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사각틀 같은 사무실 파티션을 박차고 나와 가을빛이 곱게 내려앉은 유적지로 출근한 공무원들이 있다. 모니터 불빛과 키보드 소리 대신 단풍 든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청양군 워케이션 시행·사진제공=청양군청양군은 지난 27일 목면 송암리에 위치한 면암최익현기념관에서 전 부서 희망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과 쉼을 결합한 '청양군 가을 일마실의 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일상적인 사무실을 벗어나 지역의 대표 역사·문화 공간을 원격 업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새로운 시도다.
'일마실'은 일(Work)과 나들이를 뜻하는 순우리말 '마실'을 엮은 이름처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일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획된 청양형 로컬 워케이션이다. 단순한 야외 나들이를 넘어 실제 정규 근무시간 동안 노트북을 켜고 현장 원격근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날 근무 장소가 된 면암최익현기념관은 조선 말기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모덕사(慕德祠)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칠갑산 자락의 수려한 산세와 고즈넉한 한옥 정취가 병풍처럼 펼쳐진 이곳은, 평소에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사색과 평온을 선사하는 청양의 대표 명소다.
참여 직원들은 오전 동안 기념관 내 마련된 열린 공간에서 조용히 몰입형 개인 업무를 처리했다. 회의와 전화 벨소리가 끊이지 않던 청사 환경과 달리, 정갈한 한옥 창살 너머로 가을 풍경을 마주하며 진행된 업무는 자연스럽게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냈다.
오후에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전문 명상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전문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모덕사 경내를 둘러보며 면암 선생의 올곧은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다. 바쁜 일상 탓에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고장의 역사적 가치를 배우고, 고택 정원과 은행나무 숲길을 천천히 거니는 '소요(逍遙)' 활동은 지친 공직자들에게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현장에 참여한 직원은 "매일 보던 회색빛 사무실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과 옛 정취가 가득한 곳에서 일하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 전환이 절로 됐다"며 "익숙한 곳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일에 몰입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청양군 관계자는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깨고 지역의 숨은 명소에서 일과 쉼을 병행하는 경험이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기를 바란다"며 "참여 직원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수렴해 조직문화 혁신과 업무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다채로운 실험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은 현재 '정확하자(Perfect)', '줄이자(Reduce)', '공유하자(Open)'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내건 '행정PRO+(플러스)' 혁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보고서 양식을 줄이고 부서 간 칸막이를 낮추는 등 군정 전반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있는 청양군이, 이번 '일마실'을 시작으로 공직 사회의 경직성을 깨는 창의적 워케이션 모델을 지역 곳곳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역사가 숨 쉬는 고택과 숲길이 하루짜리 근사한 공유 오피스로 변신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현대의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길어 올리는 '일마실'은, 지역 자원을 새롭게 조명하는 스마트한 청양 여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