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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부킹닷컴 선정 2026 세계 10대 관광지, 1. 스페인 빌바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한때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던 도시가 유럽 문화 여행의 목적지로 다시 태어났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는 글로벌 여행 플랫폼 Booking.com이 선정한 ‘2026년 꼭 가봐야 할 세계 10대 관광지’에 이름을 올리며, 올해 주목해야 할 도시로 떠올랐다. 강철과 조선의 기억 위에 예술과 미식, 자연을 겹겹이 쌓아 올린 이 도시는 변화의 서사를 여행으로 풀어낸다. 빌바오의 변화를 상징하는 공간은 단연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네르비온 강변에 들어선 이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유기적인 외관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바꿔 놓았다. 금속과 빛이 만들어내는 건축미는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며, 빌바오가 산업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이동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도시의 뿌리는 구시가지 카스코 비에호에서 만난다. 중세 시대의 골목과 일곱 개의 거리에는 핀초 바와 소규모 상점, 전통 시장이 이어진다. 바스크 특유의 소박하지만 밀도 있는 일상은 걷는 것만으로도 체감된다. 미식 도시로서의 명성도 이곳에서 확인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부터 동네 선술집까지, 재료 중심의 바스크 요리는 여행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1929년 문을 연 리베라 시장은 빌바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보여준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유럽 최대 규모의 실내 시장 중 하나로, 신선한 해산물과 농산물,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빌바오는 자연과도 가깝다. 도심에서 차로 이동하면 순례길로 유명한 산 후안 데 가스텔루가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위 바위섬과 돌계단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빌바오 여행의 여운을 깊게 한다. 강 하구의 해안 마을 게초는 산책과 해안 풍경에 제격이며, 세계적인 서핑 명소 문다카는 칸타브리아 해안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숙소는 도심 접근성이 중요하다. 빌바오 중심에 자리한 Bilder Boutique Hotel은 세련된 디자인과 아늑한 분위기를 갖춘 부티크 호텔로, 구시가지와 미술관을 잇는 여행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좋다. 빌바오는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 변화의 시간을 차분히 들려주는 도시다. 산업의 흔적 위에 예술과 미식을 얹고, 그 곁에 자연을 남겨두었다. 부킹닷컴이 ‘2026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익숙한 스페인과는 다른 결의 여행을 찾는 이들에게, 빌바오는 지금 가장 설득력 있는 선택지다.
    • 세계일주
    2026-01-24
  • [민동근작가의 프레임] 히로시마현 미야지마, 물과 시간 사이에 서 있는 섬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바닷물 위에 떠오른 붉은 도리이는 언제 보아도 현실보다 꿈에 가까웠다. 히로시마현 미야지마. 일본의 3대 절경으로 꼽히는 이 섬을 찾은 여행자는 누구나 처음보다 더 조용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조수가 밀려올 때, 오토리이(大鳥居, O-Torii)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바다에 내려놓는다. 물결은 조용히 흔들리며 마치 오래된 기도를 되새기듯 문지르듯 스쳐 간다.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안쪽까지 차오른다. 아마도 ‘머물러 있지 않아도 머무는 것들’에 대한 생각 때문일지 모른다. 섬 안쪽으로 길을 옮기면, 숲 사이에서 고주노토(오층탑)가 붉은 기둥을 드러낸다. 하늘로 쌓아 올린 다섯 개의 지붕이 마치 시간의 층을 겹겹이 쌓아 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스치고, 햇빛이 기울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던 발자국 소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탑은 그 모든 흔적들을 조용히 품은 채 서 있다. 미야지마는 풍경으로 기억되는 섬이 아니다. 걸음을 멈추는 방식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어딘가의 정적, 바람의 간격, 물빛의 온도 그 모든 것이 이곳을 떠난 뒤에도 마음 한편에 남아 문득문득 생각을 깨운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뒤돌아본 오오토리이는 아직도 물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은 항상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남겨진 풍경을 마음속에서 다시 바라보는 순간’이라는 걸. 그날의 미야지마는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
    • 세계일주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1-24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일본, 늦가을 쿠라시키 미관지구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가을의 끝자락, 일본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 미관지구(倉敷美観地区)에는 흑백의 옛 창고벽과 누런 단풍잎이 조용히 어우러져 있다. 흰 듯 검은 듯 미감 있는 니시키가베(錦壁) 담장 사이로, 고요한 운하 위의 버들과 버드나무 잎이 나지막이 흔들린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꼽히는 이 구역은, 흰 담장과 진한 붉음·노랑의 단풍이 만나 마치 사계절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낸다. 운하를 따라 걷는 길 위에서, 담벼락마다 오른 발자국이 남긴 물결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상징적인 백벽(白壁)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 시대의 흔적을 간직하고, 옆으로 흐르는 쿠라시키강(倉敷川)의 수면에는 단풍과 처마가 겹쳐진다. 바람이 한올 스치면 잎새 하나가 물결 위에 떠오르고, 그 순간 ‘지나온 계절’의 잔영이 물결 위에서 잔잔히 춤춘다. 낮은 태양빛이 담벼락의 질문처럼 길게 드리웠을 때, 창고지대 골목길은 그림자로 채색된다. 은은한 오후의 그림자가 과거 상업 창고였던 흑벽과 어우러져 시간의 궤적을 새긴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커피향이 번지고, 거리 한 켠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이들이 렌트 보트를 타고 운하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바람은 잔잔하다. 물안개 대신 가을빛이 짙게 남아 있고, 새벽이나 해질 무렵에는 반짝이는 노을이 흰 담장과 주변 단풍을 아련히 물들인다. 이 공간에선 ‘머문다’라는 단어보다 ‘남는다’가 더 어울린다. 한 잎의 단풍이 떨어진 자리, 느슨하게 남은 흔적이 여행자의 기억 속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이곳을 떠나는 길, 뒤돌아서면 운하의 푸른 수면 위에 잎 하나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진다. 흑담과 유리창, 노랑·붉음이 어울린 거리 풍경 속에서 가을은 천천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억’이 남는다. 쿠라시키 미관지구의 늦가을, 그 정적의 미학을 나만의 필름에 담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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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1-14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지폐 속 풍경, 현실이 되다... 브라딴 호수의 신비
