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550여 년간 인간의 손길을 조심스레 빗겨간 원시의 숲이 한 해 중 단 이틀,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허락했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와 참나무가 하늘을 가린 비밀의 숲길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 맑은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숲 일원에서 열린 ‘제21회 광릉숲축제’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따뜻한 호응 속에 이틀간의 뜻깊은 일정을 마쳤다.
광릉숲의 숲길을 따라 긴 줄을 이루어 걷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숲축제 인기를 보여준다.·사진제공=남양주시'1년에 딱! 한 번 열리는 광릉숲축제'를 내건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특별 보호 구역의 문을 활짝 열어 그 의미를 더했다.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숲의 원형 그대로를 온전히 마주하며 생태계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올해 개막식은 형식적인 관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주요 내빈의 지루한 축사와 인사말을 없애고 의전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행사의 진짜 주인인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소통형 무대로 꾸며졌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피켓을 손에 쥐고 한목소리로 축제의 시작을 외쳤으며, 추진위원장의 힘찬 타징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숲길이 열렸다. 최현덕 남양주시장 역시 격식을 내려놓고 시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흙길을 걸으며 소탈한 담소를 나눴다.
‘제21회 광릉숲축제’ 개막식에서 시민들과 내빈들이 축제 시작을 알리며 숲길 개방을 선언하고 있다.·사진제공=남양주시
최현덕 남양주시장이 시민들과 함께 숲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모습.·사진제공=남양주시개방된 숲길 곳곳에는 숲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는 다채로운 힐링 프로그램이 촘촘히 채워졌다.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나무 그늘 아래서 심신을 달래는 숲속 요가와 숲해설가와 함께 생태계를 배우는 ‘광릉숲선생님’, 숲의 풍경을 감성적인 프레임에 담아내는 ‘광릉숲사진관’이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새롭게 선보인 테마 공간들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어른들의 동심을 동시에 자극했다. 인형을 손수 만들어보는 ‘광릉숲고마곰’, 친환경 나무 놀이로 감각을 깨우는 ‘광릉숲비버촌’, 숲속 피톤치드를 맡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광릉숲도서관’, 숲에서 느낀 감정을 손편지로 띄우는 ‘광릉숲우체국’, 사연과 신청곡이 흐르는 ‘광릉숲라디오’, 숲길을 따라 펼쳐진 ‘광릉숲그림책’ 동화 전시는 가족 단위 탐방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선물했다. 편안한 발걸음을 돕는 신발 브랜드 르무통과 협력한 걷기 체험존과 포토존도 소소한 즐거움을 더했다.
축제장 내 다양한 체험 부스가 설치되어 시민들이 구경하며 참여하고 있다.·사진제공=남양주시청명한 가을바람을 타고 흐르는 선율은 숲의 정취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숲속 버스킹 무대 ‘광릉숲테이지’에서는 재즈밴드 ‘튠어라운드’의 감미로운 즉흥 연주와 아카펠라 그룹 ‘하모나이즈’의 풍성한 하모니가 울려 퍼져, 숲에 머문 이들에게 자연과 음악이 하나 되는 벅찬 감동을 안겼다.
최현덕 시장은 “광릉숲축제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귀한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찾아주신 시민 여러분”이라며 “올해는 불필요한 의전을 과감히 줄이고 시민들과 발맞춰 숲길을 걸으며 시작할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고 전했다. 이어 “광릉숲이 지닌 소중한 생태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온전한 쉼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틀간 열렸던 광릉숲의 초록빛 문은 다시 닫혔지만,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나눈 교감의 온기는 가슴속에 깊이 남았다.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며 걷는 법을 알려준 광릉숲은 내년 가을, 더 짙고 푸른 생명력을 품은 채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올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