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봄의 도시는 결국 걷는 사람이 완성한다. 꽃이 피는 계절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봄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계절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천천히 걸으며 자기 몸 안으로 봄을 들인다. 순천시가 시민들의 일상 속 걷기 실천을 유도하기 위해 ‘2026년 시민 걷기왕 선발대회’를 시작한 배경에도 그런 생각이 깔려 있다.
관광도시로 알려진 순천이 이번에는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 스스로 건강한 생활 리듬을 만드는 도시 실험에 들어갔다. 이번 대회는 3월 23일부터 10월 28일까지 약 8개월간 진행되며, 스마트폰 걷기 앱 ‘워크온’ 순천시 커뮤니티 가입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참여 희망자는 4월 3일까지 순천시보건소 2층 운동영양실을 방문해 사전 인바디 검사를 받고 워크온 가입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한 만보기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참가자는 4월 6일부터 9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120만 보 이상 걷기에 도전해야 한다. 조건도 세세하다. 하루 걸음 수는 1만 보까지만 인정되고, 매월 10일 이상 꾸준히 걸어야 한다. 많이 걷는 사람보다 꾸준히 걷는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무리한 단기 몰아치기 대신 생활 속 습관을 만들자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챌린지가 끝난 뒤에는 사전·사후 인바디 검사 결과를 비교해 120만 보 이상을 달성하고 체지방량 3kg 이상 감량한 시민을 우선으로 ‘시민 걷기왕’ 100명을 선정한다. 선정자에게는 순천사랑상품권 3만원이 지급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보건소의 개입 방식이다. 참가자에게는 단순히 앱만 깔아주는 것이 아니라, 인바디 결과를 바탕으로 운동처방사와 영양사가 맞춤형 운동 지도와 영양 상담을 제공한다. 걷기를 중심으로 식습관과 체성분까지 함께 관리하는 구조다. ‘걷기왕’이라는 이름은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 프로그램은 생활습관 교정에 가깝다. 지방자치단체의 건강정책이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와 상담을 결합한 생활밀착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순천이라는 도시의 결을 생각하면 이 사업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순천은 애초 걷기 좋은 도시 구조를 꾸준히 넓혀온 곳이다. 순천 관광 공식 안내에는 남파랑길 61·62코스 같은 ‘마냥걷기’ 코스가 소개돼 있고, 동천과 순천만국가정원을 중심으로 걷고 머무는 동선이 도시 이미지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순천만국가정원은 2015년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뒤 순천의 대표 공간이 됐고, 정원 안팎에는 대체로 원활한 보행이 가능한 길과 쉼의 구조가 잘 갖춰져 있다. 순천시가 관광정책에서 보여준 ‘걷는 도시’의 감각을 이제 시민 건강정책으로 이어 붙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순천의 봄은 걸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동천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과 녹지, 국가정원으로 흐르는 보행 동선은 이 도시의 일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풍경이다. 순천시는 최근 동천 수변공원과 이팝나무 산책로, 잔디 공간 등을 확충하며 시민이 자연 속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생활형 녹지 공간을 넓혀 왔다. 정원과 강변, 산책로와 공원이 한 덩어리로 연결되는 구조는 건강도시 정책과 맞물릴 때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걷기 실천을 독려하는 정책이 공허하지 않은 이유다. 시민은 실제로 걸을 길이 있고, 쉬어갈 공간이 있으며,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풍경이 있다.
무엇보다 이 대회는 ‘건강’이라는 말을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헬스장 등록이나 고강도 운동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걷기는 가장 낮은 문턱의 실천이다. 특별한 장비도, 복잡한 기술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 하나와 매일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대신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체지방 3kg 감량이라는 기준은 적당한 산책 몇 번으로는 닿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반복과 지속이다. 도시가 시민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고,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한 번 더 걷고, 내일 또 한 번 더 걸으면 된다는 것이다.
관광의 언어로 보더라도 흥미로운 장면이다. 많은 도시가 외지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형 축제와 이벤트를 앞세운다. 그러나 도시의 품격은 결국 주민이 자기 동네를 얼마나 잘 걷고 있느냐에서 드러난다. 걷는 사람 많은 도시는 풍경을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풍경을 살아내는 도시다. 순천이 봄마다 꽃과 정원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그 경관을 천천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보행의 리듬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걷기왕 선발대회는 시민 건강정책인 동시에 순천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다시 확인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걷기 좋은 길이 있고, 그 길을 걷도록 권하는 행정이 있을 때 도시는 비로소 사람의 몸에 가까워진다.
순천의 봄은 꽃만으로 오지 않는다. 강가를 따라 한 걸음 더 내딛는 발끝, 정원 사이를 천천히 지나는 호흡, 매일의 걸음을 기록하는 작은 습관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2026 시민 걷기왕 선발대회’는 누가 가장 많이 걷느냐를 겨루는 행사가 아니다. 계절을 핑계 삼아 자기 몸을 다시 돌보고, 도시를 자기 속도로 다시 만나는 일에 가깝다. 순천은 지금, 관광지의 풍경을 넘어 시민의 걸음으로 봄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