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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왜 고구려는 성을 임진강 옆에 세웠을까

연천 호로고루성과 광개토대왕릉비

최치선 기자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왜 고구려는 성을 임진강 옆에 세웠을까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호로고루성에 오르는 순간, 풍경보다 먼저 질문이 생긴다. 성벽 아래로 유장하게 흐르는 임진강, 그 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고구려는 왜 이토록 단단한 시간을 남겨두었을까. 푸른 하늘 아래 누렇게 마른 풀밭은 고요한데, 그 고요가 오히려 오래된 긴장을 불러낸다. 이곳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장소가 아니다. 한 나라가 어디를 지키려 했는지, 무엇을 바라보며 버텼는지를 묻게 만드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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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고루성(사진=최치선 기자)

호로고루는 높고 거대한 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강하다. 임진강을 따라 걷다 성벽 곁에 서면, 고구려가 왜 이곳을 택했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강은 길이었고, 경계였고, 적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생존의 통로였을 것이다. 지금 여행자에게 임진강은 눈부시게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오래전 이 강물은 나라의 운명을 실어 나르던 물길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바람의 결마저 달라진다.

 

이번 사진 속 풍경은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언덕 위로 이어지는 길은 하늘을 향해 천천히 열리고, 성벽 아래 강변 산책로는 임진강 물빛을 따라 조용히 흐른다. 돌은 남아 시간을 증언하고, 강은 흘러 계절을 실어 보낸다. 하나는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머물렀고, 하나는 멈추지 않기 위해 끝없이 흘렀다. 그 사이를 걷는 여행자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자꾸 먼 북방의 시간으로 건너간다. 화려한 볼거리 하나 없어도 이곳이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풍경이 눈보다 먼저 마음을 붙잡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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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사진=최치선 기자)

 

광개토대왕릉비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도 이 풍경과 닮아 있다. 돌 위에 새겨진 문장이 고구려의 이름을 남겼다면, 호로고루의 성벽과 임진강은 그 기상을 풍경으로 남겨두었다. 글자는 닳아도 뜻은 남고, 성은 허물어져도 자리는 기억을 품는다. 그래서 연천의 이 풍경 앞에 서 있으면 고구려는 먼 과거가 아니다. 바람으로 스치고, 강물로 흐르고, 햇빛 속 돌빛으로 되살아나는 현재다.

 

나는 오래된 돌 앞에 서면 늘 같은 생각에 닿는다. 사람은 사라져도 마음은 남고, 나라는 무너져도 기억은 끝내 어딘가에 새겨진다는 것. 광개토대왕릉비는 바로 그 사실을 묵묵히 증언하는 존재다. 무엇이 이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하는가. 힘일까, 이름일까, 아니면 잊히지 않으려는 간절함일까. 비석을 바라보다 보면 답을 찾기보다 먼저 내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남기며 살고 있는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호로고루와 임진강이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여행지는 사진만 남기는 곳이 아니라, 한 장면을 본 뒤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곳이다. 왜 고구려는 성을 임진강 곁에 세웠을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선다. 강은 흐르고 성은 남아,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한 풍경 안에 붙들어 놓는다. 여행자는 그 사이를 걸으며 역사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은 시간을 마주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 호로고루의 언덕 위에서 바람을 맞고, 광개토대왕릉비 앞에서 다시 한참 말을 잃고 싶다. 고구려는 책 속에서 끝난 나라일지 몰라도, 이 풍경 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푸른 하늘 아래, 마른 풀빛 언덕 위에서, 그리고 돌에 새겨진 오래된 문장 속에서 고구려는 지금도 조용히 살아 있다. 연천의 여행은 결국 유적을 보는 일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시간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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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호로고루성(사진=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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