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관광은 더 이상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회의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전시를 보기 위해 도시를 찾고, 학회를 계기로 며칠 더 머문다. 한국관광공사가 19일 8개 지역 국제회의 전담조직(CVB)과 손잡고 ‘방한 외래객 3천만 명 달성’을 위한 국제회의 공동 유치에 나선 것은 바로 그 흐름을 정면으로 겨냥한 행보다. 여행의 이유를 관광지에서 목적 있는 방문으로 넓히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번 협약은 2026년 한국MICE산업발전협의회(KMA)를 계기로 체결됐다. 참여 기관은 경기관광공사, 고양국제박람회재단, 대전관광공사, 부산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엑스코(대구), 인천관광공사, 제주관광공사 등 8곳이다. 제11차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의 후속 조치로 마련된 이번 협약은 외국인 참가 규모가 크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높은 중대형 국제회의를 한국으로 끌어오기 위해 추진됐다.
목표는 분명하다. 한국관광공사와 지역 CVB들은 2028년부터 2035년까지 총 20건의 중대형 국제회의를 한국으로 유치해 4만2000명 이상의 미래 방한 수요를 확보하고, 약 368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단순한 행사 유치가 아니다. 회의 한 건이 항공, 호텔, 식음, 교통, 쇼핑, 문화 소비까지 함께 움직이는 만큼 이번 전략은 곧 도시 관광과 지역경제를 동시에 겨냥한 고부가가치 관광 프로젝트에 가깝다.
역할 분담도 구체적이다. 한국관광공사는 해외 조직망을 활용해 현지 홍보와 주요 의사결정자 초청 답사 등을 지원하고, 지역 CVB들은 유치 정보 공유와 공동 전략회의 운영, 행정·재정 지원 분담 등 실무를 맡는다. 한쪽이 해외 문을 열고, 다른 한쪽이 현장 실행력을 보태는 구조다. 그동안 각 도시가 따로 움직이던 유치전이 이제는 국가 단위 협력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제회의 시장에서 경쟁 상대는 국내 도시가 아니라 싱가포르, 방콕, 두바이, 바르셀로나 같은 해외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MICE 산업의 체질 때문이다. 국제회의 참가자는 일반 관광객보다 체류 기간이 길고 지출 규모도 큰 편이다. 행사장 밖에서는 숙박과 식사, 쇼핑, 공연, 지역 관광으로 소비가 이어진다. 도시 하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낙수효과가 번진다. 결국 국제회의 유치는 회의실 안의 일이 아니라 관광산업 전체의 확장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이번 협약을 통해 “고부가 관광 활성화”를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지역의 역할이다. 서울만이 아니라 경기, 인천, 부산, 대전, 대구, 제주, 고양까지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은 국제회의 유치가 특정 도시의 경쟁이 아니라 전국 관광벨트를 키우는 일이라는 판단을 보여준다. 인천은 공항과 송도 국제회의복합지구를 앞세우고, 제주는 국제 휴양지 이미지를, 부산과 대구는 전시·컨벤션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도시 자산이 연결될 때 한국의 MICE 경쟁력도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가 외래객 3천만 시대를 논할 때 지역 분산과 체류형 관광을 함께 강조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 관광의 승부는 “무엇을 볼까”보다 “왜 이 도시를 찾아야 할까”에서 갈린다. 국제회의는 그 질문에 가장 현실적인 답을 준다. 학술대회와 산업회의, 글로벌 협회 총회, 대형 포럼이 열리면 참가자는 자연스럽게 도시를 경험하고, 그 경험은 다시 재방문과 동반여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회의가 끝난 뒤 남는 것은 명함 몇 장만이 아니다. 도시의 인상, 음식의 기억, 거리의 분위기, 다시 오고 싶은 이유가 함께 쌓인다. 한국이 이번에 노리는 것도 결국 그 지점이다.
한국관광공사와 8개 지역 CVB의 이번 협약은 행사 몇 건을 더 따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회의를 통해 관광의 문법을 바꾸고, 방문의 이유를 더 넓히려는 시도다. 풍경을 보러 오는 여행자도 중요하지만, 목적을 갖고 찾아와 오래 머무는 방문자는 도시를 더 깊게 움직인다. 외래객 3천만 시대를 향한 한국의 승부수는 결국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의 역량, 그리고 회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여행의 힘에서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