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봄은 어느 도시에서나 오지만, 순천의 봄은 유독 오래 머문다. 3월 초 붉은 홍매화가 먼저 문을 열고, 동천을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번지더니, 국가정원에는 튤립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벚꽃이 다 진 뒤에도 끝이 아니다. 산사에는 겹벚꽃이 남아 있고, 마을 담장 곁에는 산수유와 철쭉이 이어진다. 순천의 봄은 한순간의 절정으로 끝나는 계절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천천히 피어나는 긴 장면에 가깝다. 순천시가 올해도 순천만국가정원, 동천 벚꽃길, 선암사, 낙안읍성, 드라마촬영장 등을 잇는 봄 여행 콘텐츠를 본격 운영하며 상춘객 맞이에 나섰다.
가장 먼저 봄 소식이 닿는 곳은 탐매마을이다. 순천시는 3월 초 이 일대 홍매화를 순천 봄의 시작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탐매마을에서 매산등 근대문화유산 거리로 이어지는 길은 화려하다기보다 조용하고 단정하다. 붉은 꽃이 오래된 거리와 만나면 봄은 풍경이 아니라 기억처럼 다가온다. 순천의 봄이 좋은 이유는 꽃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의 층위를 함께 걷게 한다는 데 있다.
도심에서는 동천 벚꽃길이 중심축이 된다. 순천시는 동천 일대 약 10km 수변 산책로를 따라 벚꽃길을 대표 봄 명소로 내세우고 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연분홍 터널은 관광지를 보는 느낌보다 도시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아침엔 산책하는 시민들이 지나가고, 오후엔 돗자리를 편 가족과 연인이 머문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 동천은 순천의 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순천만국가정원은 봄 여행의 무게중심이다. 국가정원 공식 안내에 따르면 정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봄철에는 튤립과 각종 계절초화가 정원의 표정을 바꾼다. 특히 네덜란드정원은 풍차와 튤립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으로 잘 알려져 있고, 올해 순천시는 3월 28~29일 정원에서 휴식 프로그램 ‘가든멍’을 연다. 뜨개질과 독서, 필사 같은 느린 행위를 정원 한가운데 풀어놓는 방식이다. 4월 초에는 ‘정원 봄꽃 피크닉’과 ‘국가정원 튤립 페스티벌’도 예고돼 있어, 꽃을 보는 여행에서 꽃 사이에 머무는 여행으로 무게가 옮겨간다.
벚꽃이 끝난 뒤에는 선암사가 봄의 바통을 넘겨받는다. 순천 선암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이 절은 매화와 겹벚꽃이 차례로 이어지며 남도 봄의 마지막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4월 중순 무렵 피는 겹벚꽃은 일반 벚꽃보다 꽃잎이 두텁고 풍성해 산사의 고요와 묘한 대비를 만든다. 순천시는 4월 한 달 동안 선암사를 배경으로 야생차 블렌딩과 다도를 결합한 ‘차(茶) 오르는 봄 투어’도 운영할 예정이다. 꽃을 보는 눈과 쉬는 마음을 함께 데려가는 코스다.
순천의 봄은 정원과 꽃길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낙안읍성에 들어서면 초가 담장 옆으로 피는 봄꽃이 조선의 시간을 불러오고, 드라마촬영장에선 옛 교복 체험과 복고 풍경이 여행의 결을 바꾼다. 봄볕 아래 유채가 번지는 언약의 집 주변 풍경까지 더하면, 순천은 자연·전통·레트로가 한 도시 안에서 겹쳐지는 드문 여행지가 된다. 특정 명소 한 곳만 반짝하는 도시가 아니라, 하루 종일 천천히 이동하며 계절의 밀도를 체감하게 하는 도시다.
게다가 순천시는 올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숙박과 체험을 묶은 ‘봄날의 쉼표, 반값’ 지원사업도 추진 중이다. 꽃이 피는 시기와 도시형 체류 프로그램을 함께 엮어, 순천을 스쳐 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쉬어가는 여행지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요란한 축제보다 머무름의 리듬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올해 순천의 봄은 더 선명하다.
봄 여행은 대개 짧다. 개화 소식에 맞춰 서둘러 다녀오고, 절정이 지나기 전에 사진 몇 장 남기면 끝난다. 그런데 순천의 봄은 조금 다르다. 매화에서 벚꽃으로, 튤립에서 겹벚꽃으로, 다시 철쭉과 장미로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이 도시 전체를 길게 끌고 간다. 한 장면을 찍고 돌아서는 여행보다, 천천히 걷고 잠시 앉아 쉬는 여행이 어울리는 곳. 올봄 순천은 꽃을 보러 가는 도시가 아니라, 봄의 속도를 다시 배우러 가는 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