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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유럽의 서쪽 끝인 포르투칼 까보다로까 땅끝마을에 서면 대서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는 커다란 큰십자가 탑이 우뚝서 있다. 돌탑 뒤 하얀대리석에는 북위38도47분, 서경9도30분이라는 방위표시와 함께 유명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AquiOndiATerraSeAcabaEOMarComeca”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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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다로까에 가면 대서양을 향해 우뚝 서있는 십자가탑을 볼 수 있다(사진=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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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다로까에 세워진 빨간등대와 기념비(사진=최치선 기자)

 

햇살 만지는 남자 

고운(본명:최치선)

 

  

햇살을 만지는 남자가 있다

 

그의 손끝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풍경은 초록빛으로 물들고,

기억은 햇살을 타고 흐르며 눈물의 궤적을 그리듯

끝없는 미지의 출구를 향해 나아간다

 

초록으로 뒤덮인 들판,

그 위를 달리는 안달루시아 종의 잘생긴 말들,

짙푸른 오렌지 나무들 사이로 햇살은

날개를 달고 가볍게 내려앉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직선으로 달리는 자동차들,

그 모든 풍경이 그의 시선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가 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여행자에게 속삭인다

너의 걸음은 시간의 지도를 그릴 것이다.”

오렌지 향기와 올리브 나무의 그림자는

마을을 감싸며 흙냄새 가득한 하루를 이어간다

 

새벽의 달빛은 그의 창문 너머에서

노래를 부르듯 떨리고,

햇살은 스스로 몸을 뒤집어

사물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그가 만지는 햇빛에는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환희가 스며 있다

 

서쪽의 땅끝마을 까보다로카의 끝자락,

농부는 그를 향해 환히 웃고,

길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그의 마음 속에서 목적지를 지운다

 

여행은 종착지가 아닌,

발견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알함브라 궁전의 씨앗은

호수 위에서 빛을 품고,

풍차를 돌리는 바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안개 속 소나무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한다

인생이란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햇살을 만지는 남자의 여정은

지중해의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그가 걸어온 골목길의 돌들은

이별과 만남의 흔적을 품고,

그의 느린 사랑은

꽃처럼 피어 먼 하늘로 흩어진다

 

그의 발걸음은 순례자의 마음으로,

길은 그에게 늘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햇살을 만지는 남자의 눈 속엔

여전히 초록빛 하늘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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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운(본명: 최치선)

등단: 자유문학 봄호(20013월 제39회 신인상)

시집: 바다의 중심잡기(2012), 동진강에서 사라진 시간(2020)

수상: 자유문학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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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햇살 만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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