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안양에서 나고 자라고 머문 시간이 작품이 되는 순간이 있다. 도시의 골목과 학교, 작업실과 창문 밖 풍경이 쌓여 한 사람의 시선이 되고, 그 시선은 결국 한 도시의 표정이 된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오는 3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 ‘2026 안양연고작가 공모’를 진행한다. 이번 공모는 안양에 뿌리를 둔 시각예술가를 발굴해 시민 앞에 세우는 사업으로, 평면·입체·설치·뉴미디어 등 시각예술 전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이번 공모의 핵심은 단순한 1회성 지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정 작가에게는 초대전 개최, 평론가 매칭, 도록 발간이 지원되고, 일부 작품은 매입을 통해 지역의 공공미술 자산으로 축적될 예정이다. 재단의 2026년 주요업무 계획에도 안양연고작가 공모와 전시 개최, 창작지원이 포함돼 있어, 지역 미술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이 분명하다.
신청 자격도 비교적 폭넓다. 안양 출생자, 안양 소재 학교 졸업자, 공고일 기준 안양 거주자 또는 작업실 소재지가 안양인 작가라면 지원할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전 1회 이상 또는 그룹전 2회 이상의 창작활동 실적을 갖춘 시각예술가라면 문이 열린다. 지원자는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 서식을 내려받아 포트폴리오와 함께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공고문은 3월 19일 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됐다.
이 공모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안양이라는 도시가 이미 예술의 기억을 꽤 오래 품어온 공간이기 때문이다. 안양예술공원 일대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공공예술 작업이 축적돼 있고, 안양파빌리온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조형예술 건축물로 지금도 도시 예술의 상징처럼 읽힌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안양아트센터, 평촌아트홀, 안양파빌리온, 김중업건축박물관 등 지역의 주요 문화 거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역 작가 공모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문화 기반 위에서 다음 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보이는 이유다.
실제로 이 사업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재단 자료실에는 지난해 안양연고작가 발굴지원전 도록도 올라와 있다. 지역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로 연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는 뜻이다. 예술지원 사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선정’보다 ‘지속’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올해 공모 역시 안양 미술계의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눈에 띄는 스타 한 명을 뽑는 일이 아니라, 지역에 남아 작업하는 예술가들의 시간을 공공이 함께 지탱하는 일에 가깝다.
여행의 시선으로 보아도 이런 공모는 의미가 작지 않다. 도시는 유명 관광지 몇 곳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을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은 그 지역만의 생활감과 문화의 결이다. 지역 연고 작가들의 작품은 안양을 배경으로 소비하는 풍경이 아니라, 안양 안에서 살아낸 시간의 감각을 보여준다. 시민에게는 자기 도시를 새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고, 외지인에게는 안내서에 없는 안양의 내면을 만나는 통로가 된다.
지역 문화정책이 힘을 얻으려면 화려한 이벤트보다 오래 남는 축적이 필요하다. 한 번의 전시가 끝난 뒤에도 작가의 이름이 남고, 작품이 기록되고, 일부는 도시의 자산으로 쌓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모는 신진과 중견 사이, 지역성과 공공성 사이를 잇는 작지만 단단한 발판으로 보인다. 안양이 예술가를 키우는 도시라는 말을 증명하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런 공모 하나를 얼마나 성실히 이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은 거대한 건물보다 그 안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안양연고작가 공모는 지역 예술가의 이력을 한 줄 보태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이다. 안양의 시간을 통과한 작가들이 어떤 작품으로 시민 앞에 설지, 이번 봄 공모가 그 첫 장면을 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