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7(토)
  • 전체메뉴보기
 
  • 95년 전통의 막걸리, 젊은 감각으로 다시 빚는다
  • “효모가 죽어버린 막걸리는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습니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전라북도 무주군 구천동 계곡. 물 맑고 공기 좋은 산자락 아래, 95년 동안 한결같이 막걸리를 빚어온 주조장이 있다.

‘효모가 죽어버린 막걸리는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았다’는 단호한 신념으로 지켜온 곳, 바로 무주구천양조장(대표 박남수)이다. 2020년 ‘전북천년명가(全北千年名家)’로 선정된 이곳에서 박 대표를 만나, 그가 이어온 전통의 무게와 미래의 꿈을 들었다.

 

박남수 대표1.jpg
무주구천양조 박남수 대표(사진=트래블아이)

 

인터뷰는 양조장 옆에 새로 문을 연 막걸리 카페 ‘무주마실(MAS!L)’에서 진행됐다.
통유리창 너머로 무주구천동의 단풍이 물들고, 막걸리 향이 은은히 퍼지는 공간이었다.
카페 안에는 막걸리 잔과 커피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박 대표는 “아들이 제안한 공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정재가 ‘막걸리도 요즘은 문화를 입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양조장 옆에 젊은 감성의 카페를 만들어보자고 했죠.
관광객이 막걸리를 단순히 ‘술’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경험’으로 즐길 수 있도록요.”

 

박남수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동시에 아들에 대한 신뢰가 묻어났다.
둘째 아들 박정재 씨는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에서 일하다가 과감히 사직 후,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비록 이날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박 대표는 “요즘 젊은 감각으로 마케팅과 브랜드 디자인을 맡고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 막걸리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까 고민을 많이 해요. ‘천탁주’, ‘삼탁주’ 같은 제품 이름과 라벨 디자인,
그리고 ‘무주마실’이라는 공간 콘셉트도 다 정재 아이디어입니다.”

 

11.jpg


무주구천양조장은 1929년부터 4대째 이어지고 있는 술도가다.
박 대표의 할아버지가 처음 막걸리를 빚었고, 이후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박남수 대표가 그 맥을 잇는다.
이제는 그의 아들 박정재 씨가 그 전통의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해외근무 제안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양조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기술직이 아니라 손으로 빚는 세상이라니요.
하지만 술이 익어가는 냄새, 효모가 살아 숨 쉬는 탱크의 온도를 느끼며
이 일이 얼마나 생명력 있는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그의 양조 철학은 단호하다.
“효모가 살아 있는 술만이 진짜 막걸리”라는 신념 아래,
효모가 죽은 술은 절대 빚지도 팔지도 않았다.

“우리 막걸리는 생막걸리이기 때문에 냉장 유통이 필수예요. 하지만 그만큼 신선하고, 살아 있는 맛을 느낄 수 있죠.”


이 주조장의 대표 막걸리는 ‘구천동 생막걸리’이며, 그 외에 ‘천탁주’, ‘삼탁주’, ‘사과탁주’ 등 개성 있는 탁주 시리즈가 있다.

인터뷰 당일, 박 대표가 직접 추천해준 이 세 가지 술을 시음하며 느낀 맛의 결을 소개한다. 

 

먼저 천탁주는 무주의 특산품 천마와 지역 쌀, 맵쌀 및 찹쌀을 활용해 만든 탁주다. 천탁주 6% 제품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깔끔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잔에 따르면, 고운 누룩 향 뒤로 천마의 은은한 뿌리 향이 올라오고, 목 넘김 후에 남는 단맛이 기분 좋다. 끝에 미세한 산미가 남아 여운을 만든다. 박 대표는 “천마는 예로부터 약재로 알려졌고, 술에 담으면 그 건강한 느낌이 술 안에 스며든다”고 설명했다. 

 

삼탁주는 무주 인삼을 주재료로 삼은 건강형 막걸리다. 인스타그램 후기 “강하지 않고 은은한 인삼향이 매력”이라는 평가가 있다. 시음하면 첫 향은 인삼의 쌉싸름함이 부드럽게 올라오고, 중반부터 누룩과 쌀의 고소함이 균형을 잡는다. 마무리는 미약한 쓴맛이 남아 다음 잔을 부른다. 박 대표는 “사포닌이 술 안에 살아 있다”고 표현했다. 

 

마지막 사과탁주는 최근 출시한 과실 기반 탁주로, 막걸리 입문자나 여성들에게 인기다. 시음 후기에서는 “사과탁주는 상큼하고 달콤해 과일 막걸리 초심자용으로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향은 갓 깎은 사과의 싱그러움이 먼저 느껴지고, 맛은 탄산감 있는 과즙 같은 느낌이다. 맵쌀 특유의 묵직함 대신 가벼운 무게감으로 여행객들이 카페에서 디저트 대용으로 즐기기에도 적당하다. 박남수 대표는 시음 후 이렇게 말했다. “이 세 가지 술이 각각 다른 재미를 가져요. ‘천탁주’는 깊이와 전통을, ‘삼탁주’는 건강을, ‘사과탁주’는 편안한 시작을 위한 술이죠.”

 

박 대표는 “천마와 인삼은 무주의 대표 농산물입니다. 이걸 술에 담아 무주의 향을 알리고 싶었다”며 “관광객이 이곳에서 한 잔을 마시며 무주의 공기와 풍경까지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주민속탁주주조장은 2020년 전라북도 ‘천년명가’에 선정되어 95년의 전통과 지역 상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전북천년명가’는 30년 이상 한 업을 지켜온 소상공인 중 전통성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업체 10곳을 매년 선정한다.


그는 “이 상은 포기하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보답이라 생각한다”며 “이제는 아들에게 전통을 넘기고, 젊은 세대가 새롭게 해석할 차례”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막걸리 한 잔을 잔잔히 들어 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구천동 계곡의 물결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술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시작하고, 아버지가 지켜온 전통을 제가 이어왔죠. 이제 제 아들이 그 술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겁니다.”

 

그의 말처럼, 무주민속탁주주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시간의 향기였다. 무주의 자연이 담긴 그 한 잔 속에서 한국 전통주의 미래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다.

 

 


BEST 뉴스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우리술여행] 무주구천양조장 박남수 대표...부자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정직한 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