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조선의 왕이 아버지를 위해 만든 종이 557년의 세월을 건너 국보가 됐다. 세조의 명복을 빌며 1469년 주조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이 보물 지정 63년 만에 국보로 승격되면서 남양주시에도 첫 국보가 탄생했다. 붉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광릉숲 천년고찰 봉선사에서는 28일 이를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 범종루 앞에서 열린 국보 지정 기념식에는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호산 봉선사 주지스님, 최현덕 남양주시장, 불교계 인사와 지역 주민들이 참석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국보 지정 기념식에 참석한 스님들과 관계자들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남양주시이날 행사는 봉선사 동종 복제품 타종과 국보 지정서 전달, 축하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허민 청장이 호산스님에게 지정서를 전달하면서 지난 4월 23일 국보로 승격된 봉선사 동종의 새로운 위상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후 63년 만에 맞은 경사다.
국보 지정 기념식에서 최현덕 남양주 시장과 봉선사 주지스님이 참석자들과 인사하며 뜻깊은 순간을 나누고 있다.·사진제공=남양주시봉선사 동종은 조선 제8대 임금 예종이 아버지 세조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469년 제작한 대형 청동종이다. 세조가 잠든 광릉 인근에 봉선사를 조성하고 종을 봉안한 데에는 부왕을 향한 왕실의 추모와 불교적 염원이 담겨 있다.
조선 제8대 임금 예종이 아버지 세조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1469년에 제작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의 모습이다.·사진제공=남양주시높이 2m가 넘는 거대한 종에는 조선 전기 금속공예의 정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국 종의 형식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한국 전통의 문양과 조형미를 결합해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종 표면에 새겨진 기록도 눈길을 끈다. 당대 문장가 강희맹이 글을 짓고 정난종이 쓴 주종기에는 제작 배경과 연대, 장인들의 이름까지 남아 있다. 500년 전 왕실의 제작 과정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귀중한 역사 기록이다.
무엇보다 봉선사 동종은 조선 전기 왕실이 발원한 대형 동종 가운데 처음 봉안한 자리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유일한 사례다. 수차례 전란과 격변을 겪으면서도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균열이나 구조적 결함도 거의 없어 보존 가치가 높다. 이번 지정으로 우리나라 동종 가운데 여섯 번째 국보가 됐다.
봉선사는 종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찾아갈 만하지만 주변 풍경까지 더하면 가을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광릉숲의 울창한 나무들이 사찰을 감싸고, 경내에는 한글 현판을 단 큰법당과 고즈넉한 전각들이 자리한다. 인근 광릉과 국립수목원까지 연결하면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기는 하루 여행도 가능하다.
왕의 기도로 태어난 종은 이제 한 도시의 자랑이자 온 국민이 지켜야 할 국보가 됐다. 광릉숲에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봉선사 범종루 앞에 서면 557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종이 왜 특별한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월은 흘렀지만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간절한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