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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과천

[최치선의 포토에세이] 천 개의 화면, 하나의 꿈

백남준의 ‘다다익선’, 시간을 쌓아 올린 예술의 탑

최치선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들어서면 거대한 탑 하나가 발길을 붙잡는다. 천장을 향해 끝없이 뻗어 오른 백남준의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이다. 1988년 완성된 이 작품은 높이 18.5m의 철골 구조물에 텔레비전 모니터 1,003대를 쌓아 올렸다. 숫자 1003에는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의 의미가 담겨 있다. 2018년 노후화로 가동을 멈췄다가 2022년 복원을 마치고 다시 빛을 밝혔다.
국립 과천 현대미술관의 사징같은 백남준의 '다다익선'
국립 과천 현대미술관의 사징같은 백남준의 '다다익선'·© 최치선·트래블아이
고개를 들어 탑의 끝을 바라본다. 둥근 천창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오래된 화면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만 미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곳에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백남준에게 텔레비전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었다. 화면 속에 시간을 담고, 영상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싶었던 예술가의 꿈이 이 거대한 탑에 서려 있다. 수많은 화면이 빛을 잃은 순간에도 작품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래된 텔레비전은 이미 과거의 물건이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상상력만큼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기술은 늙어도 예술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깨닫는다. 한참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내린다. 눈앞에는 여전히 낡은 화면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다른 풍경이 남는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걸었던 한 예술가의 뒷모습이다. 세상은 새로운 것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지만, 누군가 남겨놓은 오래된 꿈은 그 자리에 머물러 다음 세대를 기다린다. 언젠가 이 화면들이 모두 빛을 잃더라도 백남준이 열어놓은 예술의 하늘까지 어두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날 미술관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천 개의 화면이 아니라, 한 사람의 꿈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사진 설명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중앙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 ‘다다익선’. 1,003대의 모니터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최치선 작품의 정식 명칭과 제작연도, 규모 및 복원 이력은 국립현대미술관 자료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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