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한국 전통 한옥의 날렵한 처마 곡선과 프랑스 현대건축의 세련된 조형미가 콘크리트 벽면 위에서 경이로운 조화를 이룬다. 한국 현대건축의 개척자 김중업이 남긴 불후의 명작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숨은 이야기와 140년에 걸친 두 나라의 문화적 우정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건축 기행이 경기도 안양에서 펼쳐진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안양예술공원 내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140년의 대화, 하나의 건축’의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이어져 온 한국과 프랑스의 오랜 인연을 기리고, 건축 거장 김중업과 로제 샹바르 전 주한프랑스대사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빚어진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독보적인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2026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전 '140년의 대화, 하나의 건축' 개막식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제공=안양시개막식에는 최대호 안양문화예술재단 이사장과 피에르 모르코스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교육 참사관을 비롯해 조한희 한국박물관협회장, 박상진 한국건축가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특히 고(故) 김중업 선생의 장남 김희조 씨와 제자 곽재환 건축가, 최근 주한프랑스대사관 리노베이션 설계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간 윤태훈 소장 등 건축과 문화예술계의 핵심 인사들이 총집결해 자리를 빛냈다.
개막식에 참석한 다수 인사가 기념사진을 위해 단체로 모여 찍은 모습.·사진제공=안양시전시실에 들어서면 김중업이 프랑스로 건너가 20세기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문하에서 치열하게 사유하고 발전시켰던 건축적 고뇌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어 귀국 후 당시 프랑스 대사였던 로제 샹바르와 깊은 교감을 나누며 서대문구 충정로 언덕에 대사관 건물을 짓기까지의 전 과정을 흑백 사진과 희귀 영상, 육필 스케치 등 생생한 기록물로 펼쳐 보인다.
김중업 건축가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함께 전시공간에서 관련 인사들이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사진제공=안양시서울 충정로에 자리 잡은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 전통 건축의 버선코처럼 부드럽게 치켜 올라간 지붕선과 프랑스 특유의 합리주의 공간 배치가 결합된 한국 현대건축사 최고의 걸작이다. 단순히 외교관들이 머무는 관공서를 넘어, 동서양의 이질적인 두 문화가 건축이라는 하나의 예술 언어로 완벽하게 융합된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140년 동안 이어진 양국의 우정이 어떻게 한 채의 건물 안에 압축되어 시대를 뛰어넘는 울림을 주는지 보여준다.
전시가 열리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건축가 김중업이 1959년 설계한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공장 건물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건축 작품인 데다, 주변 안양예술공원의 울창한 숲길과 가을 단풍 산책로, 다양한 야외 공공예술 작품들이 이어져 주말 인문학 소풍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최대호 이사장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거장 김중업의 시선을 통해 양국이 쌓아온 외교와 문화 교류의 깊이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자리”라며 “많은 시민과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아 콘크리트 위에 새겨진 역사와 건축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특별전은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내년 8월 31일까지 무료로 이어진다. 가을빛 짙어가는 숲속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두 나라의 백 년 대화는 건축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묵직하고 따스한 영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