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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담양 추성주...양대수 명인이 들려주는 추성주 복원 이야기

아버지가 건넨 한 장의 레시피, 천년 술이 다시 깨어났다

최치선 기자
[우리술 여행] 담양 추성주...양대수 명인이 들려주는 추성주 복원 이야기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담양 용면으로 향하는 길, 대숲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마치 오래된 시간을 한 장씩 넘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천년을 이어온 술, 추성주를 찾아가는 길이어서 그 때문이었을까. 이 술에는 전설이 있고, 명맥이 끊길 뻔한 역사가 있고, 무엇보다 한 사람의 집요한 복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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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수 명인이 추성주를 소개하고 있다(사진=트래블아이)

  

양대수 명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천천히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추성주 레시피를 제게 주셨어요. 아주 간단한 메모였죠.”

그 레시피가 장남이 아닌 자신에게 전해진 이유를 아버지는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형은 그때 교사였고, 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그걸 알고 계셨겠지요.”

그 말 속에서 ‘왜 나였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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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주 (사진=추성고을)

  

정확한 비율도, 발효 온도도 적혀 있지 않은 한 장의 레시피.

아버지는 그 막막함까지 함께 건넸다.

그리고 양대수 명인은 그 한 장짜리 단서를 붙들고 몇 년을 오롯이 술독 앞에서 씨름했다.

천년 술의 부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천년의 술 복원...잃어버린 천년을 되찾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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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수 명인(사진=트래블아이)

 

양대수 명인이 처음 받은 레시피는 ‘비법’이라기보다 ‘흔적’에 가까웠다. 재료 이름 몇 개, 단계가 간단히 적힌 문장 몇 줄.

“사실 그걸 보고 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저를 믿으신 거죠. 장남이 아닌 차남인 저에게 주셨으니까요.”

퇴근 후, 새벽에 일어나고, 시간을 쥐어짜며 그는 이 레시피와 싸웠다. 약재를 더 넣었다 줄여보며 술을 다시 만들고, 다시 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술독에서 올라오는 향을 맡으며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어느 날, 마을 어르신이 숟가락으로 술을 떠먹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게 옛날 그 맛이여.”

그 한마디가 천년 술의 숨을 다시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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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고을 제품(왼쪽부터 대잎술, 죽력고, 추성주, 대통 대잎술, 타미앙스, 추성주, 추성주, 푸르지)

  

연동사에서 태어난 술, 제세팔선주

추성주의 뿌리는 금성산성 아래 연동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스님들은 산에서 채취한 약초를 넣어 몸을 보하는 술을 빚었다. 이름하여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세상을 이롭게 하는 여덟 신선의 술.

양 명인의 증조부가 연동사 주지 스님에게서 주방문을 넘겨받으면서, 술은 가문에 전승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가양주 금지, 산업화의 파고 속에서 술은 끊겼고, 명맥이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그 레시피를 다시 품은 사람이 바로 양대수 명인이다.

“그 한 장의 종이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책임이었어요. 조상들이 남긴 유산이고,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마지막 유언이기도 했죠.”

 

추성주...단맛과 약성의 고요한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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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주(사진=추성고을)

 

명인이 건네준 잔을 코끝에 가져가는 순간, 구기자와 오미자, 두충과 갈근, 상심자 등 각종 약재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은근하게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향은 마치 겨울 난로 앞에서 천천히 따뜻함이 번지는 느낌이었다.

첫 모금은 부드럽다.

혀끝에서 처음 느껴지는 달큰함은 짧고, 이내 약초 특유의 깊은 맛이 서서히 퍼진다.

목을 넘어갈 때는 25도라는 도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끄럽고,

마지막엔 한약재의 쌉쌀한 여운이 길게 남아 뒷맛이 깔끔하다.

이 술이 옛 스님들의 ‘신선주’로 불리던 이유가 무엇인지, 한 모금이면 바로 느껴진다.

 

죽력고...대나무의 숨결을 품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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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력고 (사진=트래블아이)

 

죽력고는 대나무에서 추출한 진액 ‘죽력’을 넣어 빚는, 담양이기에 가능한 술이다. 죽력은 깊은 산 대나무를 구워 얻는데, 전통 방식 그대로 불에 직접 굽다 보면 타르나 중금속이 생겨 안전성이 떨어진다. 양대수 명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간접 가열식 죽력 추출기’를 고안했다.

“대나무 향을 온전히 담으면서도 안전한 죽력을 얻고 싶었어요. 연구실처럼 실험하다 보니 기계가 나오게 됐죠.”

