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이제 여행은 풍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때로 그곳의 골목이 아니라, 그 골목에서 태어난 이야기다. 경남이 올해 꺼내든 카드는 바로 웹툰이다. 경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운영하는 경남웹툰캠퍼스가 ‘2026 웹툰 창작비 지원사업’ 참여 작가와 작품을 공개 모집하면서, 지역의 상상력과 콘텐츠 산업을 동시에 키우는 실험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웹툰 한 편이 지역의 얼굴이 되고, 그 이야기가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시대다.
이번 사업은 도내에 거주하는 예비·기성 웹툰 작가를 대상으로 연재 준비 중인 작품의 창작비와 맞춤형 멘토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청은 3월 26일부터 4월 9일 오후 6시까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을 통해 받는다. 올해는 지원 폭이 한층 커졌다. 경남도는 창작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3100만원 늘린 7500만원으로 확대하고, 선정 규모도 10건에서 15건으로 넓혔다. 작품당 300만~500만원의 창작비가 지원되며,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문가 멘토링도 함께 제공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사업이 단순한 공모 지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정 작가들은 오는 12월 예정된 웹툰 전시·체험 행사와 연계한 온·오프라인 홍보 지원도 받게 된다. 웹툰이 종이 위 기획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시와 체험, 대중 접점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구조다. 지역 창작자를 발굴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시민과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뜻이 읽힌다. 문화 콘텐츠가 지역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바깥으로 뻗어갈 통로를 마련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이미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지원 선정작인 이승우 작가의 ‘누가 죄인인가’는 2025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웹툰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경남도가 최근 공개한 웹툰산업 지원 확대 방안에 따르면, 지역 지원을 받은 다른 작품인 **‘서울역 네크로맨서’**와 **‘새동네’**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판권 계약에도 성공했다. 지역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전국 단위 플랫폼과 영상산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경남이 이번 사업을 ‘우수 웹툰 IP 육성’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웹툰은 단순한 창작 지원 대상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문화 브랜드를 함께 키우는 자산이 됐다.
경남의 행보는 더 넓은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경남도는 올해 웹툰 기획·창작부터 연재·사업화까지 지원 범위를 전반적으로 넓히겠다고 밝히며, 보조작가 인건비 예산 확대와 입주작가 작업 환경 개선, 스토리 창작용 AI 소프트웨어 구독 지원 등 제작 기반도 보강하고 있다. 결국 이번 공모는 단일 사업이 아니라, 지역 웹툰 생태계를 하나의 산업 구조로 키우려는 큰 그림의 일부다. 창작비를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업 환경과 후속 사업화 가능성까지 함께 보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여행의 시선으로 보면 이 움직임도 흥미롭다. 요즘 지역은 더 이상 경치만 소개해서는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 말투, 정서, 인물과 풍경의 결이 콘텐츠가 될 때 비로소 다시 찾고 싶은 장소가 된다. 경남이 웹툰에 힘을 싣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남해의 바다, 창원의 도시성, 진주의 서사, 통영의 예술성 같은 지역 감각이 웹툰이라는 언어를 만나면, 그것은 단지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경남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지도처럼 기능할 수 있다. 웹툰은 이제 읽는 콘텐츠를 넘어 지역을 기억하게 만드는 새로운 문화 관광의 입구가 되고 있다. 이는 경남이 올해 창작 지원 확대와 함께 웹툰 산업 전반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배경과도 맞물린다.
경남웹툰캠퍼스의 이번 공모는 그래서 단순한 지원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명의 작가를 돕는 일이 곧 지역의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고, 한 편의 웹툰을 완성하는 일이 결국 지역의 이름을 더 멀리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웹툰 한 컷이 산업이 되고, 그 산업이 다시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시대. 경남은 지금 그 첫 장면을 더 크게 그리려 한다.
경남이 이번에 모집하는 것은 단지 작품 15건이 아니다. 지역 안에 숨어 있는 다음 이야기를 찾는 일이다. 종이와 펜, 태블릿과 모니터 위에서 시작된 상상력이 언젠가 전국 플랫폼으로, 드라마로, 애니메이션으로 번져갈 수도 있다. 경남이 웹툰을 붙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풍경을 넘어 이야기가 남는 지역, 그 힘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