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긴 여정을 마치고 리스본의 훈훈한 아침 햇살 아래 도착했을 때, 설렘은 이미 현실이 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아기자기한 언덕과 알록달록한 타일 장식의 건물들이 서로를 부둥켜안듯 촘촘히 서 있어 도시 자체가 한 편의 수채화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유럽의 땅끝이자, 대항해 시대의 출발점이기도 한 역사적인 도시다. 리스본은 처음 찾는 이에게도 너그러웠다. 낯선 골목의 낡은 트램,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햇살, 그리고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조차 작은 여행 같았다.
◆ 벨렝탑에서 만난 \'포르투갈 정신\'
리스본에서의 첫 여정은 주저할 것 없이 벨렝탑(Torre de Belém)이었다. 테주강 하구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 탑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을 항해 대국으로 이끌었던 마누엘 1세가 위대한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기념하며 세운 요새이자 등대, 그리고 리스본 항구의 파수꾼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벨렝탑은 마치 나비가 물 위에 내려앉은 듯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있었다. 원래는 테주강의 작은 섬 위에 지어진 구조물인데, 1755년 대지진으로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지금은 육지에 자리하게 되었다.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그림엽서 한 장 속에 들어선 기분을 들게 한다.
탑의 건축 양식은 ‘마누엘 스타일’로 불리는 16세기 포르투갈 특유의 장식적 건축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밧줄, 혼천의, 바다 생물, 십자가 등의 석조 조각이 외벽 곳곳에 섬세하게 새겨져 있어 보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치 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돌마다 스며 있는 듯했다. 고딕, 무데하르, 르네상스 양식이 절묘하게 뒤섞인 이 건축은 ‘포르투갈의 손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올라가 보면 그 감동은 더 깊어진다. 1층은 한때 정치범을 가두던 수용소였다고 한다. 만조가 되어 물이 들이칠 때도 죄수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2층에는 여행자와 선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벨렝의 마리아 상’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어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좁고 아슬아슬한 나선 계단을 따라 꼭대기로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 테주강 너머로 대서양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붉게 물든 벨렝 지구의 지붕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벨렝탑은 1983년,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지금도 해마다 약 4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리스본의 대표 명소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615유로, 어린이, 노인, 학생 등은 할인 혜택이 있다. 운영 시간은 5~9월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10~4월은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다. 월요일과 주요 공휴일에는 문을 닫으니 방문 전 꼭 확인하자.
한 번에 150명만 입장이 가능해 인기 시즌에는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오전 개장 시간에 맞춰 일찍 방문하거나, 해 질 녘 노을을 노려 방문하면 덜 붐비는 한편, 가장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벨렝탑 너머로 해가 천천히 대서양으로 떨어질 때, 그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포르투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모험심을 품은 미래가 교차하는 그 한 지점, 벨렝탑은 그런 곳이다.
◆ 187년 전통의 달콤함, 파스테이스 드 벨렝
리스본 벨렘 지구에서 향긋한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한 가게 앞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 벨렝탑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옆에 자리한 이곳은 단순한 디저트 가게가 아니다. 1837년부터 시작된 전통을 자랑하는, 말 그대로 에그타르트의 성지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오직 한 가지, 바로 ‘에그타르트’를 위해 모여든 풍경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가게 안에서는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따끈한 타르트를 구워내고 있었고, 페이스트리와 커스터드 크림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광경이 유리 너머로 펼쳐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에그타르트는 아직 따뜻했고, 손끝에 닿는 바삭한 느낌부터가 기대감을 높였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겉은 얇고 바삭한 페이스트리가 사르르 무너지고 속에서는 부드럽고 진한 커스터드 크림이 흘러나왔다. 바닐라 향과 함께 퍼지는 달콤함에 기자는 절로 눈을 감았다. 포르투갈에서는 여기에 설탕과 계핏가루를 살짝 뿌려 먹는데, 막상 해보니 이 조합이 에그타르트의 풍미를 한층 더 살려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소함과 단맛, 그리고 은은한 향신료의 풍미가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 안 가득 여행의 기쁨을 전해준다.
이곳은 사실 예전에는 사탕수수 정제소였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수사들이 계란 흰자로 제복에 풀을 먹인 후, 남은 노른자를 버리기 아까워 타르트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수도원이 문을 닫은 뒤에도 몇몇 이들이 레시피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비밀의 방’에서 이 에그타르트를 굽고 있다. 이 비밀 레시피는 현재 단 7명만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곳의 타르트는 리스본 어디에서도 동일한 맛을 찾을 수 없다.
