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 전체메뉴보기
 

   
▲ 한·일 역사의 향기를 따라간 곳. 경주&교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수학여행지로 가봤을 경주와, 과거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천년고도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경주와 교토는 존재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또한 두 곳을 서로 다른 시기에 방문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깊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유난히 더웠던 여름, 살아있는 박물관인 경주와 교토를 다녀왔다.

경주와 교토는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 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유산이 많기로 유명하다. 한국은 8곳, 일본은 14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그 중에 많은 문화유산들이 경주와 교토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는 두 도시가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경주는 신라의 건국 초기(BC 57년)부터 신라가 멸망할 때(935년)까지 신라의 수도였고, 교토는 고대 헤이안 시대(794년)부터 일본이 근대시기로 접어드는 메이지 유신 전(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경주와 교토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몇 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경주에 갔을 땐 폭염주의보가 기승을 부리더니, 교토에서는 경주의 폭염을 비웃기라도 하듯 40도를 웃도는 더 큰 더위로 기운을 빼놓았다. 아침뉴스를 보니 더 가관이다. 전날의 폭염으로 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한국의 더위는 일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더워도 어쩌랴.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덥다고 마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선크림과 생수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산뜻하게 첫 발을 내딛었다.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곳. 불국사 (佛國寺)

불국사. 이 석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불교를 굳게 믿음으로써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호국불교는 신라 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여러 번의 훼손으로 지금 불국사의 모습은 과거 신라 때의 모습만 못하다고 하지만,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있기에 불국사는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 불국사 전경 - 불국사의 대표적인 모습. 수학여행 단체사진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슬렁슬렁 공원길을 따라 도착한 불국사.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왔던 기억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른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다. 변한 건 훌쩍 자란 내 모습 뿐.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외국인들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보인다. 그들은 불국사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아마도 토함산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불국사의 모습에 감탄을 했을 것이다.

불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국보20호인 다보탑과 국보 21호인 석가탑은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는데, 다른 석탑과는 다르게 독특하고 복잡한 구조를 자랑하는 것이 다보탑이라면 석가탑은 깔끔함과 웅대함을 자랑한다. 특히 다보탑은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 있어 많이 친숙한 느낌이다.

   
▲ 깔끔함과 웅대함을 자랑하는 석가탑의 모습

   
▲ 독특하고 복잡한 구조를 자랑하는 다보탑의 모습 (2008년 12월부터 다보탑은 수리에 들어갔다)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지나 대웅전 뒤뜰로 넘어가면 무설전과 비로전, 관음전이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대웅전 앞마당까지만 돌아보고 뒤뜰은 잘 구경하지 않는다. 불국사에서 유명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경내 앞부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앞마당과 다르게 대웅전 뒤뜰은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 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지금도 절로 운영되고 있다. 비로전에 있는 스님의 모습

   
▲ 무설전에서 바라본 불국사 경내 모습. 높이 솟은 석가탑의 모습이 보인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무덥지만 화창한 날씨는 불국사와 잘 어우러졌다. 한가로이 앉아 바라본 불국사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높이 솟은 석가탑의 모습에서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떠올랐다.  

교토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요미즈데라(清水寺)

기요미즈데라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설립된 절이다. ‘기요미즈’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맑은 물’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은 주변의 언덕에서 흐르는 폭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언제쯤 도착하는 걸까.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오른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기요미즈데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언덕길을 두고 양옆으로는 갖가지 상점들이 즐비해있었지만 무더위로 연신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20분쯤 올라갔을까. 드디어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데바문이 보였다.

   
▲ 구경거리가 넘치는 상점들을 구경하며 올라가다보면 기요미즈데라의 입구인 데바문이 나온다.

데바문의 색체가 화려하다. 여행하면서 본 교토의 신사나 절의 대부분은 주황색이었는데 왜 주황색인지 아직까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데바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고마이누 석상이 있다. 고마이누는 신사나 절 앞에 있는 개와 유사한 형태의 동물의 조각상인데 악마를 쫓는 의미로 세운 것이다. 어느 곳에나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신사나 절에서 고마이누를 찾을 수 있다.

   
▲ 기요미즈데라에 있는 에마(絵馬). 에마는 소원을 빌 때나, 소원이 이루어져 사례를 할 때 달아놓는 나무판이다.

   
▲ 오미쿠지. 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다. 제비를 뽑은 운세가 좋지 않을 경우 나쁜 운이 나오지 못하게 나뭇가지나 지정된 장소에 매어 놓고 온다. 저 꼬마들은 아마도 나쁜 운이 나왔나보다.

   
▲ 기요미즈데라의 본당모습. 가이드북을 비롯한 책자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요미즈데라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왼쪽 편으로 아주 작게 교토타워의 모습도 보인다.

기요미즈데라 본당에서는 교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난관에 기대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교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각국의 여행자들과 친구가 됐다. 본당은 어느새 여행자들의 만남의 장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단체로 여행 온 가족관광객부터 미국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온 중년부부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잠시나마 친구가 된다.

   
▲ 오토와 폭포

본당을 뒤로하고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뭐 때문에 줄을 서있나 봤더니 다름 아닌 오토와 폭포 때문이었다. 오토와 폭포는 세 개의 물줄기로 퍼져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여행자들은 200엔을 내고 이 물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이 물은 장수와 치료의 힘이 있다고 전해져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 기요미즈데라의 쾌청한 날씨

내려가는 길. 기요미즈데라를 둘러보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더위가 다시 몰려왔다. 그래도 올라갈 때보다는 한껏 여유가 생겨 상점도 둘러보며 쉬엄쉬엄 내려왔다. 그리고 든 한 가지 생각 ‘다음부턴 양산을 꼭 준비해야지’ 

덧붙이며: 여행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습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책을 한 권씩 들고간다. 두 권도, 세 권도 아니고 딱 한 권만.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와 교토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도서가 있어 추천한다. ^^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 유홍준,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 이혜필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한·일 역사의 향기를 따라간 곳. 경주&교토 (1)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