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봄빛이 번진 3월의 행주산성은 축제보다 먼저 기억을 불러냈다. 14일 충장사에서는 제433주년 행주대첩제가 거행됐고, 시민들은 충장공 권율 도원수와 민관군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산성 위에 다시 한 번 나라를 지킨 시간의 무게를 새겼다. 제례가 열린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행주산성의 역사성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이다. 한강을 굽어보는 산성의 지형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왜 이곳이 치열한 전장의 요충지였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한다. 대첩문을 지나 권율 장군 동상과 충장사, 대첩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짧지만 묵직하다. 걷는 동안 방문객은 관광객이기보다 역사의 목격자에 가까워진다.
올해 행주산성은 추모의 공간을 넘어 봄 나들이 명소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양시는 3월 14일부터 10월까지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 야간개장을 운영한다. 관람은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가능하고, 입장료는 무료다. 해가 진 뒤 성곽 길을 따라 한강 야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낮의 답사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행주산성의 매력은 전쟁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성 아래 역사공원과 강변 산책로까지 더하면, 이곳은 봄날 하루를 천천히 채우기에 충분한 여행지가 된다. 엄숙한 제례의 순간과 포근한 산책의 시간이 한 장소 안에서 만나는 점도 특별하다. 고양의 봄은 꽃으로만 오지 않는다. 어떤 봄은, 오래된 승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행주산성의 3월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산책이고, 누군가에겐 추모이며, 또 누군가에겐 아이와 함께 다시 배우는 역사다. 제433주년 행주대첩제가 열린 이날, 행주산성은 과거를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여행지로 다시 살아났다. 봄날의 고양에서 가장 깊은 풍경을 찾는다면, 답은 의외로 오래된 성곽 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