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서동휘 기자] 늦가을 밤의 어둠이 짙게 깔린 강원도 산골 폐교 교정에서 서양의 핼러윈과 조선시대의 독특한 민속이 유쾌하게 맞물린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동홍천 마을이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홍천고인돌캠핑장 일원에서 ‘동홍천 마을 핼러윈 야행(夜行) 축제’를 연다. 마을 들녘에서 정성껏 길러낸 탐스러운 늙은 호박에 조선의 밤샘 풍속인 ‘경신수야(庚申守夜)’를 감각적인 야간 미션으로 버무려내, 10월의 마지막 밤을 색다르게 즐기려는 가족과 캠핑 여행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있다.
사진제공=홍천군
사진제공=홍천군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이번 축제는 홍천군 소규모 농촌 축제 지원사업에 3년 연속 선정되며 내실을 다져왔다. 홍천 농촌 문화 터미널의 전문가 컨설팅을 더해 마을 고유의 생태와 역사 자원을 현대적인 놀이 문화로 영리하게 재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단순한 서양식 귀신 분장 축제에 그치지 않고, 동홍천 주민들이 직접 수확한 친환경 호박을 요리와 공예, 로컬 마켓의 핵심 소재로 내세워 마을 농특산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든든한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번 축제의 백미는 조선시대 ‘경신수야’ 설화를 현대적인 방탈출 게임처럼 풀어낸 야간 수호 미션이다. 경신수야는 사람이 잠든 틈을 타 몸속에 기생하는 벌레인 ‘삼시충(三尸蟲)’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한 해의 죄과를 고해바친다고 믿어, 이를 막고자 경신일 밤을 꼬박 지새우며 안녕을 빌던 풍습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어둑해진 고인돌 숲을 누비는 마을의 수호자가 되어 곳곳에 숨겨진 부적 조각을 찾아내고 암호를 풀어낸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액운을 쫓아내는 웅장한 액막이 타종과 함께 수호자 인증식이 거행되며 스릴 넘치는 밤의 여정이 완성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집중된 10월 31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 쉼 없이 쏟아진다. 낮 시간대에는 상상 속 삼시충의 얼굴을 직접 화폭에 담는 초상화 그리기와 호박 양초 만들기, 달콤하고 쫀득한 전통 호박엿 맛보기, 핼러윈 의상 대여와 페이스페인팅 부스가 교정 곳곳을 화려하게 채운다. 땅거미가 내리면 마을 어르신들이 솜씨를 뽐낸 호박 요리로 가득한 핼러윈 디너 파티와 유쾌한 코스프레 경연, 밤하늘을 수놓는 환상적인 매직쇼가 이어지며 축제의 열기를 뜨겁게 달군다.
축제 무대인 홍천고인돌캠핑장은 폐교된 옛 시골 분교를 주민들의 땀방울로 아늑하게 다듬어낸 감성 쉼터다. 수천 년 세월을 품은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과 잔디 운동장이 어우러져 있어 낮에는 고즈넉한 힐링을, 밤에는 신비로운 설화 속 모험을 선물한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의 ‘홍천군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과 손잡고 출시한 2박 3일 체류형 패키지는 오픈과 동시에 전 객실이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참가자들은 축제의 밤을 보낸 뒤 이튿날 털털거리는 트랙터 마차에 몸을 싣고 청정 화촌면의 고인돌 유적지와 전설이 깃든 마을 골목을 느긋하게 둘러보며 시골살이의 여유를 만끽하게 된다.
홍천군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이 농사지은 호박과 고인돌이라는 고유한 유산이 외부 여행자들과 만나 생동감 넘치는 문화 콘텐츠로 꽃을 피웠다"며 "앞으로도 농촌 크리에이투어와 연계해 마을의 숨은 매력이 방문객의 체류와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다져가겠다"고 전했다.
노란 호박등이 불을 밝히고 천년의 고인돌이 밤안개 속에 몸을 웅크린 동홍천의 가을.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밤샘 풍속과 현대적인 유희가 손을 잡은 이 특별한 산골 축제는, 만추의 길목에서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마법 같은 하룻밤을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