매일 약 2만에서 2만 5천 개 이상의 타르트가 이곳에서 구워지고, 전 세계 미식가들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디저트\' 중 하나로 꼽힌다. 테이크아웃도 가능하지만, 매장 내부 또는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느긋하게 즐기면 또 다른 여유가 있다. 자리에 앉아 먹고 싶다면 매장 안쪽의 또 다른 줄로 들어가야 하며, 좌석이 약 400석 규모라 대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든다.
가격은 타르트 하나에 약 1.40유로. 커피까지 더해도 5유로가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이 모든 만족을 경험할 수 있으니, 포르투갈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디저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 8시부터 오픈하므로 붐비기 전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것도 팁이다. 타르트를 들고 근처 벨렘 정원이나 강변 벤치에 앉아 즐기는 것도 여행자의 특권이다.
벨렝의 유서 깊은 건축물들을 둘러보다 잠시 들른 디저트 가게에서 느낀 이 달콤한 충만함은, 리스본 여행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디저트가 아니라, 대항해 시대의 유산을 한 입에 담아내는 살아 있는 역사이자, 리스본의 진짜 ‘맛’이다.
◆ 크리스마스의 낭만, 리스본의 심장 호시우 광장
리스본의 벨렝탑과 파스테이스 드 벨렝을 탐방한 뒤, 골목을 지나 리스본 중심가의 활기찬 심장부, 호시우 광장(Praça do Rossio)으로 향했다. 여행의 온기가 남아있는 발길은 겨울이면 마법처럼 변신하는 이 광장을 향했다.
돌 위에 펼쳐진 흑백 물결 패턴의 카르사다 포르투게사(calçada portuguesa)는 걷는 내내 바다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 무늬는 1848년부터 로시오 광장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적인 보도다. 발 아래 광장은 ‘광활한 바다(Mar Largo)’를 나타내는 디자인으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반짝였다.
11월 중순부터는 광장이 크리스마스 마켓(Mercado de Natal do Rossio)으로 변신해, 작은 목조 상점들이 설치되고 전구와 LED 조명으로 장식된다. 약 70개 이상의 나무 가판대에는 현지 수공예품, 향신료, 올리브오일 비누, 도자기 등이 진열되고, 따뜻한 와인 글뤼바인과 구운 밤, 향긋한 간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크리스마스 기차도 운행되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광장 중심에는 동 페드로 4세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브라질의 초대 황제이자 포르투갈의 국왕이기도 했던 인물을 기념하며 1870년 세워진 이 높이 23미터 대리석 기둥은, 정의·지혜·힘·절제를 상징하는 네 여신상이 기둥 아래를 지키고 있다 .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페스티벌처럼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시장 너머 ‘리스본의 축제 한복판’에 들어온 느낌을 선사한다. 공연은 민속 그룹, 튜나 음악단, 필하모닉 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며, 방문객들은 쇼핑과 함께 문화적 체험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
밤이 깊어가면 광장은 조명이 켜진 분수와 함께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로 변신한다. 물결무늬 바닥 위로 조명이 부드럽게 흘러들며, 빛과 그림자가 일렁이는 장면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따뜻한 음료를 들고 걷는 연인과 가족들, 그리고 불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눈빛들까지. 호시우 광장은 리스본의 겨울을 가장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전해주는 공간이다.
단, 많은 인파가 몰리는 관광 명소인 만큼 소지품 관리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따뜻한 와인을 한 잔 들고, 광장 한 켠에 앉아 주변을 산책하는 느낌까지 천천히 음미해 보길 권한다.
벨렝탑의 웅장한 역사, 파스테이스의 달콤함을 지나 도착한 호시우 광장. 이곳은 리스본의 과거가 살아 숨 쉬고, 현재가 축제처럼 펼쳐지며, 여행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빛과 향의 무대’였다.
리스본 중심에서 벨렝탑의 역사적 여운을 뒤로하고,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달콤함을 체득한 뒤, 호시우 광장에서 겨울의 축제 분위기를 즐긴 나는 버스를 타고 신트라 방향으로 향했다. 약 1시간 30분 후, 신트라 산악 지대를 지나 도달한 곳이 바로 파티마(Fátima)였다.