    [트래블아이 =민동근 작가] 인도네시아 5만 루피아 지폐 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700미터 높이의 발리 브라딴 호수 위에 떠 있는 듯한 ‘푸라 울룬다누 브라딴 사원’. 안개가 살짝 깔린 새벽, 잔잔한 호수 위로 사원의 실루엣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물 위에 피어난 연꽃처럼, 신성하고 고요하다. 현지 사람들은 호수의 여신 ‘데위 다누’를 모신 이곳을 ‘생명의 물 사원’이라 부른다. 여행자는 그저 숨을 죽이고, 바람 한 줄기에도 반짝이는 호수의 결을 바라본다. 지폐 한 장 속 그림이 이렇게 생생한 현실이 될 줄이야. 발리의 신비어쩌면 이 사원의 고요함 속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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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0-21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발리의 시골 결혼식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바이크를 타고 좁은 시골길을 달리다 우연히 마주친 결혼식. 대나무 장식 아래에서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환한 미소로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코코넛 잎으로 만든 장식을 흔들며 뛰어다니고, 노인들은 손에 향을 쥔 채 조용히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음식은 소박했다. 커다란 접시에 담긴 밥과 닭고기, 그리고 매콤한 사테 몇 줄기.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진심이 있었다. 손님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다시 먹으며 시간을 나누었다. 도시의 결혼식처럼 화려한 조명도, 빠듯한 일정표도 없었다. 대신 바람이 불고, 웃음이 퍼지고, 따뜻한 마음이 흘렀다. 그곳에서 나는 알았다. 진짜 축하란 마음의 속도로 다가가는 것임을.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본 그 장면은, 여행의 끝자락에서도 오래도록 내 마음을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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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0-17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우붓의 새벽, 삶이 피어나는 시장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해가 막 떠오르기 전, 우붓의 거리는 고요하다. 그러나 새벽 6시가 되면 골목마다 숨결이 살아난다. 시장 초입에는 막 따온 바나나와 파파야 향이 바람에 섞이고, 대나무 바구니 속엔 초록빛 채소들이 이슬을 머금은 채 반짝인다. 어스름 속에서 장사꾼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능숙하다. 작은 비닐봉지에 고추를 담고, 그 옆에서는 금빛 생선을 손질하는 이의 칼끝이 반짝인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화려한 재래시장이 아니다. 우붓 근교에서 직접 재배한 작물을 들고 나와 서로 교환하며 하루를 여는, 삶 그 자체의 공간이다.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여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상에 앉은 노인들은 새벽공기와 함께 커피를 나눈다. 정겨운 웃음소리와 함께 “세라맛 빠기(Selamat pagi)” 인사가 오간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이곳에서 여행자는 발리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꾸밈없는 사람들, 흙냄새 섞인 과일, 그리고 햇살이 천천히 시장을 비출 때의 따스한 평화. 우붓의 새벽시장은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살아 있음’의 의미를 조용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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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0-12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발리의 빛과 기도, 갈룽안·꾸닝안 축제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푸르른 발리의 하늘 아래, 집집마다 가지런히 세워진 펜조르(penjor)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대지와 영혼이 숨소리로 하나가 된다. 갈룽안(Galungan)이 열리는 날, 발리 사람들은 조상의 영혼이 이 땅을 잠시 찾아온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성스레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워 맞이하며 흰 옷을 갖춰 입고 사원과 마당을 오간다. 이 축제는 ‘의(義, dharma)’가 ‘무질서(adharma)’를 이긴다는 상징을 품고 있다. 축제는 10일간 이어지고, 마침내 꾸닝안(Kuningan)에 이르면 조상들은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꾸닝안 당일엔 아침부터 정오까지 의식이 이어지고, 노란 밥(ajengan kuning)과 다양한 바탕(banten)을 바친다. 강한 햇살 아래, 발리 마을의 거리는 향기와 색으로 가득 차고, 흰 옷차림의 주민들이 제물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행렬은 마치 영혼의 축제 같다. 사원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아이와 노인, 손을 맞잡고 제단 앞에 머리 숙이는 부부의 모습은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갈룽안과 꾸닝안은 축제를 넘어,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가 된다. 조상들은 와서 축복을 남기고, 다시 돌아가며 그 순환은 이어진다. 인간은 그 사이에서 선(善)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매 반복은 삶에 대한 감사와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다. 나는 이 축제의 순간을 렌즈로 좇으며,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고 싶었다. 향기와 빛과 마음의 울림이 모여 하나의 서사로 기록된다. 