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블카로 가른 고도 4,000m의 일상
- 마녀시장의 숨 냄새, 달의 계곡의 침묵,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 우유니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페루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잉카 문명의 발자취를 더듬은 뒤, 여정은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이어진다.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La Paz). 해발 3,600m 언저리의 골짜기 도시를 타고 오르면 엘 알토의 고원 도시가 하늘에 닿는다.
두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도시형 케이블카 ‘미 텔레페리코’로 얽혀 같은 하루를 산다. 그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달의 계곡을 지나, 대륙의 심장부 우유니 사막의 거울 위로 들어섰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지워지는 순간, 남미가 우리에게 묻는다.
“여행자는 어디까지 가봤는가.”
라파스의 아침은 가파른 비탈을 타는 케이블카 소리로 깨어난다. 빨강·노랑·보라의 선이 협곡을 가로질러 엘 알토와 라파스를 12초 간격으로 묶는다. 교통 체증 대신 하늘길. 통근·통학·장보기가 케이블카 안에서 이어지고, 차창 밖으로는 벽돌집들이 층층이 켜져 한 도시의 역사를 적층한다. 이 시스템은 두 도시를 ‘접속’하며 통근 시간을 줄였고, 세계 최장 규모의 도시 케이블카라는 상징까지 거머쥐었다.
도심 사가르나가 거리에서 라파스의 체온이 느껴진다. 고산의 숨이 짧아질 때쯤, 골목 하나를 틀면 ‘마녀시장(Mercado de las Brujas)’이 열린다. 검은 모자에 코카 주머니를 든 야티리(yatiri)가 점괘를 읽어주고, 라마 태아 표본·건조 개구리·향초·설탕으로 빚은 기원 타블렛이 삶의 소망을 물건으로 번역한다. 관광의 호기심과 안데스 토속신앙이 공존하는 현장성—라파스가 가진 ‘다층의 시간’은 바로 이 시장의 냄새에서 시작된다.
차로 30분,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은 바람과 물이 깎아낸 점토·사암의 숲. 불쑥 솟은 침니가 달 표면 같은 황야를 만든다. 소리의 잔향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정적, 그리고 고산의 얇은 공기. 우리는 땅이 빚은 조형물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오후, 다시 케이블카로 엘 알토의 가장자리까지 끌어올려 시내 전경을 내려다본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수도권—라파스·엘 알토·비아차·메카파카가 엮인 거대한 생활권이다. 저 멀리 설산이 도시를 감싸고, 골짜기 바닥의 라파스는 하나의 그릇처럼 저녁을 담을 준비를 한다.
밤버스를 타고 남서쪽 초고원의 문을 연다.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 새벽빛이 번지면 소금 결정이 하얀 바다처럼 일어난다. 건기에는 끝 모를 평평함이 지평선을 침묵으로 밀어 올리고, 우기(특히 1–2월)에는 얕은 물막이 하늘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 우리는 하늘을 밟고, 구름을 건너 사진 속 점 하나가 된다. 고요한 수면은 위성 고도계를 보정할 만큼 평평해, 인간의 감각을 무력화한다.
사륜구동은 소금결을 가르며 사막 안쪽으로 들어간다. 소금 호텔의 벽은 정육면체 결정으로 쌓여 있고, 바람이 깎아 만든 기암지대는 조각난 시간을 전시장처럼 펼쳐 둔다. 붉은 광물 성분이 물든 라군에는 플라밍고가 얕은 갈대숲을 스치듯 먹이를 뜯는다. 폐선이 된 기차 묘지의 녹슨 차륜은 광산 도시의 흥망을 말없이 증언한다. 2박 3일 코스가 사랑받는 이유는, ‘하루의 날씨가 곧 전시 스케줄’이기 때문이다. 아침의 백색, 정오의 은빛, 황혼의 분홍. 하루에 세 번, 다른 사막이 열린다.
여행 팁은 단순하다. 첫째, 고산증 대비. 라파스 입성 초기엔 천천히 움직이고 물·코카차로 컨디션을 받치자. 둘째, 우유니 ‘거울’을 노린다면 1–2월이 확률이 높다. 단, 우수기엔 일부 노선이 통제될 수 있다. 셋째, 미 텔레페리코는 관광 그 자체다. 환승으로 엮인 노선도를 한두 시간 돌기만 해도 ‘고도’라는 도시 인프라를 이해하게 된다.
라파스는 ‘평화’라는 이름과 달리 헐떡이는 도시다. 산과 고원 사이의 낙차, 전통과 현대의 마찰, 종교와 토속의 혼합—충돌과 조화의 리듬이 하루를 만든다. 그리고 우유니는 그 하루의 그림자를 거울 위에 눕힌다. 하늘과 우리가 한몸이 되는 찰나, 남미는 더 이상 지도 속의 어딘가가 아니라 발바닥의 감각이 된다.
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의 길은 ‘고도’가 만든 서사였다. 케이블카의 가는 선, 시장의 진한 숨, 사막의 빈 여백이 서로의 결을 완성한다. 세계 최장의 하늘길과 세계 최대의 거울—볼리비아는 대조의 미학으로 우리 여행의 기억을 결속한다. 다음 편, 우리는 칠레로 간다. 여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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