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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옥천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자유문학회, 정지용 생가·문학관 찾아 가을 문학기행

시인·수필가·소설가·평론가 등 33명 참여

실개천과 초가집에 살아 숨 쉬는 ‘향수’의 기억

최치선 기자
푸른 하늘 아래 전통 한옥 건물 앞에 앉아 있는 여러 문학회 회원들의 모습.
자유문학회 회원들이 정지용문학관 앞에서 가을 햇살 아래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치선·트래블아이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문학기행 단체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 최치선·트래블아이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충북 옥천에 문학인들이 모였다. 시인과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 서로 다른 장르에서 글을 쓰는 자유문학회 회원들이다. 이들이 향한 곳은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정지용 시인의 고향. 시인이 노래했던 실개천과 초가집을 찾아가는 길에는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고향의 기억도 함께했다. 자유문학회(회장 김길애)는 지난 10일 가을 문학기행으로 충북 옥천군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지용문학공원을 찾았다. 회원들은 시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돌아보고, 가을 호숫가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며 서로의 문학적 감성을 나눴다. 옥천 구읍에 들어서자 낯익은 시어들이 길 위에서 먼저 반겼다. 향수1길과 향수2길. 담벼락에는 황소가 밭을 가는 벽화가 정겹게 그려져 있었다. 처음 찾은 고장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포근했다. 정지용이 노래했던 고향의 풍경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지용 생가 앞에 이르자 작은 실개천이 발길을 붙잡았다. 일자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은 시인의 대표작 「향수」가 태어난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개울을 바라보는 순간 오래전 떠나온 고향이 문득 생각났다. 이제는 사라진 흙길과 논둑,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들의 모습까지. 시 한 편이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기억을 불러냈다. 생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청석교라 불리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학교에 세워졌던 황국신민서사비를 돌다리로 재사용한 역사가 남아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던 시대의 흔적이다. 무심코 발을 디딜 수 있는 돌 하나에도 식민지의 아픈 시간이 스며 있었다. 사립문을 지나자 소박한 초가집이 눈앞에 들어왔다. 정지용이 살았던 옛집은 1974년 허물어졌고, 지금의 생가는 1996년 원래의 모습을 바탕으로 복원됐다. 낮은 처마와 단출한 마루, 작은 방과 마당이 어우러진 풍경은 시인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을 짐작하게 했다. 회원들은 마당을 둘러보고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시간을 보냈다. 안방에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이 시구와 소품으로 재현돼 있었다. 질화로의 온기가 식어 가는 밤, 빈 들판을 달리는 바람 소리와 늙으신 아버지의 고단한 삶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화려한 것 하나 없는 작은 집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는 시인이 평생 잊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떠나온 뒤에도 마음에서 지우지 못했던 풍경이 있었다. 문학은 거창한 곳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낮은 처마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평범한 날들이 한 편의 시가 되어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생가 바로 옆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시인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문학관 입구에는 정지용의 모습을 재현한 밀랍인형이 방문객을 맞았다. 회원들은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발자취를 하나씩 되짚었다.
실내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서 있는 여러 연령대의 회원들 모습.
정지용문학관 내부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자유문학회 회원들.·©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문학기행에 참석한 회원들 단체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단체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전시실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시집 『백록담』의 초간본이었다. 1941년 발간된 이 시집의 빛바랜 표지와 사슴 그림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권의 시집 앞에서 회원들의 발걸음도 잠시 느려졌다. 책장 속에 묻힌 옛 시인의 언어가 한 세기를 건너 오늘의 독자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정지용문학관 내부.·©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 최치선·트래블아이