축제를 마주한 이 순간, 나도 잠시 그 고요한 순례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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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10-03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발리 어원의 유래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발리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제물’, ‘신이 머무는 곳’을 뜻한다. 그 말처럼 베두굴 고원의 브라탄 호수 위, 울룬다누 브라탄 사원은 새벽 물안개를 머리에 이고 떠 있는 듯 서 있다. 17세기 멩위 왕조 때 세워진 이 수상 사원은 물과 비옥함을 다스리는 데위 다누에게 바쳐졌으며, 호수는 발리 중부의 큰 수원지로 아랫마을의 논과 수바끄 물길을 적신다. 아침이면 정원길을 따라 흰 레이스 사롱의 가족들이 모여 향을 피우고 카낭사리 공양을 올린다. 층층이 메루탑이 호수에 거꾸로 비치고, 산의 윤곽과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차가운 고지대의 공기가 볼을 스치고, 호수 표면은 숨을 죽인 듯 잔잔하다. 여기서 시작된 물의 축복이 논두렁을 따라 섬을 순환한다. 아이의 웃음과 종소리가 바람을 타면, 신앙은 관광을 넘어 일상의 호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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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동근의 프레임
    2025-09-28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노을이 머무는 자리, 로비나비치의 숨결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발리 북부의 조용한 해안, 로비나비치에 서면 세상이 느려지는 듯하다. 공항에서 내륙을 가로질러 4시간, 긴 여정 끝에 마주하는 풍경은 남부의 번잡한 관광지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바람은 부드럽고, 해변엔 북적임보다 여유가 먼저 깃든다. 저녁이 다가오면 하늘은 천천히 색을 바꾼다. 노을빛이 바다 위에 드리워지며, 분홍빛과 주황빛이 섞여 물결 위에서 춤춘다. 모래사장에 앉아 있으면 현지인 가족들이 저녁 산책을 즐기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해변과는 달리, 이곳의 일몰은 더욱 친근하고 따뜻하다. 로비나비치는 돌핀 투어로도 유명하다. 이른 새벽 배를 타고 나가면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일몰의 매력은 또 다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화로운 순간이자, 발리 북부 특유의 정취를 담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을이 바다와 맞닿아 붉은 선을 긋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그 풍경은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그저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풀리고,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위안을 얻는다. 로비나비치의 일몰은 화려함보다는 잔잔함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하늘,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드는 이 풍경은 발리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발리를 여행한다면, 북부의 이 고요한 해변에서 하루의 끝을 맞이해보길 권한다.
    • 세계일주
    • 민동근의 프레임
    2025-09-26
  • [민동근 작가의 프레임] 버사킷 사원, 발리의 영혼을 품은 어머니 사원
    [트래블아이=민동근 작가] 발리의 아침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시작된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나나 잎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진 공양물이 집집마다 놓여 있다. 갓 꺾은 프랑지파니 꽃, 바삭한 비스킷, 쌀알 몇 톨이 어울려 작은 제단을 이루고, 그 위로 향 냄새가 은은히 퍼진다.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들의 걸음마다 종소리가 따라붙고, 아이들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기도를 하며 꽃잎을 뿌린다. 이렇게 신과 함께 살아가는 섬의 일상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리에는 무려 2만 개가 넘는 사원이 있다. 마을마다 최소 세 개의 수호신 사원을 두고, 그 사원마다 기념일이 있으니 축제는 멈출 새가 없다. 길모퉁이를 돌 때 가믈란 연주의 청아한 소리가 들리고, 사원 마당에서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팔을 들어 올리며 신에게 춤을 바친다. 이 순간 여행자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종교의 향연 속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다. 그중에서도 아궁산 기슭에 자리한 버사킷 사원은 압도적이다.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사원의 실루엣은 마치 하늘을 향해 뻗은 거대한 신전 같다.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오를 즈음, 현지인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흰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노소가 손에 꽃과 향을 들고 차례차례 신전 안으로 들어선다. 북소리와 노랫소리가 계단 사이를 메아리치며,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버사킷 사원은 발리인들이 반드시 찾아야 하는 ‘어머니 사원’이다. 아이의 첫 걸음을 이곳에서 축복받고, 성인이 되면 가족과 함께 다시 오르며, 노년에는 삶의 마무리를 기도한다.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는 평온함은 여행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영혼의 고향이다. 사원의 마지막 계단에 서서 뒤돌아보면, 푸른 계단식 논과 마을의 지붕들, 그리고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가 겹겹이 펼쳐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향내와 축제의 북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발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사원이다. 여행자는 그 풍경 속에서 묵묵히 속삭이는 듯한 섬의 숨결을듣게 될 것이다.
    • 세계일주
    • 민동근의 프레임
    2025-09-25

실시간 세계일주 기사

  • [동영상] 세계일주배틀 제1탄 '인도' 오프닝 "나마스떼"
    세계일주배틀 제1탄 '인도를 내품에'의 수상자인 김아름 씨가 두 달 동안 인도전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10편의 인도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인도 오프닝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제목은 '나마스떼'입니다. 내 안의 신이 당신안의 신께 인사를 올린다는 인도 인사말처럼 인도는 신들로 이루어진 경이로운 나라입니다.
