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추운 겨울밤, 포근한 온기와 함께 술 향기에 취해보는 여행은 어떨까. 수도권 인근의 양조장과 와이너리들이 단순한 술 제조를 넘어, 체험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관광지로 변모하며 여행자와 지역 주민 모두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연인, 친구, 가족 누구와 함께든, 겨울 여행지로 손색없는 이곳들을 소개한다.
안산 바닷바람 와이너리 — 그랑꼬또 와이너리
대부도의 바닷바람을 타고 자란 포도로 만든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2025년 APEC 공식 만찬주에 선정된 ‘청수 와인’으로 알려졌다. 전시·체험 공간과 테이스팅 존으로 나뉜 내부는 방문 즉시 와인 양조의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30여 분간 포도가 와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계절에 따라 다른 청수·로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미성년자와 함께라면 와인병 꾸미기나 머그컵 만들기 체험으로도 겨울 여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연인이나 친구, 온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다.
포천의 전통주 공간 — 산사원
원통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한 산사원은 전통주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다. 내부 전시장에서는 한식주(막걸리, 과실주, 증류주)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조명하고, 20여 종에 달하는 주류를 무제한 시음할 수 있다. 입장료는 4,000원이지만, 시음 후 2,000~3,000원 상당의 주류 한 병을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어 사실상 무료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각형 지붕이 인상적인 술지움은 현대적인 외관과 인테리어로 ‘카페 같은 양조장’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내부는 와인바나 디자인 카페처럼 꾸며져 있어 막걸리 체험, 증류주 양조, 뱅쇼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막걸리 술빵 만들기, 막걸리 비누 만들기 같은 독특한 체험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도 제격이다. 알코올 체험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술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겨울 여행의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산머루농원은 와인 체험과 캠핑을 결합한 이색 공간이다. 머루 와인 저장고와 양조 시설을 둘러본 뒤, 직접 병에 담고 라벨을 붙이는 ‘나만의 와인 만들기’가 가능하다. 이 체험은 머루 수확기 등 특정 시기에만 가능하지만, 와인 애호가나 캠핑 마니아에게는 놓치기 아쉬운 기회다.
또한 40개 사이트로 구성된 캠핑장은 감악산의 사계절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낮에는 와인 체험과 와이너리 투어, 밤에는 모닥불과 별빛 아래에서 머루 와인을 나누며 겨울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겨울을 깨우는 한 모금 - 화성 배혜정도가의 유자향 막걸리
화성의 배혜정도가는 겨울 여행객에게 특별한 향을 선물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는 경주 APEC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도수 5%의 부드러운 막걸리로, 잔에 가까이 대는 순간 퍼지는 상큼한 유자 향과 한 모금 머금었을 때의 달콤·산뜻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탄산감까지 더해져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양조장 내부 투어는 진행하지 않지만, 입구의 체험장에서는 막걸리 빚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3.6L 용기에 고두밥·밑술·물을 더해 1단 담금을 완성한 뒤 집에서 직접 발효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시간이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이 체험의 묘미다. 체험을 마치면 배혜정도가의 주류 4종을 시음할 수 있는데, APEC 공식 건배주인 유자 생막걸리도 포함된다. 겨울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충분히 멈춰 세울 만한 곳이다.
양평 맑은술도가- ‘겨울아이 동국이’
양평 맑은술도가는 귀촌한 대표가 “막걸리를 빚고 싶다”는 단순한 열정 하나로 2019년 문을 열었다. 짧지 않은 손길과 성실한 시간을 쌓아온 이곳은 이제 양평을 대표하는 명품 막걸리 양조장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 상품인 ‘겨울아이 동국이’는 이름만 들으면 사람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겨울 국화’를 뜻한다. 겨울국화는 일반 국화보다 향이 깊고 농밀해 막걸리와 만나면 특유의 풍미가 살아난다. 은은하면서도 한 번 머금으면 오래 남는 향은 추운 계절과 어울리며, 맑은술도가의 막걸리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겉에서 보기에는 도심의 작은 상가처럼 담백한 외관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오래 숙성된 향이 스며 있는 양조장과 손님들이 직접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자리해 있다. 외형과 다른 깊이는 이곳을 방문객들이 아끼는 이유다.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의 속도로 술을 빚는 과정을 엿볼 수 있어, 겨울 여행길에 잠시 머무르기 좋은 곳이다.
이처럼 경기도 곳곳의 양조장과 와이너리는 단순한 술집이 아닌, 체험과 여행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술 향기와 함께 마음을 녹이고, 누군가와 나누는 따뜻한 시간은 여행의 기억을 오래도록 남긴다.
눈 내리는 겨울, 따끈한 술 한 잔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포도밭 언덕의 와인 한 모금, 항아리 가득한 전통주 향, 통나무 캠핑장 불빛 아래 머루 와인 잔. 휴대폰 카메라보다 더 깊게 남을 겨울의 추억이 기다리고 있다. 술과 여행, 그리고 사람 — 세 가지가 어우러지는 겨울 ‘슬로우 트립’을 지금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