병풍’과 「미수첩」 속 ‘심잠’을 중심으로 허목의 서예와 학문세계를 살핀다. 허목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서예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 만큼, 이번 발표는 단지 한 점의 유물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옛 글씨에 담긴 정신사까지 확장해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유물 한 점이 시대의 취향과 학문, 수양의 태도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대목이 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학술대회가 박물관과 도시의 현재를 함께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천역사문화관은 2017년 7월 포천시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문을 열었고, 지금도 자료 수집과 조사·연구, 전시와 교육을 통해 지역의 문화유산을 축적하고 있다. 최근에도 기증 예정 유물과 구입 예정 유물의 화상자료를 잇달아 공개하며 소장 기반을 넓혀왔고, 포천시는 이를 포천시립박물관 건립 추진과도 연계하고 있다. 학술대회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박물관 콘텐츠를 두텁게 쌓아가는 긴 흐름 위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여행의 시선으로 보면 이번 행사는 더 흥미롭다. 봄의 포천은 대개 산정호수나 한탄강, 허브아일랜드 같은 풍경 명소로 먼저 떠오르지만, 도시의 속살은 늘 풍경 바깥에 있다. 포천역사문화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포천문화원 1층에 자리해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학술대회가 끝난 뒤 역사문화관을 찾아 전시를 둘러보면, 이날 발표에서 언급된 ‘포천의 인물과 문화’가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손에 닿을 듯한 장면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봄나들이가 눈의 여행이라면, 이런 일정은 기억의 여행에 가깝다.
이번 행사의 진짜 의미는 거창한 구호보다도, 지역의 역사를 지역 스스로 설명하려는 태도에 있다. 유명 관광지 하나가 도시를 알릴 수는 있어도, 도시의 품격을 만드는 것은 결국 축적된 서사다. 포천이 유물과 인물을 다시 꺼내 드는 일은 과거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민에게는 자기 고장을 새롭게 이해하는 기회가 되고, 방문객에게는 풍경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깊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역사와 문화가 여행의 배경이 아니라 목적지가 되는 순간, 포천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
봄은 대개 꽃으로 시작되지만, 어떤 도시는 이야기를 먼저 피워 올린다. 포천의 4월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그런 계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래된 문집 한 권, 병풍 한 점, 필사된 글귀 몇 줄이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눈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쉽다면, 이번엔 포천의 유물과 인물을 따라가 보자. 풍경 뒤에 숨어 있던 도시의 시간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