    • 세계일주
    2012-05-05
  • 퀸즈랜드의 꽃 브리즈번에 도착하다
    일정에 쫓기는 여행도 나쁘지않다. 밀도있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발이 닿는대로 움직이는여행도 그 나름의 매력이있다. 여행의 막바지라 심신이 힘들어가는 것도 있었지만 조용하고 작은 도시에 오랜기간 머물기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브리즈번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힘을 주욱 빼고 천천히 생활해보기로했다. 그래봐야 일주일이지만 얼마나 꿀 같은 순간이겠는가.
    • 세계일주
    2012-03-25
  • [동영상]동양의 3대 무용극 '카타칼리'에 빠지다
    남인도 케랄라주의 춤 카타칼리kathakali는 무언극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5대 무용 중 하나인 '카타칼리'는 배우들의 얼굴표정과 몸짓만으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완벽하게 만들어 낸다. 일본의 가부키와 중국의 경극 그리고 인도의 카타칼리가 동양 3대 연극으로 꼽힌다. 몇시간에서 길게는 밤새워 공연하는 '카타칼리'의 특징은 화려한 분장과 배우들의 표정연기다. 관객들은 공연전 인도의 여러 신으로 분장하는 연기자의 모습을 1시간 정도 자유롭게 볼 수 있다.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분장도구는 화려한 분장에 비해 단촐하다. 식물 천연 재료로 만든 물감, 가느다란 나뭇가지, 손바닥보다 조금 큰 거울이 전부다. 분장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10세기부터 시작된 '카타칼리'는 원래 궁중에서만 공연하던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관광상품화 되어 서민들도 카타칼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일주배틀 제1탄 '인도를 내품에'의 수상자 김아름 씨는 2개월간 인도를 여행하면서 무척 귀한 영상을 만들어 왔다. 그중 코친에서 공연한 '카타칼리'를 먼저 올린다. 남인도 최고의 춤인 '카타칼리'의 매력에 빠져보기 바란다.동영상: 김아름, 글:최치선 기자(moutos@empal.com)
    • 세계일주
    2012-03-22
  • 호주에서 만난 동물들
    ▲ 부엉이. ▲ 캥거루를 닮은 왈라비. 보통 캥거루의 중간크기이다. ▲ Rainbow Lorikeet . 조금 시끄럽지만 무지개 빛깔이 아름다운 새. ▲ 동물원에서 많이 보았던 공작새. ▲ 악어의 모습. ▲ 작은새(이름을 알지 못하는 관계로...) ▲ 펠리컨. ▲ 아나콘다호주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 되어 있는 나라인 만큼, 여행의 여정동안 많은 동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호주를 상징하는 캥거루, 코알라, 이들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은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호주의 큰 매력이 아닐까?
    • 세계일주
    2012-03-13
  • 케언즈. 쓰는만큼 경험하는 액티비티의 도시
    케언즈는 호주인들의 휴양도시이다. 이 간단한 말로 케언즈의 이미지가 명확해 질 것이다. 거리 모든 사람들은 (호주는 겨울이다) 쪼리를 신고, 수영복에 커버업 옷을입소 거대한 쇼핑몰에서 과일주스를 마시는 모습이 케언즈의 풍경이다. 하늘이 낮은 이 해안도시의 공기를 마시지 캠핑때매 노곤해졌던 몸이 느슨하게 여유로와지는 느낌이들었다.
    • 세계일주
    2012-03-12
  • [한장추억요르단]사해에서 쭈니 꿈을 하나 더~이루다
    사람에게는 다들 자기의 포부와 꿈이 있다.. 쭈니의 꿈 중 하나.... 꼭~~~!!!! 보고픈 것 중 하나....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인접해있는 사해이다... 역사의 이름...신기한 바다....죽은 바다...아무것도 살지 않는 바다.... 온통 소금염분으로.... 신기가 하늘을 찌르는 곳... 사해에 서있는 쭈니 모습에서....꿈을 이룬...쭈니가 대견하다...^^;;; 사해에 있었도 보고...사해의 물속에서 하늘도 보고.....사해의 물속도 보고 정말 책속에서 처럼 선생님 말씀처럼... 사해 속과 밖은 소금물과 소금 덩어리 밖에는 없었다... 고요함이 무서운..그리고 신기함이 공존했던....사해.....쭈니는 꿈을 이루었다....아~~흣!!! ^^ ▲ 사해를 배경으로 한장..^^ 호면이 해면보다 400m 가량 낮아 지구에서 가장 낮은 수역(水域)을 형성한다. 북반부는 요르단령, 남반부는 요르단령과 이스라엘령으로 나누어지나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이 서쪽 기슭 전체를 계속 점령하고 있다. 사해는 서쪽의 유대 구릉지대와 동쪽의 트란스요르단 고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부터 요르단 강이 흘러든다. 길이 80㎞, 너비 18㎞, 면적 1,020㎢, 최대수심은 396m에 이른다. 동안(東岸)의 알리산('혀'라는 뜻) 반도를 경계로 크기가 다른 2개 수역으로 나뉜다. 북쪽의 수역이 보다 커서 호수 전체 표면적의 약 3/4을 차지하고, 수심도 396m에 달하는 반면 남쪽 수역은 수심이 평균 3m 미만이다. 성서시대와 그후 8세기까지는 북쪽 수역 주변지역에만 사람이 살았으며, 호면은 현재보다 35m 정도 낮았다. 