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화투판이나 낮잠으로 무료하게 채워지던 동네 경로당이 활기찬 웃음소리와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찬 교실로 변신했다. 거동이 불편해 복지관 문턱을 넘기 힘들었던 팔순, 구순 어르신들이 동네 사랑방에서 스마트폰을 배우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다.
안양시가 평생학습 최우수상을 수상했다.·사진제공=안양시안양시가 추진해 온 찾아가는 노년 맞춤형 평생학습 '신(新)노년의 평생학습 경로당 그린나래' 사업이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3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에서 사업부문 최우수상(교육부장관상)을 거머쥐었다.
'그린나래'는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순우리말이다.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어르신들이 배움을 통해 가슴속에 희망의 초록 날개를 직접 달고 날아오르길 바라는 따뜻한 뜻을 품고 있다. 멀리 떨어진 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가기 어려운 고령 어르신들을 위해 전문 교육 지도사가 매주 동네 경로당을 직접 발로 찾아가 한 곳당 연간 10~15회에 걸쳐 맞춤형 수업을 펼친다.
지난 2012년 소박한 시범사업으로 첫발을 뗀 이 프로젝트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려 14년 동안 묵묵히 이어졌다. 그동안 지도사들의 발길이 닿은 경로당만 누적 813곳에 달하며, 책상을 마주한 어르신은 1만 3,327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참여 어르신의 70% 이상이 80세를 넘긴 초고령층이라는 점에서, 배움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들에게 실질적인 삶의 온기를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수업 내용은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딱 맞춘 실생활 밀착형이다. 스마트폰으로 가족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사진을 전송하는 디지털 활용법부터 혈관과 관절을 지키는 노년 건강 체조, 이웃 및 자녀와 원만하게 대화하는 소통법,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웰다잉, 노년의 소일거리 찾기까지 다채롭다. 백발의 학생들은 돋보기를 고쳐 쓰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이웃들과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일상 속 작은 성취감을 맛본다.
이 프로젝트가 14년 장수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 뒤에는 안양시가 직접 육성한 '노인통합교육지도사'들의 헌신이 있었다. 2012년부터 3기에 걸쳐 83명이 배출된 지도사들은 주로 지역 중·장년층으로 구성됐다. 배움의 갈증을 느끼는 고령 어르신에게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에게는 보람찬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열어주는 끈끈한 '지역 상생'의 고리를 완성한 셈이다.
안양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평생학습을 통해 고립되지 않고 활기찬 노후를 누릴 수 있도록 그린나래 사업의 내실을 더욱 다져갈 것"이라며 "지난 14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로당 문을 두드리며 어르신 곁을 묵묵히 지켜 준 노인통합교육지도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수리산 자락과 안양천을 끼고 있는 안양은 발길 닿는 곳마다 푸근한 정이 배어 있는 도시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고 나누는 기쁨이 골목마다 피어나는 이곳에선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가 가장 따뜻한 풍경이 된다. 늦가을 정취가 무르익는 안양천 산책로를 걸으며, 삶의 지혜와 배움의 열정으로 물든 도시의 훈훈한 골목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