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울산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은 먼저 공장과 항만, 거대한 산업단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오래된 시작을 더듬어 올라가면 끝내 닿는 이름이 있다. 쇠부리다. 토철이나 철광석을 제련로에 넣어 녹여 쇠를 얻는 전통 제철 과정을 뜻하는 순우리말. 농기구를 만들고, 병기를 만들고, 삶을 지탱하는 쇠를 빚어내던 이 말은 울산 산업사의 가장 깊은 바닥에 놓여 있다. 그래서 울산쇠부리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오늘의 산업도시 울산을 만든 뿌리를 시민의 언어와 몸짓으로 다시 불러내는 시간에 가깝다.
2026 울산쇠부리축제는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울산 북구 달천철장과 북구청 광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제22회를 맞는 이 축제는 2005년부터 이어져 온 국내 대표 철문화축제로, 한국관광공사 지역축제 정보에도 국내 유일무이한 철문화축제로 소개돼 있다. 무료로 진행되며, 울산쇠부리축제 추진위원회가 주최·주관한다.
축제의 중심에는 달천철장이 있다. 이곳은 원삼한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철을 생산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철산지로 알려져 있다. 울산의 산업적 정체성을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에서만 찾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오래전부터 이 땅은 쇠를 다루던 곳이었다. 달천철장의 시간은 울산이 왜 산업도시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오래된 서문 같은 것이다. 축제는 바로 이 현장을 무대로 삼아 쇠부리의 기술과 소리, 불꽃과 노동의 감각을 시민이 함께 체험하도록 꾸민다.
행사 내용도 제법 풍성하다. 공식 축제 소개에 따르면 쇠부리기술과 쇠부리소리, 쇠부리대장간 같은 철문화 재현 프로그램이 중심축을 이루고, 공연 부문에서는 희망불꽃점화식, 타악페스타 ‘두드리’, 꿈부리 콘서트, 쇠부리 ‘흥’가요제, 시민콘서트 ‘너.나.두.’, 우리동 장기자랑, 대동난장 ‘불매야’ 등이 이어진다. 체험행사로는 쇠부리체험존과 철철철노리터, 철철철문화장터가 운영되고, 전시 부문에는 드론라이트쇼와 현대자동차 홍보관, 깡통길 등이 포함된다. 먹거리장터와 푸드트럭도 마련된다. 쇠를 주제로 한 축제이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금속의 역사만이 아니라 울산 사람들의 생활문화와 흥까지 한꺼번에 만나는 구조다.
축제 준비도 이미 본격화됐다. 올해 2월과 3월에는 타악페스타 참가단체 모집, 프리마켓 셀러 모집, 먹거리장터 운영단체 선정, 자원봉사자 모집 등이 잇따라 진행됐다. 이는 울산쇠부리축제가 관람형 행사에 머물지 않고 시민 참여형 축제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대 위 공연만 보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 상인과 예술단체, 자원봉사자,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지역 공동체의 결도 두텁다.
여행의 눈으로 봐도 이 축제는 꽤 흥미롭다. 태화강국가정원이나 대왕암공원처럼 잘 알려진 풍경형 관광지와 달리, 울산쇠부리축제는 도시의 뿌리를 보여준다. 왜 이 도시가 거대한 산업 중심지로 성장했는지,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축제라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여행이 단지 아름다운 장면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면, 울산쇠부리축제는 꽤 강한 답이 된다. 울산의 과거가 불꽃처럼 되살아나고, 그 과거가 오늘의 도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쇠부리’라는 말 자체가 주는 울림이 크다. 제련로의 불길 속에서 쇠가 태어나듯, 울산도 수많은 노동과 기술, 시간의 열기 속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래서 이 축제는 오래된 산업유산을 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울산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현재형으로 다시 해석하는 무대가 된다. 불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남았고, 그 기억은 이제 축제로 이어진다. 쇠를 만들던 기술의 역사와 시민이 함께 즐기는 문화의 시간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울산쇠부리축제는 화려한 장식보다 더 뜨거운 것을 보여준다. 도시의 뿌리다. 달천철장에 남은 2000년 철의 기억은 올해 5월 다시 불꽃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산업도시 울산을 가장 울산답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번 봄에는 쇠의 역사 속으로 한 번쯤 걸어 들어가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