호면은 1896년에 해수면하(海水面下) 약 389m로 높아져 최고 수위에 달했으나 1935년 이후 다시 낮아졌다. 사해라는 이름은 적어도 헬레니즘 시대(BC 323~30)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해는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 시대 및 고대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의 성서사와 관련되어 있다. 〈구약성서〉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주민들의 부도덕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린 불로 멸망했다고 전하는데, 이 두 도시 터는 현재 사해의 남쪽 수역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수로 유입되는 강들 주위의 황무지들은 이스라엘 왕 다윗과 훗날 유대 왕 헤로데 1세의 피난처가 되었다. 헤로데 대왕은 BC 40년 파르티아인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때 마사다의 한 요새에 피신했다. 마사다는 AD 73년 로마에 반항하던 유대의 열심당원들이 3년간에 걸친 포위 공격을 받은 끝에 성채를 파괴하고 집단자살을 한 곳이기도 하다. 사해사본(死海寫本)으로 알려진 성서사본을 남긴 유대교 종파도 사해 북서부의 동굴들을 은신처로 삼았다. 사해는 길이 560㎞의 요르단-사해 지구(地溝) 최하부를 차지한다. 이 지구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북쪽 연장 부분으로, 사해는 이 가운데 지반이 함몰하면서 생긴 거의 평행한 두 단층 사이의 요지(凹地)에 자리잡고 있다. 사해 쪽에서는 모압 고원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동쪽 단층이 유대 지방의 보다 완만한 융기 습곡을 알려주는 서쪽 단층보다 더 잘 보인다. 지구가 생기기 전인 백악기와 쥐라기(6,500만~1억 9,000만 년 전)에는 지중해의 물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뒤덮고 있었으나, 마이오세(700만~2,600만 년 전)에 해저의 융기로 트란스요르단 고지대의 습곡구조와 팔레스타인 중앙부의 산맥이 형성되면서 지각 파열이 일어나 사해 지역이 침강했다. 그당시 사해의 크기는 오늘날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해는 그후 플라이오세(약 1만~250만 년 전)에 현재의 호면보다 약 215m 높은 고도까지 융기해 북쪽의 훌레 계곡지대로부터 현재의 남쪽 경계 너머 64㎞ 지점까지 320㎞에 걸치는 광대한 내륙해를 이루었다. 사해지역의 융기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물이 아카바 만으로 넘쳐 흐르지 않았던 것은, 네게브 중부 고지의 동쪽 연장부를 따라 흐르는 계절천인 와디 알아라바의 가장 높은 부분이 약 30m 정도 융기하여 사해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대략 250만 년 전쯤 사해로 유입된 대량의 하천수가 혈암(頁岩)·점토·사암·암염·석고 등 두꺼운 퇴적층들을 쌓았고 나중에 점토·이회토(泥灰土)·연질백악(軟質白堊)·석고 등의 퇴적층이 모래와 자갈층 위로 내려 쌓였다. 사해는 지난 1만 년 동안 물이 강수에 의해 보충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증발함으로써 점차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해 골짜기를 덮고 있는 퇴적층이 1.6~6.4㎞ 두께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알리산 반도와 세돔 산(옛 이름은 소돔 산)은 지각변동으로 이루어진 지형들이다. 세돔 산의 가파른 절벽들이 사해의 남서쪽 연안에서부터 치솟아 있다. 알리산 반도는 점토·이회토·연질백악·석고 등의 퇴적층에 모래와 자갈층이 사이사이에 끼어서 이루어졌다. 알리산 반도와 사해 골짜기 서쪽의 비슷한 물질로 형성된 지층 모두 동쪽으로 경사져 있다. 사해의 남쪽 단애는 세돔 산과 알리산 반도의 융기작용으로 인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바닷물이 이 단애의 서반부를 뚫고 현재의 수심이 얕은 사해 남단으로 넘쳐흘렀다. 사해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강우량이 적고 불규칙하다. 알리산에는 연간 65㎜ 정도, 세돔(고대 도시 소돔 근처)에는 50㎜ 정도의 비가 내린다. 한편 고도가 낮고 움푹 패어 있어 주변지역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겨울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1월평균기온은 세돔이 있는 남단이 17℃, 북단이 14℃ 정도이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여름은 매우 무더워 세돔의 8월평균기온이 34℃에 달하며, 최고 51℃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 연평균 140㎝ 정도의 호수의 물이 증발하며 호면 위에 짙은 안개가 자주 생긴다. 유입 하천들 위의 대기 습도는 5월의 45%에서 10월의 62% 정도로 분포한다.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호풍(湖風)과 육풍은 낮에는 호수 바깥쪽을 향해 불어대지만 야간에는 반대로 호수의 중심쪽을 향해 분다. 