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처음엔 누구나 방심한다. “저 정도 선은 나도 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슬쩍 새어 나온다. 그런데 한 걸음만 더 가까이 가면, 그 단순한 선 위로 까치가 날고 소가 울고, 집 안에 사람 냄새가 스민다. 장욱진을 다시 만나는 순간은 늘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산과 나무, 새와 달을 과감히 간추렸고, 덜어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오래 남듯, 그의 그림도 오래 남는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흥계곡의 품에 들어앉아 있다. 일영봉·형제봉·수리봉이 둘러싼 산자락, 매표소를 지나면 드넓은 조각공원이 먼저 길을 연다. 공원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의 전시’ 같다. 석현천 위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 미술관에 닿는 동선도 인상적이다. 건물은 호랑이가 산속에서 편안히 누운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장욱진의 대표작 ‘호작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그 곡선이 갑자기 생명처럼 느껴진다.
미술관 내부는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 1층은 중정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이 이어지고, 2층은 다락방처럼 아늑하다. 무심코 걷다 보면 특별함을 놓치기 쉽다. 이곳은 눈높이를 잠깐 ‘하늘에서 내려’야 비로소 보이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건축 모형이 전시돼 있어 공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꼭 멈춰야 할 작품이 있다. 장욱진이 덕소 작업실 부엌에 그려두었던 벽화를 떼어내 전시장으로 옮긴 ‘식탁’과 ‘동물가족’ 앞이다. 크지 않은 화면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늦게 간다. 오래 머물러도 아깝지 않다.
여행자에게 장흥은 “산책이 다 해주는 동네”다. 미술관을 나와 계곡 쪽으로 천천히 걸으면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그림의 여운을 붙잡아준다. 길 건너편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은 추가요금 없이 함께 볼 수 있어, 하루 일정이 자연스럽게 ‘두 개의 미술관’으로 확장된다. 조금 더 욕심이 나면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장흥자생수목원, 권율장군묘까지 묶어도 좋다. 봄의 장흥은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멀리 온 기분을 준다.
장욱진의 그림은 대단한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어떻게 단순하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다. 장흥계곡 한복판의 미술관은 그 질문을 조용히 건네는 장소다. 3월, 산과 물 사이에서 한 줄의 선을 오래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 그날의 여행은 ‘많이 본 날’이 아니라 ‘깊게 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문의: 031-8082-4245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5,000원 / 어린이 1,000원
홈페이지: www.yangju.go.kr/changucchin/index.d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