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구수한 된장 냄새와 알싸한 고추장 향기가 강원도 늦가을 산골마을 마당을 가득 채웠다. 주름진 어르신의 손길을 따라 아이들의 서툰 손놀림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붉은 고춧가루와 메줏가루가 조청과 어우러지며 반짝이는 윤기를 뿜어냈다. 스마트폰 화면에만 익숙하던 아이들의 눈빛에는 신기함이, 적적하던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만에 활짝 핀 웃음꽃이 번졌다. 숲속마당협동조합이 홍천군 영귀미면에서 영귀미청소년공간 ‘꿈틀’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들이 한데 어우러진 세대통합 프로그램 ‘행복한 장독대’의 결실을 맺었다.
행복한 장독대·사진제공=홍천군 숲속마당협동조합농촌 돌봄서비스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이번 ‘행복한 장독대’는 우리 고유의 발효 식문화를 매개로 아이들과 어르신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의 벽을 허문 뜻깊은 자리였다. 봄부터 정성스레 장을 담그고 햇볕과 바람을 맞히며 익혀온 시간 끝에, 이날 참가자들은 햇고추장을 손수 버무리고 한 해 동안 묵묵히 익어간 항아리 속 전통 된장을 떠내 정성스럽게 소분했다.
마당에 둘러앉은 청소년들은 할머니가 일러주는 비법에 귀를 기울이며 굵은 소금과 조청의 비율을 맞췄고, 어르신들은 곁에서 땀을 닦아주며 삶의 지혜와 손맛을 고스란히 전수했다. 세대를 가로막던 서먹함은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장 버무리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함께 땀 흘려 완성한 전통 된장과 고추장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아이들의 따스한 온기와 어르신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합작으로 완성된 장류는 오는 11월 14일 열리는 숲속마당협동조합 성과공유회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넉넉하게 나눌 예정이다. 땀 흘려 만든 결실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농촌 공동체의 따스한 정을 지역 사회 전역으로 퍼뜨리겠다는 취지다.
현장에 함께한 숲속마당협동조합 관계자는 "아이들이 어르신들의 지혜를 배우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밝은 에너지 속에서 활력을 되찾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며 "전통 먹거리를 함께 빚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농촌 공동체가 지닌 본래의 따스한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다시금 깊이 확인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이웃 간의 왕래가 뜸해진 요즘, 숲속마당협동조합은 장 담그기 외에도 지역사회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위한 든든한 '반찬 배달'을 비롯해 뻐근한 몸을 정성스레 어루만져 주는 '찾아가는 약손', 단정한 손길을 건네는 '찾아가는 이·미용',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그림책 돌봄교실', 청정 자연을 체험하는 '우리동네 생태학교'까지 촘촘한 돌봄 그물망을 엮어가며 시골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알알이 익어가는 장독대처럼, 사람과 사람의 온기를 잇는 숲속마당의 발걸음은 삭막해진 현대 사회 속에서 진정한 상생과 농촌 돌봄이 무엇인지 따뜻한 울림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