요르단 강으로부터 유입되는 수량은 겨울과 봄에 최고를 기록하며, 매년 평균 5억 4,000만㎥에 달한다. 동쪽의 요르단으로부터는 알우자이미·자르카마인·알마우지브·알하사 등 크지는 않지만 연중 물이 흐르는 4개의 하천이 깊은 협곡들을 통해 흘러내린다. 그밖에도 수많은 와디들이 인접 고지대로부터 단기간 단속적으로 유입되며 와디 알아라바의 함몰지로부터도 물이 들어온다. 유황 온천들도 흘러든다. 여름철에는 증발량이 많고 겨울과 봄철에는 하천수의 유입량이 많기 때문에 호수의 수위는 30~61㎝ 사이에서 계절적 변화를 나타낸다. 사해의 물은 매우 많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염분 농도는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진다. 사실상 사해에는 성질이 다른 두 수괴(水塊)가 있다. 40m 깊이까지는 표층수로 분류되는 수괴가 존재하는데 이 수역에서는 수온이 19~37℃로 변화하고 염도는 300‰이 채 안 되며, 수중에는 황산염과 중탄산염이 특히 풍부하다. 수심 40~100m의 천이지대를 지나 그 아래에 존재하는 저층수는 대략 섭씨 22℃의 일정한 수온과 약 332‰의 높은 염분농도를 유지한다. 황화수소와 고농도 마그네슘·칼륨·염소·브롬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보다 깊은 곳에서는 염화나트륨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바닥으로 침전된다. 저층수는 염분의 농도가 너무 높아 영구히 바닥에만 머물러 화석화되고 있다. 표층수는 성서시대로부터 2,3세기가 지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사해의 짠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위로 쉽게 떠오른다. 요르단 강에서 흘러든 담수는 호면에 머무르는데 봄철에는 요르단 강물이 사해로 흘러드는 지점에서부터 48㎞ 남쪽까지 강물의 진흙 빛깔이 호수 수면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농도의 염분 때문에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한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요르단 강이나 작은 하천을 통해 유입된 물고기들도 이곳에서는 금방 죽고 만다. 유입 하천 주변에 있는 식물들 외에 사해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라고는 수명이 짧은 것들뿐이며, 주로 염생식물에 국한되어 있다. 사해는 거대한 소금 매장지로도 유명하다. 소금 광상들이 남서쪽 기슭의 세돔 산 구조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소규모로 채취되던 소금을 개발하기 위해 1929년 요르단 강 어귀에서 가까운 칼리야에 칼륨 공장이 하나 세워졌고, 나중에 세돔에 부속 시설들이 들어섰다. 칼리야의 공장은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중 파괴되었으나 1955년 사해조업회사(Dead Sea Works Ltd.)가 세돔에 공장을 세운 후 칼륨·마그네슘·염화칼슘 등이 생산되고 있다. 또다른 공장에서는 브롬과 기타 화학제품들을 생산한다. 사해는 분쟁지역인 요르단-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항행에는 크게 이용되지 못했다. 연안지대는 방치되어 있어 영구적인 시설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돔의 공장, 칼리야에 있는 2~3개의 호텔과 온천장, 그리고 서쪽으로 엔게디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 정도가 들어서 있을 뿐이다. 이따금 호안(湖岸)에서 소규모의 경작지가 발견되기도 한다.-다음 백과사전에서-
    • 세계일주
    2012-03-01
  • [한장추억인도]자이푸르서 릭샤꾼과 밥먹던 날
    무척이나 순수했던 친구... 릭샤꾼입니다. 자기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면서....맛나는 짜이랑...라쉬(바라나시) 가게를 가주었던.... .... 이름 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이순간은 ...참 그립다... 비록...아~주 싼...정식(?)이지만 감사하게 먹어주는 릭샤꾼.... 란이란 음식이다...인도의 주식이기도 하고... 쭈니입맛에도 맞았던..그래서 더~인도가 그리운줄 모른다... 여기는 자이푸르... 100루피의 샌들을 싼지..하루만에 잃어버리는 추억을 준 곳 ^^;; 신발과 나의 인연이 거기까지라고 맘 편안(?)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인도였기 때문이리라...ㅋㅋ ▲ 인도 자이푸르의 릭샤꾼과의 식사중 밥 한끼에 너무나 감사했던..친구입니다... 제가 넘...친한척(?) 친절한 척 (?) 하지는 않았는지.....ㅜㅡ... 그래서 맘에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걱정도 살짜기 되는 요즘입니다.... 추운 겨울이면 더~인도가 그립답니다.....그..먼땅..인도.....가고싶습니다....잘있겠죠...저~친군(?) ㅎㅎㅎㅎ
    • 세계일주
    2012-02-28
  • 2001년 인디아(인도) 망고트리 레스토랑 앞 그네에서..
    2001년 인도 영문판 론닛을 들고 무작정 찾아간곳 망고트리....
