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만안교 돌다리를 밟으며 한 해의 무병장수를 빌던 민초들의 발걸음과 수리산 자락에 울려 퍼지던 간절한 제문, 그리고 날카로운 칼끝을 부드러운 춤사위로 승화시킨 검무의 궤적까지. 빠르게 빌딩 숲으로 변해간 도심 속에서도 묵묵히 명맥을 이어온 안양의 소중한 무형유산들이 학술적 조명을 받으며 미래 세대를 향한 새로운 전승의 길을 열었다.
안양문화원은 지난 22일 문화원 4층 강당에서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이 지닌 가치와 현실을 짚어보고 지속 가능한 보존 방향을 모색하는 ‘2026 향토문화연구소 학술세미나’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안양시 지역무형유산의 진단과 과제’를 핵심 주제로 내걸고,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생활문화로서의 지역 유산을 가꾸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는 민계식 만안구청장을 비롯해 김보영·김유미·이창성 안양시의회 의원, 안양문화원 임원진,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진, 문화예술 전문가와 향토사에 깊은 관심을 지닌 시민들이 객석을 메워 뜨거운 관심을 드러냈다.
안양문화원 주최 '안양시 지역무형유산의 진단과 과제' 세미나 참석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제공=안양시세미나는 김호석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의 묵직한 기조발표로 문을 열었다. 이어 안양시 향토유산 제8호인 ‘안양만안답교놀이’와 제9호 ‘수리산산신제’, 그리고 지역 예술인들의 땀방울로 전승을 이어가고 있는 ‘안양검무’ 등 세 종목을 중심으로 주제발표와 지정토론, 열띤 종합토론이 차례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각 유산이 지닌 독창적인 역사성과 미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단절 위기를 극복하고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실질적인 해법을 공유했다.
안양문화원 4층 강당에서 진행 중인 학술세미나 현장. 참석자들이 무대 앞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사진제공=안양시조선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목에 세워진 만안교를 배경으로 전승되어 온 만안답교놀이에 대해서는 전통 연행 방식의 고증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동시에 축제 현장에서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과 가족 단위 시민들이 직접 다리를 밟고 풍물을 울리는 참여형 콘텐츠로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제안이 큰 공감을 얻었다.
천년고찰과 울창한 숲을 품은 진산(鎭山) 수리산에서 펼쳐지는 수리산산신제는 향토유산 지정 당시 제시됐던 조건들을 차근차근 이행하며, 제례의 격식을 갖춤과 동시에 현대 도시민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힐링 문화행사로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아직 공식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안양검무에 대한 열기 역시 뜨거웠다. 검의 절제미와 전통 무용의 유려함이 결합된 안양검무는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세우고, 학교 문화예술 교육이나 복지시설 나눔 공연 등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넓혀 자생적인 전승 토대를 단단히 굳혀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랐다.
김용곤 안양문화원장은 “무형유산은 오래된 고문서나 책장 속에 갇힌 기록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의 손길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즐겨주는 시민의 눈길이 머물 때 비로소 살아 숨 쉴 수 있다”며 “안양의 뿌리 깊은 낭만과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다음 세대의 자부심으로 당당히 이어질 수 있도록 전승 기반을 다지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조상들의 희로애락을 품고 면면히 흘러온 안양의 무형유산. 과거의 기억을 딛고 현대 도시민의 삶 속으로 성큼 걸어 나온 옛 놀이와 춤사위가 깊어가는 가을, 안양의 거리를 문화의 향기로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