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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호 

고운 최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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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이슬 위로 안개가 흐른다.


햇빛은 오래된 유적의 돌 틈에

낯선 부호를 새겨놓았다.


나는 그 부호를 해독하려

시선을 낮춘다.

여름 폭염 속에서 심장은

작은 두드림으로만 살아 있다. 


발자국은 대지 위에서 끊어지고

들꽃은 스스로를 표백하듯

빛을 삼킨다.

그곳에서 동백 한 송이가

아직 지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빈집에 남겨진 수첩을 열면

손금처럼 얽힌 언어가 보인다.

그것은 타인의 목소리

환청처럼 귀를 스친다. 


나는 낙화의 무게를 손톱으로 긁어내며

깃털처럼 가벼운 날개를 상상한다.

그러나 허공에는 속도가 없고

날개는 파편이 되어 떨어진다.


체온이 남아 있던 컵은

끝내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그날 이후

타인의 손금 속에서

나를 찾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대지 위의 발자국은

서서히 표백되고 있다.

햇빛은 그 자리를 덮어

부호를 지운다.

그리고 다시

이슬과 안개가 내려앉는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빈집 문 앞에서 두드림을 멈춘다.

들꽃 한 송이가

심장처럼 미세하게 뛰고 있다.


그 순간

멀리서 날아온 깃털이

허공을 가르며

내 발등에 내려앉는다. 


그것이 마지막 환청이었는지

첫 언어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수첩 한 장을 찢어

당신의 이름을 적는다.

그리고

그 이름을 조용히

오래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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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시] 마지막 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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