    • 세계일주
    2012-02-09
  • 일본-역사와 유행이 공존하다
    2008년 7월, 가족과 함께 여름 일본 여행을 떠났다. 지리상으로는 제주도와 거리가 크게 차이가 없고 섬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나라 '일본'.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독도 문제로 인해 좋지 않은 관계다. 그러나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이고 현재 안에 과거가 숨쉬고 있고, 유행과 패션을 선도하는 나라가 또한 일본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약 20여 명의 관광객과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탔다. 약 2시간이 지나자 오사카 섬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입국심사장에서 지문과 사진을 찍고 드디어 일본 오사카 땅으로 들어왔다. 태평양이 인접한 오사카의 여름 날씨는 습도가 높고 40여 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고 해서 그런지 공항 밖으로 버스를 타러 가자 금새 땀이 흘렀다. 첫 일정지인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의 오사카성(大阪城)으로 향했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3만 명의 인력, 15년 걸쳐 완성한 오사카의 상징이자 관광 명소다. 오사카성 주변에 작은 강이 흐르고 울창한 나무 숲이 아름다웠고 웅장하였다. 오사카성 입구로 향하는 다리를 지나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의 관광객들과 일본인들이 구경을 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약해놓은 식당에서 우동 등 일본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다시 오사카성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7층으로 되어 있는 오사카성을 위에서 부터 계단을 통해 아래로 한 층씩 내려가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였다. 두 번째 일정지인 신사이바시와 도톰보리. 신사이바시는 재래식 상점이 모여 있고, 옛날부터 상인의 거리로 불린 곳이다. 현대적 모습의 아케이트로 탈바꿈하여 패션 및 유행의 본거지로 변모하였다. 거리를 거닐며 자유롭게 구경하였다. 도톰보리는 물자수송을 위한 인공수로다. 카부키극장과 술집 등이 있다. 저녁 식사가 예약된 일본 전통의 사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있는 여자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하였다. 첫 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이동하였다. 호텔은 오사카 시내에 위치하였는데, 크기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방도 좁아서 침대 사이가 붙어 있었고, 여유 공간이 없어서 답답하였다. 그래도 첫 날 부터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걷고 땀을 흘려서 그나마 쉴 공간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샤워를 하고 호텔 앞에 동네를 구경하였다. 라멘집에서 라면을 먹고, 일본의 햄버거 집에서 튀김 통닭을 사서 호텔로 돌아와 맥주와 음료수와 함께 먹었다. 두번 째 날은 자유여행이었다. 우리는 오사카 시내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을 선택하였다. 가이드가 준 지하철 노선도를 가지고 11개 노선으로 이루어진 전철을 타고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으로 향했다. 전철 역에서 일본인에게 짧은 일본어와 손짓으로 전철 노선을 물어 갔는데, 갈아탄 전철을 잘못 알아 들었는지 잘못 갈아타서 다른 일본인에게 물었는데, 영어, 일본어, 손짓을 하며 설명해주고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유니버셜스튜디오가 있는 유니버셜시티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은 ET, 스파이더맨, 터미네이터 등 헐리우드 영화의 캐릭터를 테마파크로 꾸며놓은 놀이공원이다. 세번 째 날 일정은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일본 천년의 고도인 교토로 이동했다. 첫 번째 일정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자연과 고풍스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청수사. 버스에서 내려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을 지나 청수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향을 피우고 종이에 적어 소원을 비는 곳과 바위에서 물이 세 줄기로 가늘게 떨어지는 곳 등을 구경하고 다음 장소인 금각사로 향했다. 금각사는 연못 위에 세워진 3층 누각으로 2, 3층에 금박을 입혀 은은한 금빛으로 빛났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절에 불을 질러 타버린 후 최근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다음 장소인 동대사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동대사 입구까지 가는 길에 사슴 들이 관광객들과 섞여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마지막 장소인 일본 온천욕을 체험하는 온천욕으로 향했다. 노천탕,히노키탕 등 다양한 코스가 있었다. 간사이 공항 근처에 있는 워싱텅 호텔로 향했다. 첫 날 묵은 호텔보다 큰 비즈니스급 호텔이라 입구에 들어가면서 부터 고급스럽고 넓어서 마음이 시원했다. 방도 크고 창문도 열 수 있고, 태평양이 보였다. 저녁식사를 부페로 먹고, 2층에 있는 마트에서 간식 거리를 사서 방으로 들어와 먹었다. 마지막 날 일정은 호텔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링쿠프리미엄 아울렛. 해외 명품 등을 공장도 가격으로 파는 쇼핑센터였다. 1시간 정도 구경하면서 티셔츠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짐을 챙겨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했다. 수속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 세계일주
    2012-02-03
  • 파리① 파리에서 만난 두 개의 풍경
    ▲ 러시아 산맥을 지날 때 이름 모를 창공을 날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문제는 그 환상이 얼마나 실제 경험과 일치하는가의 여부이다. 대체로 미지의 장소에 대한 환상과 동경은 실제 경험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카네만에 따르면, 인간은 경험하는 주체와 기억하는 주체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행 중의 경험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의 기억은 사실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여행 전반이 불만족스럽더라도 여행 후반부에 아주 놀랍거나 즐거운 경험을 했다면, 그 여행 전체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여행 전반이 만족스럽더라도 후반부에 모든 사진과 여권을 도난당하는 경험을 한다면, 그 여행 전체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긴 코스의 식사가 평범했어도 마지막에 디저트가 황홀했다면 그 식사 전체가 기억에 남는 것과 같다.여행기의 대부분에는 이러한 과장과 축소가 어떻게든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된 신참 여행자의 환상과 동경은 실제 경험에 의해 깨지기 쉽다. 그래서 정말 기대하는 영화가 있다면, 일부러 어떠한 정보도 듣지 않음으로써 아무런 기대와 편견도 갖지 않고 보는 게 낫다. 