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은빛 억새가 일렁이던 제주 중산간을 지나 백록담을 향해 고개를 들자 거대한 오색 물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가을의 끝자락, 대한민국 남단 최고봉 한라산이 한 해 중 가장 화려한 붉은빛 옷으로 갈아입고 탐방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영실기암, 성판악 코스 등 해발 1000m 안팎의 숲길은 온통 불붙은 듯 붉은 터널을 이룬 한라산 단풍·사진제공=제주지방기상청제주지방기상청은 6일 한라산 단풍이 마침내 산 전체의 80% 이상을 물들이며 올가을 절정에 공식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한라산 단풍의 걸음은 예년과 사뭇 다른 리듬을 탔다. 지난달 14일 첫 단풍이 관측된 이후 꼭 23일 만에 절정에 다다랐다. 첫 단풍 시작일은 평년과 같았으나 작년(10월 31일)과 비교하면 무려 17일이나 빨랐다. 절정 시기 역시 지난해(11월 11일)보다는 닷새 앞당겨졌고, 평년(10월 28일)에 비해서는 9일가량 늦게 완성됐다. 유난히 길었던 늦더위 이후 찾아온 청명한 가을 날씨와 알맞은 일교차가 빚어낸 자연의 합작품이다.
기상 관측의 기준점인 어리목 일대를 비롯해 영실기암, 성판악 코스 등 해발 1000m 안팎의 숲길은 온통 불붙은 듯 붉은 터널을 이뤘다. 단풍 시작이 산 정상에서부터 20%가량 물들었을 때를 의미한다면, 절정은 80% 이상이 오색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는 시기를 뜻한다. 현재 한라산은 발길 닿는 곳마다 졸참나무와 서어나무,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기암괴석과 환상적인 조화를 뽐내고 있다.
특히 가을철 한라산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영실 코스는 병풍바위와 오백장군 바위 틈새로 붉고 노란 잎들이 융단처럼 깔려 산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자랑하는 어리목 코스 역시 사제비동산과 만세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내내 타오르는 단풍과 은빛 억새가 어우러져 가을 제주의 정취를 오롯이 전한다.
산행을 계획하는 탐방객들은 날씨와 코스별 특성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백록담 정상을 밟을 수 있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예약제를 통해 사전 예약을 마쳐야 입산할 수 있다. 반면 예약 없이 찾을 수 있는 영실과 어리목, 돈내코 코스는 윗세오름과 남벽분기점까지 가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기상청 '날씨누리'의 유명산 단풍현황 메뉴를 활용하면 실시간 단풍 관측 사진과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주도 관광 관계자는 "한라산의 가을 단풍은 첫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거세지면 순식간에 낙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 초까지가 가장 눈부신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고지대는 기온 변화가 극심하고 해가 일찍 지는 만큼 방한복과 비상식량, 안전 장구를 꼼꼼히 챙겨 안전한 산행을 즐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황금빛 억새,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붉은 단풍까지 제주의 가을은 지금 사계절 중 가장 풍요로운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