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브뤼셀의 밤은 미술관 안에서 더 또렷해졌다.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 전시장 유리 너머, 익숙한 병은 갑자기 여자의 몸이 되었고, 여자의 몸은 다시 하나의 수수께끼로 돌아갔다. 한 번 본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눈은 분명 사물을 보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그래서 이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브뤼셀에서 내가 만난 것은 작품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이 서로의 옷을 바꿔 입는 짧고도 긴 순간이었다.
마그리트의 세계는 늘 단정한 얼굴로 우리를 속인다. 정물처럼 놓인 병 하나, 조용히 서 있는 누드 한 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몸을 기댄 여인 한 사람.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사물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고, 몸은 더 이상 몸으로만 남지 않는다. 병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상징이 되며, 익숙한 형태들은 가장 낯선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는 감상이 아니라 망설임이 먼저 시작된다.
사진 속 첫 번째 장면은 특히 강렬했다. 병의 목은 얼굴이 되고, 유리의 차가움은 살결의 온도로 바뀐다. 사물이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인지, 사람이 결국 사물처럼 소비되는 운명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모호함이 이상하게도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그림 앞에서는 시선이 조금 더 느려진다. 창백한 하늘 아래 서 있는 여인의 몸은 관능보다 침묵에 가깝고, 설명보다 여백이 더 크다.
브뤼셀에서 마그리트를 만난다는 것은 그림을 보는 일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어온 감각을 잠시 의심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형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현실은 늘 보이는 방식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간단한 진실을,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도 집요하게 보여준다. 미술관을 나선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작품의 제목보다 그 낯선 침묵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 마그리트는 여전히 우리를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병이 여자가 됐다](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6dbbe5bd-59f9-483a-90da-07814564b97b/00-legacy-cover-1366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