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횡성
[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
풍수원성당 붉은 벽돌에 새겨진 세월, 옛 국도 2.4㎞에서 바람을 가르다
물속에 잠긴 마을의 그리움 품은 횡성호수길, 안흥찐빵에 담긴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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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 횡성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도시의 빌딩이 사라진 자리에 낮은 산들이 이어지고, 길가의 나무들은 가을빛을 머금고 있었다. 낯선 풍경을 찾아 떠난 길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되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첫걸음은 풍수원성당이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었다. 둥근 창과 아치형 창문, 하늘을 향해 솟은 종루가 오래된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자갈 밟는 발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들렸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a8b1e106-5217-4c1e-b7cd-8a7903e8a3ce.webp)
풍수원 성당·© 최치선·트래블아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높은 천장 아래 나무 의자가 가지런했고,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긴 통로에 내려앉았다. 1802년 박해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은 신자들은 오랜 세월 성직자 없이 믿음을 지켰다. 1910년 완공된 성당의 벽돌마다 그들이 견뎌낸 시간이 스며 있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신앙의 성지이지만, 여행자에게는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자리이기도 했다. 고요한 성당에 앉아 있으니 세상에 남는 것은 화려한 이름보다 끝내 지켜낸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원을 떠나 횡성루지체험장으로 향했다. 조용했던 아침과 달리 이곳에서는 바람이 먼저 달려왔다. 옛 국도 42호선을 활용한 2.4㎞ 코스. 안전교육을 마치고 루지에 앉아 브레이크를 풀었다.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자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굽은 길에서는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직선 구간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숲과 산등성이가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 어느 순간 웃음이 터졌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해야 할 일은 늘어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바람처럼 달리고 싶은 소년이 살고 있었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16500cfd-9b76-4406-9a6e-00ac217ad53d.webp)
횡성루지 체험장·© 최치선·트래블아이 다시 걸음을 늦춘 곳은 횡성호수길이었다.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5구간 가족길을 따라 걸었다. 흙길과 나무 데크가 물가를 감싸고, 은사시나무 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으로 뒤집혔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95a1df28-156e-4f37-86e8-0a4b9a36fc96.webp)
횡성호수 풍경·© 최치선·트래블아이 호수는 고요했다. 나무 사이로 열렸다 닫히는 물빛을 따라 걷다가 타이타닉 전망대에 섰다. 산자락이 수면 위에 포개지고, 작은 물결이 햇살을 잘게 부수었다. 한동안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풍경을 바라봤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9fc24f19-7373-413d-af8c-b03ac12a38fa.webp)
횡성호수 풍경·© 최치선·트래블아이 그러나 아름다운 호수 아래에는 또 다른 시간이 잠들어 있었다. 횡성댐 건설로 물에 잠긴 다섯 마을,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258세대의 기억이었다. 누군가의 집과 골목, 저녁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을 마을이 지금은 물속에 있다.
갑자기 호수의 고요가 다르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풍경이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장소는 누군가의 그리움을 품은 채 더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두 시간 넘게 걸은 길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발밑의 흙길보다 그 보이지 않는 마을이었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cc51c8ad-a01b-4f3b-ae52-54f4d8f47cf4.webp)
횡성호수길 풍경·© 최치선·트래블아이 하루의 끝은 안흥찐빵모락모락마을이었다. 하얀 반죽에 팥소를 넣고 작은 손으로 오므리는 아이들, 모양이 삐뚤어질 때마다 터지는 웃음소리가 실내를 채웠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ee56d92e-5dc2-4533-afcf-75f44196e5e9.webp)
모락모락마을 입구 풍경·© 최치선·트래블아이 마침내 찜기 뚜껑이 열리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따뜻한 찐빵을 반으로 가르니 촉촉한 빵 속에서 팥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 하나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웠다.![[대한민국 100] 003. 횡성에서 되찾은 나의 속도](https://hodabgpnhciikfrpzais.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photos/uploads/2026-10-27/ca13d6a3-75a7-4adb-83d1-f72b5293e608.webp)
모락모락마을 안흥찐빵 조형물·© 최치선·트래블아이 횡성에서의 하루를 돌아봤다. 풍수원성당에서는 오래 견디는 마음을, 루지에서는 잠시 잊고 살았던 설렘을 만났다. 호수에서는 떠나온 사람들의 그리움을 생각했고, 찐빵 앞에서는 소박한 행복의 얼굴을 보았다.
서로 다른 풍경이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빠르게 살아가는 동안 놓쳤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라는 이야기였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달려왔느냐가 아니라,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무엇을 마음에 담았느냐는 것. 횡성의 하루는 그렇게 오래 남을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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