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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과천

[대한민국 100] 002. 과천에 머문 하루

과지초당 작은 연못에 비친 추사의 삶, 여덟 살 편지가 건넨 그리움

누리호와 서울대공원의 호수, 백남준의 ‘다다익선’ 앞에서 이어진 사색

최치선 기자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과천. 익숙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도시였다. 자동차로 잠시 달리면 닿는 곳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함께 살고 있었다. 과천의 하루는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걸음에서 시작됐다.
푸른 하늘 아래 전통 한옥 건물과 그 앞 작은 연못, 주변 나무들이 어우러진 고요한 과지초당 전경
과지초당과 작은 연못이 고요하게 어우러진 풍경으로 추사 김정희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최치선·트래블아이
추사박물관 옆 과지초당에 들어서자 작은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낮은 처마와 고요한 물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추사 김정희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지금의 초당은 복원된 공간이지만, 그곳에 남은 이야기까지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연못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름도 결국 한 사람의 삶이었다. 그에게도 돌아오고 싶은 집이 있었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으리라. 오래된 공간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침묵은 때로 긴 설명보다 많은 것을 들려준다. 박물관에서는 여덟 살 추사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훗날 위대한 서예가가 될 어린아이의 글씨에는 가족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유배의 세월 속에서 탄생한 ‘세한도’의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어려울 때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건넨 고마움. 세월이 흘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그런 진심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100] 002. 과천에 머문 하루
추사의 세한도가 그려진 건물 내부·© 최치선·트래블아이
국립과천과학관으로 향하자 시간의 방향이 달라졌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던 시선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향했다. 온돌과 거북선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만나고, 자율주행 자동차와 로봇의 세계에서는 미래의 일상을 상상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넓은 광장과 함께 보이는 현대적인 국립과천과학관 건물 전경
국립과천과학관 전경으로 과학과 미래를 상징하는 공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최치선·트래블아이
국립과천과학관 내 천체관의 원형 건물 모습과 그 주변 풍경
국립과천과학관 천체관 전경으로 과학과 우주에 관한 전시 공간을 보여준다.·© 최치선·트래블아이
야외에 놓인 누리호 실물 크기 모형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들렸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로켓의 꿈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어쩌면 어린 시절 밤하늘을 바라보며 품었던 작은 호기심 하나였을 것이다. 먼 우주를 향한 인간의 열망 앞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꿈들이 떠올랐다.
맑은 하늘 아래 국립과천과학관 입구에 전시된 하얀색과 파란색의 누리호 로켓 실물 크기 모형
국립과천과학관 앞에 전시된 누리호 실물 크기 모형으로 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꿈을 상징한다.·© 최치선·트래블아이
서울대공원에서는 다시 걸음이 느려졌다. 장미원을 지나 호숫가에 이르자 스카이리프트가 물 위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카메라를 들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꽃 한 송이를 가까이 바라볼 때와 넓은 호수를 바라볼 때, 같은 세상도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호수에는 하늘이 내려앉고, 물결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잠시 간직했다. 멀리 갈 필요도, 특별한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풍경 앞에 서서 충분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행은 조금씩 깊어졌다.
[대한민국 100] 002. 과천에 머문 하루
서울대공원에 있는 어린이 동물원과 장미정원 풍경·© 최치선·트래블아이
하루의 마지막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었다. 야외 조각공원을 지나 백남준의 ‘다다익선’ 앞에 섰다. 수많은 화면이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은 오래된 붓글씨와는 전혀 다른 언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마주한 질문은 낯설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을 꿈꾸고,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가.
푸른 하늘 아래에서 열린 공원 공간과 그 안을 걷는 사람들과 나무, 조형물이 보이는 서울대공원 전경
서울대공원의 넓은 공간과 방문객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담긴 전경 사진이다.·© 최치선·트래블아이
국립현대미술관 내부 천장 아래로 올라가며 촬영된 CRT 모니터가 쌓여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작품 탑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전시된 백남준의 ‘다다익선’ 작품으로, 수많은 화면이 쌓여 거대한 탑을 이룬 모습이다.·© 최치선·트래블아이
미술관을 나서는 길, 과지초당의 연못이 다시 떠올랐다. 한 아이의 편지에서 시작해 우주를 향한 로켓을 만나고, 꽃과 호수를 지나 빛으로 이루어진 예술 앞에 섰던 하루. 서로 다른 시간들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이어졌다. 과천은 가까운 도시였다. 그러나 가까이 있다는 것과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때로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곳에서 미처 보지 못한 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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