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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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 오르는 길, 바람이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조금만 더 올라와 봐.”
그 말에 이끌리듯 마지막 계단을 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 대신 긴 숨을 먼저 내쉬게 했다.

갈대는 이미 깊게 익어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면 주홍빛 들판이 일렁였고,
그 물결은 어느 순간 바다와 섞여 어디가 육지인지, 어디가 물인지
경계마저 흐려졌다.
마치 가을이 순천만 전체를 덮어놓고
“이 계절을 기억하고 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저 멀리 산 능선은 짙푸르게 겹겹이 이어져
어떤 외로움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담요 같았고,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며
햇살을 황금빛 브러시처럼 들판 위에 쓱쓱 칠하고 있었다.
그 빛이 닿을 때마다 갈대는 한 번 더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듯했다.

사진 속 장면은 너무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수천 개의 작은 떨림이 있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떨림,
무언가 끝나가지만 또 다른 시작을 품은 떨림.
나는 셔터를 누르며 스스로에게도 속삭였다.
“오늘의 이 풍경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순천만의 가을은 쓸쓸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음을 조금 비우면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와 파도가 잦아드는 결이
조금씩 나에게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멈춤’이라는 것을.
순천만은 그렇게,
한 번의 숨, 한 번의 빛, 한 번의 물결로
나에게 매우 조용하지만 오래가는 문장을 남겼다.

순천만11.jpg
순천만 풍경(사진=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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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선의 포토에세이] 가을, 순천만이 나에게 건넨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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