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소복이 쌓인 눈 사이로 붉고 노란 등불이 물 위에 뜬다. 김이 오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건너편 연못에서 거대한 ‘뇌신’ 네부타가 마주 본다. 일본 아오모리현 미사와시의 온천 숙소 ‘아오모리야 by 호시노 리조트’가 오는 12월 3일부터 내년 3월 7일까지 겨울 한정 프로그램 ‘네부리나가시 등롱’을 선보인다.
눈 내리는 밤, 온천 연못 위에 붉고 노란 뇌신 네부타 조형물이 떠 있다. 작은 등롱들도 함께 물 위에 띄워져 환상적인 겨울 풍경을 자아낸다.·사진제공=호시노 리조트여름 축제의 열기를 겨울 온천으로 옮겨온 행사다. 눈 덮인 연못에 축제 조형물과 작은 등롱을 띄우고, 투숙객은 따뜻한 물에 앉아 불빛이 흔들리는 풍경을 감상한다. 2011년 시작돼 올해로 16년째. 일본 도호쿠 북단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겨울 풍경이 다시 돌아온다.
행사 이름에 담긴 ‘네부리나가시’는 졸음과 부정한 기운을 물에 흘려보내던 옛 풍습이다. 여름 농사에 지친 사람들이 나뭇잎과 등롱에 피로와 액운을 실어 강과 바다로 떠나보내며 건강을 빌었다. 이 풍습은 칠석 행사와 결합해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의 뿌리 중 하나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축제의 정확한 기원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오모리야는 이러한 기억을 노천탕 ‘우키미(浮湯)’에서 되살린다. 탕이 넓은 연못 쪽으로 뻗어 있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구조다. 연못을 따라 떠다니는 작은 등롱에는 투숙객의 소원이 담긴다. 한 해의 묵은 걱정을 내려놓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도 함께 실었다. 소원 접수 시간은 오후 3시부터 9시까지다.
투숙객이 연못 위에 작은 네부리나가시 등롱을 띄우고 있는 모습. 등롱마다 소원을 담아 겨울밤에 띄운다.·사진제공=호시노 리조트연못 한가운데에는 번개와 물을 다스리는 신 ‘뇌신(雷神)’이 자리 잡는다. 날카로운 표정과 역동적인 몸짓, 선명한 색채가 눈밭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재앙을 막고 앞날의 평안을 비는 뜻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2022년부터 겨울 노천탕을 지키고 있다.
뇌신을 만든 사람은 네부타 제작자 타케나미 히로오다. 1989년 첫 대형 네부타를 제작한 그는 오랜 창작 활동을 인정받아 2023년 제7대 네부타 명인에 올랐다. 철사와 종이로 형태를 빚고 내부에 빛을 넣는 네부타 특유의 제작 방식이 설경을 배경으로 한층 또렷해진다. 여름 거리에서 만나는 화려한 축제가 겨울에는 고요한 연못 위 전시로 모습을 바꾼 셈이다.
밤 10시부터 11시까지는 분위기가 한 차례 더 달라진다. 네부타 축제 악단의 연주를 담은 피리 소리가 노천탕에 흐른다. 축제의 북소리와 함성 대신 가늘게 이어지는 선율이 눈 내리는 밤을 채운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공기, 환한 등불과 어두운 숲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다.
온천욕은 오전 5시부터 11시 30분, 오후 2시 30분부터 자정까지 가능하다. 조명은 오후 5시에 켜져 자정까지 이어진다. 고마키 온천의 알칼리성 단순온천을 사용하며, 행사는 투숙객을 대상으로 별도 예약 없이 무료로 운영한다. 기상 상황에 따라 일부 연출이 중단될 수 있다.
탕에서 나왔다고 볼거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숙소 공원의 ‘네부타 눈빛(네부타 유키아카리)’에서는 십이지 동물과 아오모리의 지역색을 결합한 네부타 조형물 여섯 점을 만날 수 있다. 내년 3월 7일까지 운영하며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불을 밝힌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눈과 색채가 만든 대비를 가까이서 살펴보기 좋다.
아오모리야 공원 내 네부타 눈빛 조형물. 눈 위에 설치된 다양한 동물과 지역색을 담은 네부타 조형물들이 밤에 불을 밝히고 있다.·사진제공=호시노 리조트아오모리야는 미사와역에서 걸어서 약 15분 거리다. 미사와역과 미사와공항에서 무료 셔틀도 운행하지만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인천~아오모리 대한항공 국제선 승객을 위한 공항 셔틀도 안내돼 있어 이용 조건을 미리 확인하면 된다.
아오모리의 네부타는 여름에 가장 뜨겁게 타오르지만, 겨울에는 다른 얼굴로 여행자를 맞는다.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소원 하나를 띄우는 밤. 빠르게 지나온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볼 이유로 이만한 풍경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