차에서 내려 거대한 광장을 마주하니, 그 규모와 정갈함에 숨이 멎을 듯했다. 이곳은 1917년 세 어린 목동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 위에 세워진 성지다.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이 신성한 공간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믿음과 회복, 평화를 위한 공간이었다. 2024년에는 약 620만 명이 이곳을 방문하며 그 성스러움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성당 광장 왼편에는 성모 발현의 장소를 기리는 소성당(Chapel of Apparitions)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인근에는 어린 목동들이 살던 알주스트렐 마을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이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실제 그들이 걸었던 경로를 따라 신심의 여정을 체험할 수 있다.
광장 중심에는 높이 솟은 65m 높이의 로사리오 성당 탑과, 신앙의 상징인 탑 아래 15개 제단과 1952년 제작된 대형 오르간이 자리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저녁이 되면 수백에서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촛불을 들고 야간 촛불 행렬에 참여하는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오르는 작은 불빛들이 하늘을 향하는 듯해 가슴 깊이 울림을 전한다.
성지 내부엔 기념품 성물과 묵주 등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이 있고, 2024년 재개관한 ‘지저스 라이프’ 왁스 박물관(Museum of the Life of Christ)은 예수 생애의 주요 장면 33개를 밀랍 인형으로 재현해 몰입감 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종교인도 이곳에 오면 묘한 평온과 경건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도 소리, 조용한 묵주기도, 성모상이 품은 희망의 메시지는 여행의 한 페이지라기보다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파티마는 단순한 관광 장소를 넘어서, 리스본에서 시작된 여행이 자아와 영혼을 위한 여정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믿음의 발원지에 다다른 이 경험은, 내 여행이 외형을 넘어 마음으로도 기록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 땅끝에서 마주한 경외감, 까보다로까
리스본의 역사와 맛, 빛의 여운을 뒤로하고, 나침반이 한 점을 가리키듯 여정은 계속되었다. 도시를 벗어나 조금 더 깊은 곳, 마음이 머무는 장소를 향해 북쪽으로 향한 발걸음은 파티마 대성당을 지나 여행자는 신트라 방면으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지나 도착한 곳, 바로 서유럽의 땅끝, 까보다로까(Cabo da Roca)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감도는 찬 공기와 15km/h를 웃도는 강한 해풍은 여행자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 해안 절벽 위에서는 끊임없이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함께,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라고 표현한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해발 약 140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세워진 빨간 등대와 기념 십자가탑, 그리고 세계 서쪽 끝을 알리는 작은 석판 기념비는 이곳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지리적 ‘끝’을 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 특히 십자가 탑 뒤편에는 ‘Camões’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문학과 자연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관광 안내센터에서는 방문 인증서(€11)를 받아들 수 있으며,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아이들과 함께온 여행자들이 깜짝 기념품으로 챙기는 풍경도 보였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무료 입장이지만, 간단한 화장실과 작은 기념품 가게, 그리고 가벼운 음식과 음료를 파는 레스토랑 아르테사나토 바(Artesanato Bar)가 있어 장시간 머물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여행자가 체감한 까보다로까는 한 입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탁 트인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장소였다. 바닷바람은 겨울에도 차갑고 예측할 수 없었지만, 그 찬바람 덕분에 대형 투어버스들이 머무르지 않아 조용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여정에 여유가 있다면 등대를 중심으로 북쪽 해안을 따라 프라이아 다 우르사(Praia da Ursa)까지 이어지는 하이킹을 추천한다. 약 20분 정도면 닿는 이 해변에는 황금빛 모래사장과 기이한 바위들이 자리해, 까보다로까보다 한층 자연의 속살에 더 깊이 닿을 수 있다 . 그러나 절벽 아래로 위험하게 내려가는 경로도 있으니 항상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자, 여행자의 발걸음은 다시 절벽 끝으로 향했다. 수평선 너머로 펼쳐지는 태양은 붉게, 노랗게, 금빛으로 물들었다. 끝과 시작이 함께 존재하는 이 장면 앞에서,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마치 여행의 한 페이지가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작고 단순하지만 강렬한 상징의 땅끝, 까보다로까는 리스본의 역사와 맛, 축제와 정취와는 다른 차원의 자연을 보여주었다. 대항해 시대를 지나 현대 여행자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끝과 인간의 시작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받은 감각의 울림은 여행의 마무리이면서도, 다음 여정을 위한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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