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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바다 앞에, 문무대왕이 다시 깨어났다

감포 대본리에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준공

문무대왕릉·감은사지·이견대 잇는 동해안 역사여행의 새 거점

김보라 기자
경주 바다 앞에, 문무대왕이 다시 깨어났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경주 동해안에 가면 바다가 먼저 보이지만, 그 바다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이야기다. 문무대왕릉 앞바다의 물빛, 감은사지에 남은 두 탑, 이견대에 서서 바라보는 해안선은 모두 한 왕의 유언과 한 나라의 바다를 품고 있다. 경주시가 3월 16일 감포읍 대본리 옛 대본초등학교 부지에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을 준공한 것은, 바로 그 흩어진 이야기를 한곳에 모으는 일에 가깝다. 동해안 풍경이 이제는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읽히는 길을 갖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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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준공식 장면(제공=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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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황 해양역사관(제공=경주시)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은 문무대왕릉 일대 해양 역사문화 유적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추진된 시설이다. 경주시는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약 10년의 준비 끝에 이번 준공에 이르렀다. 총사업비는 153억원, 부지는 9089㎡, 건물은 연면적 약 1700㎡의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됐다. 폐교된 대본초등학교 터를 활용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이들의 교실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신라의 해양정신과 동해안 역사를 전하는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구성도 단순하지 않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다목적실, 카페테리아, 기념품숍이 들어섰고, 2층에는 문무대왕 역사 전시실과 신라 해양 실크로드 전시실이 마련됐다. 단순히 유물 몇 점을 늘어놓는 박물관이 아니라, 해양 교류와 삼국통일, 신라의 바다 인식까지 폭넓게 보여주는 체험형 공간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경주시의회 회의록에서도 이 역사관은 청소년 아카데미와 해양교육 프로그램, 자료관·해양교류관 기능을 함께 품는 시설로 설명됐다.

 

이 역사관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주변 유적과의 관계 때문이다. 문무대왕릉은 사적 제158호로, 문무왕이 죽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동해의 대왕암에 묻힌 수중릉으로 전해진다. 감은사지는 그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절터이고, 이견대는 바다의 용이 된 선왕이 나라를 지킬 보배를 내렸다는 설화와 맞닿아 있다. 각각 따로 보면 명소이지만, 역사관이 들어서면서 이곳들은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주의 동해안은 풍경 좋은 해변이 아

니라, 신라의 국가 서사와 해양 의식이 남은 역사 여행지로 다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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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국회의원(오른쪽)과 주낙영 경주시장이 16일 감포읍 문무대왕 해양역사관 준공식 이후 전시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제공=경주시)

 

여행자의 동선으로 봐도 이 변화는 반갑다. 그동안 문무대왕릉을 찾은 사람들은 바다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떠나기 쉬웠다. 감은사지와 이견대까지 둘러본다 해도, 왜 이 유적들이 한 축으로 묶이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 공간은 부족했다. 이제는 역사관에서 먼저 문무대왕의 호국정신과 해양 활동, 신라의 바다를 이해한 뒤 현장으로 나가볼 수 있게 됐다. 보고 나서 걷는 길과, 알고 나서 걷는 길은 전혀 다르다. 역사관이 해설서 역할을 하게 되면 감포 일대의 체류 시간도 자연히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경주시가 기대하는 동해안 관광 활성화와도 맞닿아 있다.

 

감포는 원래도 매력적인 해안 마을이다. 감포항의 오래된 풍경, 대왕암이 보이는 봉길해변,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시원한 경치가 있다. 여기에 역사관이 더해지면 여행의 결이 조금 달라진다. 단순한 바다 구경에서 벗어나,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이견대를 잇는 ‘해양문화 답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주시 역시 이 시설을 문무대왕릉 성역화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규정하고, 동해안 역사문화 유적을 연결하는 관광 기반 강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경주는 흔히 신라 왕경의 내륙 유적부터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대릉원과 첨성대, 불국사와 석굴암이 먼저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의 준공은 경주의 방향이 바다 쪽으로도 더 뚜렷하게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라의 역사는 육지의 왕경에서만 완성되지 않았다. 삼국통일 이후 바다를 지키고, 바다를 통해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던 문무왕의 서사가 동해에 남아 있다. 이 역사관은 그 오래된 감각을 오늘의 여행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공간이라 할 만하다.


좋은 역사관은 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시실을 나서는 순간, 바깥 풍경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은 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큰 공간이다. 감포의 바다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그 물결 위에 문무왕의 유언과 신라의 해양정신, 동해안 유적의 시간이 함께 겹쳐 보일 수 있다. 경주 동해안 여행은 앞으로 조금 더 길어지고, 조금 더 깊어질 듯하다. 바다를 보러 갔다가 역사를 만나고, 역사를 알고 나서 다시 바다를 오래 바라보게 되는 곳.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문을 연 감포가 바로 그런 여행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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