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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홍천군

"붉은 피 흘러 자작고개라 불렸다"… 800 영령 기린 홍천의 가을 추념

제132주년 동학혁명 추념식, 서석면 풍암리 동학 혁명군 전적지서 엄수

1894년 관군에 맞서 스러져간 농민군의 넋… 132년 세월 넘어 울려 퍼진 추모 선율

김보라 기자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깊어가는 홍천의 가을 산자락, 단풍보다 더 붉은 핏빛 함성이 서려 있는 자작고개에서 132년 전 민초들의 뜨거웠던 외침이 다시금 메아리쳤다. 봉건의 모순을 깨부수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꾸다 붉은 피를 뿌리며 산화한 800여 농민 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향로의 연기가 서석면 하늘을 숙연하게 감싸 안았다.
'제132주년 동학혁명 추념식'
'제132주년 동학혁명 추념식'·사진제공=홍천군
홍천문화원이 주관하는 '제132주년 동학혁명 추념식'이 10월 23일 오전 11시,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 자리한 동학 혁명군 전적 기념비 광장에서 유족과 기관단체장, 지역 주민들이 함께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번 추념식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영령들을 위로하는 식전 진혼 추모 공연으로 시작됐다. 살풀이 춤사위와 구슬픈 선율이 고갯마루에 울려 퍼진 뒤, 맑은 물을 올려 순결한 넋을 기리는 동학 고유의 청수 봉전 의식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차례로 단상에 올라 헌화와 분향을 올리며 묵념했고, 경과보고와 추념사를 통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농민군의 거룩한 희생을 되새겼다. 추모식의 마지막은 그날의 참상을 처연하게 담아낸 창작곡 '자작고개' 연주가 장식하며 참석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적셨다. 추념식이 열린 서석면 풍암리는 조선 말기 갑오농민전쟁 당시 강원도 내륙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비극과 저항의 땅이다. 고종 31년이던 1894년 3월 전라도 고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삼남 지방을 넘어 강원도 홍천 땅까지 거세게 번져나갔다. 차별 없는 세상을 갈망하던 홍천과 인근 인제, 횡성, 평창의 농민군 수천 명은 관군과 일본군의 탄압에 맞서 결사대를 조직했다. 그해 음력 10월 23일, 서석면 풍암리 들판과 고갯길에서 마침내 처절한 마지막 전투가 터졌다. 우세한 화력으로 무장한 관군에 맞서 낫과 죽창을 든 농민군은 결사항전으로 맞섰으나, 하루 동안의 격전 끝에 무려 800여 명이 무참하게 전사했다. 당시 흘린 피가 고갯길을 따라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내를 이루어 흘렀다 하여 오늘날까지 '자작고개'라는 가슴 아픈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 이 숭고하면서도 비장한 역사를 간직한 풍암리 동학혁명 전적지는 그 역사적 가치와 민초들의 항쟁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77년 11월 28일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홍천 지역민들은 1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그날의 기일인 10월 23일마다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여 제단을 차리고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주선 홍천문화원장은 “자작고개는 신분 차별 없는 대동 세상을 열고자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숭고한 넋이 서려 있는 우리 역사의 거룩한 성지”라며 “차디찬 바위와 흙탕물에 스러져간 800여 영령들의 자주와 평등 정신이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결코 잊지 않고, 지역의 소중한 역사 문화 자산으로 계승해 나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홍천의 가을을 걷는 여행자들에게 굽이치는 자작고개는 단순한 고갯길이 아닌, 민초들이 온몸으로 써 내려간 치열했던 역사의 길목이자 가슴 시린 평화의 쉼터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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