이렇게 추출한 깨끗한 죽력을 넣어 만든 죽력고는 한 모금 들이키면 처음엔 맑고 단정한 물맛처럼 가볍게 시작되지만, 곧 대나무 특유의 은은한 풀향이 입안에 퍼진다. 뒤이어 약재의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몸속으로 번져오고, 마지막에는 긴장이 풀리듯 잔잔한 온기가 길게 남는다. 그래서 이 술만 찾는 단골들이 많다는 말이 이해된다. 한 잔만 마셔도 마치 산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온 듯한 산뜻함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대잎술과 대통대잎술...대숲의 향이 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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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수명인이 대통대잎술을 소개하고 있다(사진=트래블아이)

 

추성주의 발효가 끝날 무렵, 여기에 대나무 진액(죽력)을 더해 만든 술이 바로 ‘대잎술’이다. 잔을 가까이 대면 산뜻한 풀향이 먼저 올라오고, 목을 타고 내려갈 때 특유의 시원한 청량감이 퍼진다. 목넘김이 가볍고 뒷맛이 깔끔해 여름철 얼음을 넣어 즐기기에도 좋다. 이 신선한 매력 덕분에 2020년에는 청와대 추석 선물세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통대잎술’은 한층 더 특별하다. 실제 대나무 통에 술을 붓고 숙성시키는데, 입을 대면 대나무 결 사이에서 스며 나온 향이 함께 퍼지며 한 모금마다 숲속에서 숨을 들이키는 듯한 생생함이 전해진다. 다만 개봉 후 실온에 두면 향이 빠르게 날아가므로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하지만, 그만큼 대나무의 숨결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술이다.

 

타미앙스...한국식 위스키라 불리는 프리미엄 증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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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앙스 (사진=추성고을)

  

명인이 가장 아낀다는 술은 프리미엄 증류주 ‘타미앙스’다. 추성주 원주를 감압 방식으로 두 번 증류해 만든 40도 술로, 이름은 ‘담양(Damyang)’을 프랑스식으로 변주해 붙였다. 잔에 따르면 은은한 황금빛이 돌고, 한약재와 전통 누룩, 대나무에서 온 향이 겹겹이 피어난다. 입에 머금으면 먼저 달콤한 기운이 은근하게 퍼지고, 이어 깊고 따뜻한 향이 천천히 밀려와 마치 한국식 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풍미를 남긴다. 끝맛은 놀라울 만큼 깨끗해 다시 한 모금이 절로 이어진다. “이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술입니다.” 양재창 전수자의 말에는 부자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티나와 프루즈 ...부자가 함께 만든 미래의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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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수 명인이 프루즈를 소개하고 있다.(사진=트래블아이)

 

추성고을이 요즘 가장 힘을 쏟는 술은 과실주 ‘프루즈’다. 처음에는 양대수 명인이 담양 딸기로 만든 리큐르 ‘티나’가 있었다. 진한 향과 은근한 단맛이 조화를 이루던 술이었지만, 아들 양재창 전수자는 그 맛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딸기 향은 온전히 남기고, 색만 없앨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의 실험 끝에 탄생한 술이 바로 ‘프루즈’, 즉 투명한 딸기 리큐르다.

 

정밀 여과 기술을 통해 붉은 색을 완전히 제거해 투명하게 만들었지만, 잔을 코에 대면 시원하면서도 산뜻한 딸기 향이 은은하게 피어나고, 입안에서는 달지 않고 깔끔하게 퍼지며 마지막엔 청량한 과실 향이 잔잔하게 남는다. 담양이라는 지역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한 술로, 젊은 세대뿐 아니라 칵테일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시장에 출시되는 과실주는 \'티나\'와 ‘프루즈’ 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서서 술을 설명하던 순간, 그들의 표정에는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는 설렘이 함께 담겨 있었다. 양 전수자가 “전통은 그대로 두고, 표현만 조금 바꿔본 겁니다.”라고 말하자, 양 명인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덧붙였다.

“전통을 지키는 건 기본이고, 시대에 길을 열어줘야 오래갑니다. 술도 사람이니까요.”

 

천년의 술이 내일로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

추성고을을 나올 때, 대숲 사이로 부는 바람이 가볍게 귓가를 스쳤다. 천년을 건너 이어져 온 술, 한 장의 레시피에서 시작된 차남의 고된 복원, 그리고 그 곁에서 오늘을 잇는 아들의 손길까지, 추성주에는 한 가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한 지역의 역사, 한 시대의 삶이 담겨 있다.

 

“전통주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술을 통해 농촌이 계속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대수 명인의 마지막 말은 술잔보다 묵직하게 마음에 남았다.

천년을 넘어 다시 깨어난 술, 추성주.

 

그 술을 잔에 따르는 순간,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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