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템스강 남쪽의 유서 깊은 예술 중심지 사우스뱅크 극장에 푸른 눈의 현지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해 환호성을 터뜨렸다. 스크린 위에서 빚어지는 한국 모녀의 애틋하고도 유쾌한 복수극에 눈시울을 붉히다 박장대소를 터뜨린 런던 관객들은 K-무비가 뿜어내는 독보적인 정서에 깊숙이 매료됐다.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한국 영화 축제인 '런던한국영화제'가 21돌을 맞아 런던 BFI 사우스뱅크 극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영국 런던 BFI 사우스뱅크 극장에서 열린 제21회 런던한국영화제 개막식 전경, 많은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운 모습.·사진제공=주영한국문화원개막 무대를 장식한 화제작은 김미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 이정은과 공효진이 호흡을 맞춘 로드무비 '경주기행'이었다. 개막식 현장에는 두 주연 배우와 김미조 감독이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고 무대인사에 올라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에는 현지 저명 영화 저널리스트 리 싱어의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졌다. 티켓 예매 오픈과 동시에 450석 전석이 조기 매진된 극장 안은 두 배우의 제스처 하나, 말 한마디마다 쏟아지는 박수로 들썩였다.
런던한국영화제 개막작 '경주기행' 상영 후 주연 배우 공효진, 이정은과 김미조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사진제공=주영한국문화원메가폰을 잡은 김미조 감독은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해치지 못할 만큼 순박한 가족이 피치 못할 복수에 나선다는 기막힌 아이러니에서 첫 구상을 시작했다"며 "가족의 애환과 웃음, 서스펜스가 얽히는 장르의 변주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됐다"고 연출 의도를 털어놓았다.
모녀로 분해 관객을 울리고 웃긴 두 배우의 소회도 남달랐다. 이정은 배우는 "국경과 언어의 벽을 뛰어넘어 가족애라는 인류 보편의 정서를 여성 감독의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을 런던 관객에게 선보여 벅차고 기적 같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공효진 배우 역시 "네 모녀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사랑이 영국 관객들에게도 큰 공감과 흥미를 안긴 것 같아 기쁘다"며 "현지 관객들과 한 공간에서 숨을 죽이고 함께 웃으며 영화를 나눈 순간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는 영국 공영방송 BBC와 글로벌 문화 매거진 타임아웃, 영화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 무비(MUBI) 등 해외 유력 언론과 현지 영화계 주요 관계자들이 대거 집결해 유럽 무대에서 위상을 굳힌 K-시네마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축제 열기는 연일 매진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막 이튿날에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125석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상영됐다. 이 감독은 사전 녹화 영상을 통해 "영화는 결국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향한다"며 "우리 가슴속에 끝까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4일 프랑스 문화원 시네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필감성 감독의 코미디 영화 '좀비딸' 특별 상영회가 열려 이정은 배우가 재차 관객과 호흡을 맞췄다. 관객들은 배우 특유의 감칠맛 나는 생활 연기 비결과 극 중 고양이 캐릭터 '애용이'와의 촬영 비하인드를 집요하게 질문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영화 '좀비딸' 상영 후 이정은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의응답하는 모습.·사진제공=주영한국문화원오는 16일까지 런던 시내 핵심 상영관 3곳에서 펼쳐지는 이번 영화제는 15일간 총 22편의 수작을 스크린에 올린다. 12일 한국계 캐나다 감독 제롬 유의 장편 데뷔작 '몽그렐스', 14일 김진유 감독의 '흐르는 여정' 상영회가 줄을 잇는다. 대미를 장식할 폐막작으로는 김명민, 박해수, 이신영 주연의 액션 누아르 '슬픈 열대'가 선정돼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이 런던을 직접 찾아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런던아이와 빅벤이 내려다보이는 템스강 산책로를 따라 걷다 마주하는 사우스뱅크와 시네 뤼미에르는 영화와 현대 예술을 사랑하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필수 순례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