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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에서 피어난 머루의 품격, 한국 와인의 새로운 기준

강원 삼척 신리 너와마을, 유기농 머루로 만든 ‘끌로너와’ 와인으로 세계를 꿈꾸다

김보라 기자
폐광촌에서 피어난 머루의 품격, 한국 와인의 새로운 기준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태백산맥 깊숙한 곳, 너와마을은 과거 석탄산업의 기억만 남은 폐광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머루향이 가득한 유기농 와인의 고향이자, 6차산업의 모범 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9~10일 이곳 너와마을을 방문해 김덕태 너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와 김소정 매니저를 만나, 끌로너와 와인에 담긴 철학과 도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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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너와 와인(사진=트래블아이)

 


◈전통 가옥 너와집에서 만난 마을의 재생

신리에 위치한 ‘너와마을’(http://neowa.invil.org)은 삼척시가 강원도의 전통 가옥인 너와집을 복원하고, 도시 어린이들을 위한 농촌 체험과 농업 교육이 이뤄지는 복합 체험마을이다.
10여 채의 너와집은 기와 대신 나무판을 덮은 너와지붕이 특징으로, 2002년부터 마을 형태로 재건된 것이다. 마을에는 통방아, 물레방아, 장작불 아궁이, 황토방 숙소 등이 전통 방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김덕태 대표는 “한때 너와집도 사라질 뻔했지만, 도로 개설로 철거 위기였던 집을 옮겨와 손님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며 “산골마을의 삶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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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을 손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제공=김덕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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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발효시키고 있는 끌로너와 와인(제공=김덕태 대표)

 

◈유기농 머루, 그리고 진한 한 모금의 향

김 대표가 귀향해 머루를 재배한 건 2003년. 당시 8농가에서 시작한 머루농사는 지금 20여 농가, 1만 평 규모로 확대되었고, 유기농 무농약 방식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초생재배 방식으로 제초제 없이 키운 머루는 땅 속 미생물과 함께 자랍니다. 그 맛이 다를 수밖에 없죠.”

이곳에서 생산된 머루는 두 가지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단맛이 나는 ‘너와머루와인’, 그리고 산미가 인상적인 ‘끌로너와(Clo Neowa)’다.
머루는 포도보다 5~10배 많은 칼슘, 인, 안토시아닌이 포함된 건강 열매다. 혈액순환 개선, 부인병 예방에도 좋고, 와인으로 만들면 깊고 깨끗한 풍미가 더해진다.

기자가 직접 시음해본 결과, ‘끌로너와 스위트’는 묵직한 바디감 속에 머루 특유의 달콤함이 부드럽게 녹아 들어 목넘김이 매우 유연하고 은은한 여운을 남겼다. 스윗한 풍미 덕에 등갈비찜이나 김치찜과 함께하면 음식의 감칠맛을 더욱 살려준다.

반면, ‘끌로너와 드라이’는 탄닌은 적지만 머루 본연의 진한 풍미와 향으로 바디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와인이었다. 오크 숙성 없이도 자연 발효로 이끌어낸 드라이한 맛은 지나치게 떫지 않고, 삼겹살이나 바비큐처럼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목 넘김 후에도 머루의 산뜻한 산미가 코끝에 남으며, 한국적인 식문화에 어울리는 드라이 와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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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너와 와인은 바비큐나 등갈비 김치찜 등과 잘 어울린다(제공=김덕태 대표)

 

◈항아리에서 빚는 황토지붕 와인

너와마을의 와인은 전통적인 너와지붕과 황토 건축물 안의 항아리에서 숙성된다.
“스테인리스 탱크나 오크통 대신 항아리를 쓰는 건, 온도와 수분 조절이 자연스럽고 전통 발효 방식에 충실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온 자연 발효를 통해 천천히 익어가는 와인은 향과 맛이 더욱 진하게 농축된다. 알코올 도수 12%, 드라이 와인은 고기 요리에 잘 어울리고, 단맛이 나는 와인은 식전주나 디저트 와인으로도 적격이다.

이곳에서는 연간 약 3만 병의 와인이 생산되며, 최근에는 돌배로 만든 신제품 ‘도레(Dorée)’가 탄생해 오는 8월 싱가포르 수출을 앞두고 있다. 이 와인은 김소정 매니저가 직접 기획·작명한 것으로 ‘황금빛’을 의미한다.


◈전통에서 식초로… 건강한 발효의 확장

머루와인은 단순히 마시는 술을 넘어 식초로도 재탄생된다. ‘너와쉐프 머루식초’는 머루와인을 2년 이상 발효시켜 만든 발사믹 스타일의 고급 발효식초다.
김 대표는 “이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에도 ‘소염다초(小鹽多酢)’라는 말이 있죠. 식초를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이야기입니다”라며 머루식초의 가치와 쓰임을 강조했다.

식초는 생수에 희석해 음용하면 피로 회복에 좋고, 샐러드 소스나 초고추장에도 어울리며, 약간 끓여 감자전분과 섞으면 홈메이드 소스로도 활용 가능하다.


◈체험으로 이어지는 와인의 품격

너와마을영농조합은 머루 재배(1차), 와인·식초 생산(2차), 숙박·체험(3차)을 아우르는 강원도 6차산업 인증기업이다.
지난해에도 100여 명의 체험단이 방문해 너와집에서 숙박하고 와인과 마을 체험을 함께 즐겼다. 최근에는 와인을 활용한 피부 미용과 목욕 체험에 대한 문의도 꾸준히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안마셔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마셔본 사람은 없습니다”라며 웃었다.

“정성껏 키운 토종머루로 만든 와인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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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너와 와인 스위트(제공=김덕태 대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결국 세계적인 것"

김 대표의 딸 김소정 매니저는 한국 전통와인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맡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지금, 끌로너와 와인도 가장 한국적인 와인으로 만들겠습니다.”

머루 한 알에서 시작된 마을의 재생, 가족의 협업, 그리고 한국 와인의 새로운 미래.
그 모든 것이 지금, 강원 삼척 너와마을에서 천천히 숙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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