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과천의 ‘뒷골’은 이름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 우면산·관악산·청계산 능선이 빙 둘러친 골짜기. 도시 소음이 끝나는 지점에서 K&L뮤지엄은 느린 속도로 관람객을 맞는다.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는 단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이곳의 전시는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귀가 함께 걷는다.
K&L 컬렉션의 바탕에는 ‘음악’이 있다. 전시장 벽면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가 흐르고, 관람객은 화면과 소리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읽게 된다.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길잡이다. 그림의 색이 소리에 반응하고, 조각의 질감이 리듬을 타는 듯하다. “미술관이 이렇게 또렷해질 수 있나” 싶은 순간이 몇 번씩 온다.
올해는 개관 3주년. 이를 기념해 24명의 국내외 작가 작품을 모은 ‘K&L 뮤지엄 소장품전’이 4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소장품전은 미술관의 성격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어떤 작가를 선택했고, 어떤 결을 오래 붙잡아왔는지—그 축적이 한 전시로 드러난다. 거창한 설명 없이도 “이 미술관은 이런 세계를 좋아한다”는 말이 전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읽힌다.
여행자에게 좋은 이유는 ‘속도’다. K&L은 붐비는 동선이 아니라, 감상을 천천히 이어가도록 짜인 곳이다. 더 깊게 보고 싶다면 큐레이터 팀이 직접 진행하는 프라이빗 투어를 예약해도 좋다. 작품을 ‘많이’ 보는 대신, 몇 점을 ‘오래’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아니라, 오래 볼수록 보이는 것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전시를 본 뒤에는 2025년 문을 연 자매 공간 K&L 라이브러리로 발길을 돌려보자. 달리·피카소·미로·고야 등 19~20세기 스페인 거장들의 판화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음료와 와인을 곁들일 수 있어 ‘관람의 여운’을 부드럽게 늘려준다. 미술관 관람객에게는 할인 혜택도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음악과 작품을 마주하고, 책과 판화로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코스. 하루가 과하게 채워지지 않으면서도 밀도가 남는다.
연계 여행도 어렵지 않다. 가까운 렛츠런파크 서울, 국립과천과학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묶으면 “산속의 미술관—도시의 문화시설”을 오가는 반나절 일정이 된다. 과천은 의외로 ‘문화가 촘촘한 도시’다. K&L은 그 촘촘함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곳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큰 미술관이 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작은 미술관이 주는 ‘집중’이 필요할 때가 있다. K&L뮤지엄은 그 집중을 음악으로 도와준다. 산이 둘러싼 뒷골에서, 눈과 귀가 동시에 열리는 경험. 4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소장품전은 봄의 속도를 늦추기에 딱 맞는 이유가 된다.
[여행정보]
주소: 경기 과천시 뒷골2로 19
문의: 0507-1421-8116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성인 6,000원, 청소년 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