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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원주

600년 역사 원주향교서 울려 퍼진 기로연

90세 안팎 원로 어르신 모시고 헌작례·축하연 펼쳐

김보라 기자
원주향교 한옥 전통 건물 앞에서 전통 한복을 입은 여러 명의 어르신과 행사 관계자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
원주향교에서 열린 2026년도 기로연 행사 단체 기념사진으로, 행사 참석자들이 전통 복식을 갖추고 자리한 모습.·사진제공=원주시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단풍이 곱게 물든 600년 역사의 원주향교 명륜당 앞마당에서 조선 왕실의 기품 있는 경로 잔치가 생생하게 재현됐다. 흰 도포를 차려입은 유림들이 허리를 굽혀 원로 어르신들께 술잔을 올리며 무병장수를 빌고, 전통 국악 가락이 뜰 안을 그윽하게 채웠다. 원주향교는 지역 내 덕망 높은 장수 어르신들을 주빈으로 정중히 모시고 옛 선조들의 숭고한 효 사상을 되새기는 전통 의례인 ‘기로연(耆老宴)’을 성대하게 열었다. 기로연은 조선 태조 시절부터 시작된 국가적인 예우 행사다. 당시 조정에서는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전직 고위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기로소(耆老所)를 두고, 매년 봄 상사일(上巳日)과 가을 중양절(重陽節)에 임금이 직접 하사한 풍성한 술과 음식을 나누며 큰 연회를 베풀었다. 왕실의 품격과 효의 정신이 깃든 이 유서 깊은 전통은 오늘날 지역 유림과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어르신을 공경하고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을 잇는 뜻깊은 지역 문화 축제로 계승되고 있다. 엄숙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 속에 펼쳐진 이번 기로연에는 관내에서 오랜 세월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덕망을 쌓아온 90세 안팎의 장수 어르신들이 주빈으로 귀하게 초대됐다. 원용묵 원주향교 전교를 비롯해 김정남 원주부시장, 하석균 강원특별자치도의원 등 지역 각계 인사들은 몸을 낮추고 주인의 예를 갖춰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극진히 맞이했다. 이어 어르신들의 무병장수와 만수무강을 간절히 염원하는 ‘헌작(獻爵, 술잔을 올리는 의례)’을 차례로 올리며, 평생을 바쳐 지역을 일구고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어준 어르신들의 헌신과 삶의 지혜에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바쳤다.
원주향교 마당에서 전통 한복을 입은 행사진행자가 어르신에게 술잔을 드리며 존경을 표하는 장면.
기로연 행사 중 전통 의례인 헌작례 모습으로, 참석자가 어르신께 술잔을 올리고 있다.·사진제공=원주시
헌작 의례가 끝난 뒤에는 흥겨운 전통 축하 공연과 정갈하게 차려진 연회 음식이 마련되어 뜰 안 가득 훈훈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행사가 열린 원주향교는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유서 깊은 교육 공간으로, 조선 초기부터 인재를 기르고 충효의 가치를 심어온 곳이다. 향교의 오랜 건축물과 고목들이 빚어내는 고즈넉한 풍광 속에서 옛 복식을 갖추고 행해지는 기로연 의식은 참석한 어르신들에게는 잊지 못할 자긍심을, 젊은 세대와 나들이객들에게는 잊혀가는 효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살아있는 역사 체험의 장이 됐다.
전통 복장을 한 행사진행자가 원주향교 마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선물 상자를 건네며 인사하는 장면.
기로연 행사에서 선물이 어르신들에게 증정되는 모습으로, 참석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사진제공=원주시
남기주 원주시 역사박물관장은 “향교 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마다 정성껏 운영되는 기로연 행사를 통해 우리 지역사회에 전통문화와 유교사상의 올바른 가치가 널리 보급되기를 바란다”라며 “오늘 귀한 걸음으로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어르신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고 평안하게 만수무강하시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라고 전했다. 퇴색해가는 경로효친의 미덕이 안타까운 요즘, 옛 격식을 오롯이 갖춰 어르신들의 은혜를 기린 원주향교의 기로연은 늦가을 원주를 찾은 여행자들에게도 마음 따뜻한 울림과 묵직한 쉼표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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