1902년 옥천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26년 《학조》에 「카페·프란스」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향수」와 「유리창」, 「고향」, 「백록담」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지용의 문학적 성취는 단순히 아름다운 서정시에 머물지 않는다. 시적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감각적인 언어와 새로운 표현 기법을 구사하면서 한국어가 지닌 시적 가능성을 한층 넓혔다. 1930년대 한국 문단을 함께 이끌었던 김기림은 정지용을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시대를 연 선구자로 높이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역시 김소월과 정지용의 시 세계를 비교하며 정지용이 한국 현대시의 형성에 미친 영향력을 강조했다. 김소월이 전통적인 민족 정서를 깊이 있게 노래했다면, 정지용은 정교한 이미지와 세련된 시어를 통해 근대적 감각을 시 속에 구현했다. 그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이자 이미지스트로 평가받는 까닭이다. 후배 문인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도 남달랐다. 정지용은 문예지 《문장》의 시 부문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지훈·박목월·박두진 등 청록파 시인들의 등단을 이끌었다.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 위에 다음 세대가 설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삶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1950년 전쟁 중 행방이 끊긴 뒤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자유롭게 읽히지 못했다. 1988년 해금되기까지 한국 문학사는 중요한 시인 한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누구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던 시인의 작품이 시대의 굴곡 속에 묻혀 있었던 셈이다. 문학관을 나선 회원들은 지용문학공원으로 향했다. 호젓한 오솔길에는 가을 낙엽이 하나둘 내려앉아 있었다. 공원 뒤편의 아담한 호수는 잔잔한 물결로 하늘을 품고 있었고, 물가의 억새와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었다. 시인의 고향에서 맞는 가을은 한 편의 서정시처럼 고요했다. 회원들은 호숫가에 둘러앉아 자작시와 정지용의 시를 낭송했다. 한 사람이 시를 읽으면 다른 회원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시도 있었다. 낭송이 끝날 때마다 서로의 글과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이어졌다.
푸른 산과 나무, 전통 누각을 배경으로 서서 시를 낭송하는 중년 여성 회원 모습.
김길애 회장이 회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치선·트래블아이
산과 하늘, 전통 누각을 배경으로 한 남성 회원이 시 낭송을 하는 장면.
푸른 자연을 배경으로 시를 낭송하는 김승혁 이사.·© 최치선·트래블아이
푸른 가을 하늘과 푸른 산을 배경으로 시를 낭송하는 여성 회원의 전신 모습.
시 낭송 중인 김가원지향 시인.·©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여윤동 민조시인(민조시협회 회장) 낭송장면·©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오을식 소설가(전 자유문학회 회장)·©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정영숙 시인 낭송장면·© 최치선·트래블아이
시와 수필, 소설과 평론 등 서로 다른 문학의 길을 걸어온 회원들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정지용의 시 앞에서 하나가 됐다. 문학의 장르는 달라도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고, 지나간 시간을 언어로 붙잡으려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호수 위로 번져 가는 낭송의 울림은 문학기행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문학관 안에서는 정지용의 삶을 만났고, 호숫가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문인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가 되어 피어났다.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낭송에 참가한 시인들과 회원 단체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낭송하는 모습.·© 최치선·트래블아이
시  한 편 따라간 옥천, 잊고 있던 고향을 만나다
단체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김길애 회장은 “회원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고 새로운 창작 소재를 발굴할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추진했다”며 “문학기행에 대한 좋은 호응을 바탕으로 매월 ‘친교의 날’을 운영해 회원들의 결속을 더욱 다지겠다”고 말했다. 이예경 부회장은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정지용 시인의 생애를 자세히 듣고 나니 마치 시인을 직접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정지용 시인이 무척 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푸른 산과 전통 누각을 배경으로 인터뷰 중인 중년 여성 회원 모습.
김주남 시인의 낭송.·© 최치선·트래블아이
이날 문학기행에는 김길애 회장을 비롯해 신주원, 이예경, 진우곤, 이영봉, 우정옥, 임율려, 정영숙, 박경숙, 최태윤, 박정희해남, 조인형, 이두현, 장선아, 백옥희, 조경, 최림, 신효석, 김지향, 이주남, 진영희, 배덕정, 김현수, 최영숙, 김영진, 오을식, 김충현, 강철규, 홍은진, 여윤동, 김승혁, 서향, 고운 등 회원 33명이 함께했다.
전통 건물 앞에서 손을 잡고 서 있는 자유문학회 회원들이 화사한 가을 하늘 아래 활짝 웃고 있는 모습.
회원들이 전통 한옥 건물 앞에 서서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으로 단합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최치선·트래블아이
가을 낙엽이 깔린 길과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회원이 걸어가는 장면.
문학기행 단체 기념사진.·© 최치선·트래블아이
옥천에서의 하루는 한 시인의 생애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문학관에서 만난 정지용의 언어는 호숫가에서 회원들의 목소리로 이어졌고, 오래된 시집 속에 머물던 문학은 다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됐다. 정지용은 평범한 고향의 풍경에서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시의 세계를 길어 올렸다. 실개천과 황소, 초가집과 가족의 모습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운율로 되살렸다. 그가 남긴 것은 몇 편의 유명한 시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도 얼마든지 문학이 깃들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가을볕이 기울 무렵, 회원들은 저마다 새로운 글감을 가슴에 품고 옥천을 떠났다. 누군가는 한 편의 시를, 누군가는 수필이나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날의 풍경이 언제, 어떤 문장으로 태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정지용이 떠난 자리에서 그의 문학은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또 다른 문학의 시작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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