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사강원도 횡성
[대한민국1000] 횡성 풍수원성당, 붉은 벽돌에 남은 빛
박해를 피해 깃든 산골, 오래 지켜온 믿음을 만나다
낡은 나무 의자에 내려앉은 햇살, 마음도 잠시 쉬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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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서울을 빠져나온 차창에서 빌딩이 사라지고 낮은 산이 이어졌다. 횡성의 첫 풍경을 만나러 가는 길, 굽이를 돌 때마다 도시에서 가져온 마음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풍수원성당은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었다. 붉은 벽돌 위로 아침빛이 번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종루가 보였다. 자갈을 밟으며 오르던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횡성 풍수원 성당·© 최치선·트래블아이 이 산골까지 들어와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박해를 피해 낯선 땅에 닿은 이들에게 숲은 몸을 숨길 곳이었고, 믿음은 내일을 견딜 힘이었을 것이다. 성직자 없이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 벽돌 한 장을 쌓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건너왔을까. 성당 앞에 서서 창과 벽을 바라보는 동안, 그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득 마음에 걸렸다.
문을 밀자 긴 통로 끝에 제대가 나타났다. 창을 통과한 빛이 나무 의자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나는 빈자리에 잠시 앉았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요는 오히려 깊어졌다.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무사히 맞은 아침에 감사했을 것이다. 오래된 의자에는 그 마음들이 앉았다 일어난 자리가 남아 있는 듯했다.
기도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손을 모았다. 떠나온 서울에서는 늘 다음 일을 생각하느라 지금의 빛을 놓쳤다. 여기서는 햇살이 의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무엇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었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잎사귀가 다시 흔들렸다. 붉은 벽은 햇빛을 받아 한결 따뜻해 보였다. 내려가는 길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문 안쪽의 빈 의자가 떠올랐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빛이 조금 더 머물렀으면 했다. 횡성으로 향한 여행은 그 작은 바람을 품고 다음 굽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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