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건축은 말이 없지만, 도시와 시대를 연결한다. 안양에서 그 조용한 언어가 외교의 문법으로 확장되고 있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김중업건축박물관이 2026년 한·불 수교 140주년을 계기로 주한프랑스대사관과의 교류를 본격 확대한다고 4일 밝혔다. 이날 박물관 교육관과 전시실에서는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협력 교류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양 기관 소개와 인사를 시작으로 타운홀 형식의 워크숍, 전시 관람으로 이어졌다. 관람 동선에는 김중업건축박물관 1·2층 상설 전시와 대사관의 ‘기둥 부재’ 야외 전시, 안양박물관 특별기획전 〈삼성기유첩: 그림으로 걷는 안양〉이 포함돼, 건축과 도시의 기억을 함께 읽도록 구성됐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2014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건축 전문 공립박물관이다. 무엇보다 ‘박물관의 그릇’ 자체가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1959년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산업 옛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해 조성됐고, 공장 건물에 조각을 접목한 초기 실험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장과 경비실 등 기존 구조를 보존·전환해 안양박물관과 함께 운영되는 방식은 재생건축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 교류가 ‘건축을 매개로 한 외교’로 강조되는 이유는 김중업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건축가로, 해당 건축물은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꾸준히 언급돼 왔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일한 경험은 이후 그의 작업에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적 맥락으로 번역하는 힘이 됐다.
대사관 역시 리모델링 과정에서 원형을 존중하며 집무동을 ‘김중업 파빌리온’으로 명명했다. 박물관은 협의를 통해 철거·보존된 기둥 등 건축 부재를 기증받아 야외 전시로 선보였고, 이는 ‘건축유산의 이동과 재구성’이라는 동시대적 질문을 시민에게 던져왔다.
이 흐름은 2026년 특별기획전으로 이어진다. (가제) 〈김중업과 프랑스대사관: 건축으로 잇는 한불 140년〉은 2026년 10월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설계도와 모형, 사진,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한 1층 전시와 ‘기둥 파빌리온’을 확장한 야외 전시가 병행되며, MOU를 바탕으로 전시·교육·연구·자료 대여·홍보 협력이 전방위로 확대된다.
도시는 건축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안양의 선택은 그 기억을 국경 너머와 나누는 일이다. 김중업의 선과 면을 따라 이어지는 한·불의 대화는, 재생건축을 넘어 문화외교의 새로운 장면을 예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