영화는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이 가능하지만, 여행 장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한 나라의 도시라면? 그것도 아주 유명한 도시라면? 게다가 그 도시가 파리라면? 파리에 대해 어떠한 기대, 환상, 그리고 동경을 갖지 않는 일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수많은 소설, 영화, 음악, 여행기, 음식잡지들이 파리를 예찬한다. 혁명, 자유, 관용과 같은 단어들도 파리와 맞물려 있다. 언제나 예술과 패션, 미식의 으뜸으로 꼽히며, 파리에서라면 누구라도 사랑하고 행복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 동반자인 거북과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을 때, 유럽에서 어디로 가느냐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는 물음이었다. 당연히 파리로 가야만 했고, 일정을 저울질하다가 파리에만! 있기로 했다. 그리고 파리로 가는 일본항공 왕복항공권이 모든 텍스를 포함하여 68만 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더 생각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항공권을 구매했고, 2010년 2월 26일 출발. 우리는 일본을 경유해서, 다음날 저녁 파리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알고도 당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생각 이상으로 좀이 쑤시는 일이었다. 몇 편의 영화를 보고, 몇 번의 밥을 먹고 나니 착륙할 때가 되어 파리 전체 모습이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저게 설마 파리일까 싶기도 했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에펠탑의 모습은 저게 바로 그 파리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우중충한 날씨는 우리의 설렘을 억누르기에 역부족이었다. 속된 말로 사람이 웬 수라는데, 사실 우리의 기분을 망친 건 날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사실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결국 샤를 드 골 공항 도착했고, 입국심사는 어이없으리만큼 간단하고 빨랐다. 여권에서 국가를 확인한 다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말을 건네 주고서, 바로 통과했다. 생각해보면 여기저기서 이민자들이 쑤셔 드는데 굳이 공항에서 관광객 상대로 철저히 뭘 따져볼 게 없겠군 싶었다. 우리는 시내까지 RER을 타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이때부터 경계(!)가 시작됐다. 파리에서의 소매치기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사기가 극성을 부린다는 말에 우리는 만발의 대비를 했다. 현금은 작은 크로스백에 넣어 어깨에 멘 후 그 위에 니트를 입어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코트까지 입었으니 소매치기가 아예 불가능했다. 문제는 소매치기가 아니었다. 더 웃기는 건 뻔히 다 알고도 당했다는 거다. 일단 공항에서 RER 표를 사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 하는데, 맞은 편 계단에서 흑인들이 재빨리 아래로 뛰어내려 가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 동양 관광객들 왔다고, 털러 내려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나서, 인터넷에서 그렇게 여러 번 읽은 그 수법 그대로 내려가서 당해줬다. RER 자동 발매기에서는 어린이표도 구매할 수 있는데, 흑인들의 수법은 발권을 도와주는척 하면서, 어린이표를 뽑아주고 나머지 돈을 슬쩍 챙기는 것이다. 가장 흔하고 널리 알려진 수법임에도 우리는 당했다. 거북 녀석이야 모르고 돈을 줬지만, 뻔히 지켜보고 있던 나 역시 알면서도 완강하게 굴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움을 주려 했던(사실, 사기를 치려 했던) 그 흑인 아저씨의 눈빛이 너무 호의적이었고, 그 순간 흑인은 곧 사기꾼이라고 도식적으로 생각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에 불과했고, 뽑아준 표는 역시나 어린이용 한 정거장 가는 표임을 확인했을 때, 그냥 짜증만 치밀었다. 이미 다시 받는 건 체념했고, 그 흑인 아저씨는 그 와중에도 친절하게 까페에 들어가 지폐를 잔돈으로 바꾸어 거슬러다 줬다. 되려 나는 그 흑인 아저씨보다는 돈을 건네준 거북에게 짜증을 냈고, 갑자기 짜증이 더 치밀어서 '이 XX 어디 갔어 돈 받아와야지' 하고 결심을 굳혔을 때 이미 그 흑인 아저씨는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표소 가서 이 표를 사용할 수 있냐고 물으니, 역시나 '당했구나' 라는 눈빛과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게다가 RER은 바로 탈 수 없었고, 버스를 타고 어디까지 가서 다시 타라는데, 숙소 체크인 약속 시간도 촉박했다. 그토록 시내 진입 때까지 안 털리려고 목걸이 지갑을 걸고 그 위에 니트를 입는 짓까지 했는데, 가장 흔하고 뻔한 수법에 고스란히 돈을 바친 것이 너무 짜증 났고, 이때부터는 끄물거리는 날씨까지 짜증 나기 시작했다. 막말로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었다. 자동발매기 앞에서 관광객 상대로 사기 치는 건 고전적인 방법 중 하나고, 계단을 서둘러 뛰어 내려가는 흑인들로 봤을 때는 비행기마다 그렇게 사기를 친다는 건데, 그렇다면 공항에선 도대체 왜 자동발매기에 직원 한 명을 두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항 밖의 RER 역까지 버스로 가게 된 탓에 공항과 시내 사이의 북부 지역을 볼 수 있었는데, 심란함은 더해갔다. 거의 유색인종 거주지역으로 매우 낙후된, 그야말로 미국 영화 속 할렘스러운 동네였다. 결국, 사기를 치는 몇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였다. 짐작하건대 차라리 관광객을 상대로 한 그런 사기는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정도의 사기라도 용인되지 않으면, 더 심각한 범죄나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파리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미지가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안에 모순도 존재하는 그런 도시로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래도 파리는 환상적이더라... 어쨌든 겨우겨우 RER을 타고 샤틀레 역까지는 왔는데, 이 역은 너무 복잡했다. RER과 메트로 여러 호선의 환승역인데다가 출구도 워낙 많아서, 결국 아무 데로나 나가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딴 세상이다. 따뜻한 조명에 까페, 식당들이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고,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유쾌하게 떠들면서, 식사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 파리 외곽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의 도심 한마디로 거의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갑자기 나타난 캐리어를 끈 두 명의 동양인은 제법 시선을 끌었는지, 사람들은 계속 우리를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공항에서 당한 일과 끄물거리는 날씨,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까지 파리 외곽의 우중충함과 대조되는 또 다른 풍경에 어리둥절하며,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 세계일주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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