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경기도 이천 증포동. 옛날 ‘요골’이라 불리던 마을에 들어서자, 오래된 마을의 숨결과 은은한 홉 향이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이곳에 자리한 브루어리 을를은 이제 이천의 새로운 문화 공간이자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다.
무엇보다 이 공간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은 ‘맥주에 미친 남자’로 불리는 정빈 책임 양조사다. 그의 시작은 뜻밖이었다. 과거 양재동의 한 맥주공방에서 맥주 시음과 판매를 하던 시절, 단골 손님이었던 지금의 사장을 만났다. 정 양조사는 “사장님이 맥주에 진심이었고 저와 뜻이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죠. 사실상 스카우트 된 셈이에요.”라며 웃는다. 이어 그는 “사장님이 알고 지내던 집안의 어르신을 설득해, 300년 동안 팔지 않던 이 땅을 빌려 브루어리 을를을 짓고 개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브루어리 이름인 ‘을를’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정 양조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말 ‘을’과 ‘를’은 문장에서 목적격 조사로 쓰이며 항상 앞말에 붙여 씁니다. 이처럼 ‘을를’은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의미가 있어요. 맥주를 통해 국내뿐 아니라 이곳을 찾아오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뜻이죠.”
◈맥주로 말하는 남자
정빈 양조사는 스스로를 “맥주로 세상과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2014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 ‘명품맥덕’을 통해 맥주를 리뷰하며 3만여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그가 직접 만든 맥주는 이제 60종이 훌쩍 넘는다.
“미국 포틀랜드, 독일 바이에른, 벨기에 브뤼셀까지, 전 세계의 양조장을 찾아다녔습니다. 현장에서 마신 맥주는 제게 늘 영감이 됐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해석을 담은 맥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맥주는 대중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다. 라거나 페일 에일처럼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은 기본이고, 잉글리시 다크 마일드나 고제(Goze) 같은 낯선 스타일도 과감히 선보인다. “젊은 층의 입맛을 고려해 산뜻한 과일 풍미나 은은한 짠맛, 고소한 곡물 향을 살리려 했습니다.” 정 양조사의 말처럼, SNS에는 “이천에서 세계적인 맥주를 만났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국제 무대에서 증명된 실력
을를의 철학은 국내를 넘어 국제 대회에서도 빛났다. 2025년, 국내 최대 규모의 맥주 대회인 KIBA 국제 맥주대회에서 설립 1년 만에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 대회에는 정빈 양조사를 비롯한 국내외 양조 전문가들이 참여해 맥주의 품질을 엄격하게 평가했다.
을를은 이번 대회에서 금상 1개, 은상 3개, 동상 3개라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이천 쌀을 활용한 독창적인 맥주 ‘쌀밥라거’가 금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정 양조사는 “지역성과 창의성을 모두 인정받은 결과라 더욱 뜻깊습니다. 이천에서 빚은 맥주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협업에서 피어난 독창성
을를의 매력은 협업 정신에서도 드러난다. 개업 전부터 국내 선배 양조장들과 손을 잡고 콜라보 맥주를 선보였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건 독일 전통 맥주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미지수’다. 훈연 몰트와 산미를 입힌 리히텐하이너 스타일로, 참숯 향을 은은하게 담아냈다.
정 양조사는 그 과정을 떠올리며 웃었다.
“지인의 바비큐 식당에서 맥아 75킬로를 훈연했는데, 16시간 동안 꼬박 붙어 있어야 했어요. 그때 입었던 옷에서는 아직도 훈연 향이 빠지지 않습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신선한 산미와 한국적인 참숯 향이 어우러진 ‘미지수’는 출시 직후부터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기억에 남는 맥주’로 손꼽혔다.
◈맥주와 함께하는 공간
브루어리 을를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1층은 가족 단위 손님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겸 카페로 운영되고, 2층은 유럽 펍을 연상시키는 탭룸으로 꾸며졌다. 음식은 샐러드와 파스타에서 스테이크까지 다양하게 준비돼, 맥주와의 페어링을 고려했다.
정 양조사는 공간에 대해서도 철학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꿈꾸는 건 지역과 함께하는 문화입니다. 이천의 재료, 이천의 사람, 이천의 이야기를 담은 맥주를 만들고 싶어요. 맥주는 결국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니까요.”
◈이천에서 건배를
저녁 무렵, 기자는 을를의 페일 에일을 한 잔 들었다.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이천 쌀의 부드러운 끝맛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했다. 정 양조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맥주는 결국 삶이에요. 쓰고, 달고, 때로는 톡 쏘기도 하죠. 하지만 함께 나누면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천에 오시면 꼭 갓 뽑아낸 맥주 한 잔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브루어리 을를. 이름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곳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뗐지만, 국제 대회 수상으로 이미 실력을 증명한 이천의 자랑이자, 우리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우리술여행] 이천에서 만난 연결의 맛, 브루어리 을를](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9aadd204-32bb-4bf5-9910-9b49cb8ef313/00-legacy-cover-1266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