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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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성 가는 길에 본 풍경. 비가 온 후라 하늘이 무척 흐리다.
‘파테뿌르 시끄리’ 유적 내에 있는 자마 마지스트(금요 모스크)와, 사림 치슈티 묘, 이슬람 칸 묘 등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의 높은 예술적 안목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조차 승리의 문인 ‘불란드 문’을 보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단순히 위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에너지였다. 

그만큼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쥐고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의 예술적 감각이 없었다면 지금의 파테뿌르 시끄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꿈의 도성이라 할 만큼 규모가 엄청난 이 곳은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결국 물이 부족해지자 14년 만에 도성은 버려졌고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후 450여년이 지난 최근에야 관광지로 개발되어 다시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회랑내부에는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린 10 루피 소년 합창단들과 시장 상인들로 가득 하다.
 
게다가 회랑 내부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찍기가 힘들다. 이유는 상인들이 세운 천막들과 빨래를 널기 위해 쳐 놓은 선들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이국적인 풍경은 돌아서면 다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만든다. 몇 번이나 그렇게 시간을 멈추었는지 모른다. 혼자였다면 아마 제 시간에 그 곳을 벗어나는 게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다행히 일행을 따라 처음 들어왔던 블란드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현실의 세계로 돌아 온 나를 발견한 것이다.
 
   
해자를 건너서 아마르싱 문을 나오는 인도 관광객들과 보따리 장사꾼.
봉고택시를 타고 아그라성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조금 전 보았던 모스크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그 때부터 내 몸 속으로 아쉬움이 조금씩 흘러들어 오고 있었나 보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붉은 적사암으로 세워진 아그라 성에 도착했다.
 
악바르 대제의 황금기인 1565년에 건설된 아그라성은 밖에서 보았을 때 단단한 철옹성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마디로 이 성은 야무나 강가에 자리 잡은 요새에 가깝다. 이 성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해자를 건너서 아마르싱 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아그라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자를 건너야 한다.
한 시간 후 해자 앞 다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기사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현지인보다 10배나 비싼 표를 구입해서 아그라성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호객 행위를 하는 소년들과 보따리 장사꾼들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른 여행객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나만 유독 그들의 눈에 띄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우연히 찍힌 내 사진을 보고 알았다. 카우보이 모자에 선글라스, 거기다 비싸 보이는 5D Mark2카메라까지 그들의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아그라성 입구의 모습. 정면에 보이는 문이 아마르싱 문.
해자를 건너 아마르 싱 문을 통과하자 자한기르 궁전이 눈에 들어온다. 주위에는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건물도 보인다. 키가 큰 정원수와 잔디로 덮여 있는 궁전 주변에 다람쥐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져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앞에 온 다람쥐 두 마리가 재롱을 부리더니 저희들끼리 낄낄대며 웃는다. 망가진 내 모습이 그들 눈에도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잠시 다람쥐들과 시간을 보낸 후 자한기르 궁전을 지나 디완이암이란 일반접견실과 샤 자한의 옥좌를 보았다. 이 옥좌 뒤편에는 원래 색색의 보석들이 박혀 있었지만 침략과 도굴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옥좌와 보석이 박혀 있던 흔적뿐이다. 머릿속으로 당시 옥좌에 앉아 있는 샤 자한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의 위풍당당함을 그리는 게 어렵지 않다.
 
   
아그라성 내부의 모습.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의 모습이 마치 미로와 같다.
   
허물어진 궁전의 모습. 궁전안에 있는 홀들의 규모를 말해준다.
디완이암을 나와 야무나 강쪽으로 걸어가면 바완이라는 일명 물고기 궁전이 나온다.  현재는 궁전의 일부만 보존되어 있고 대부분 외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마저 원숭이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인듯 궁전 지붕과 담장 그리고 바닥까지 온통 원숭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원숭이들이 낯선 침입자를 보고 경계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에는 데이트 하는 연인 한쌍만 멀리 보일뿐 관광객의 그림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외관만 남아있는 궁전의 모습.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는 원숭이의 모습.
   
원숭이 한 마리가 보초병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천히 낯선 침입자를 향해 다가오는 원숭이의 모습.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의 상상주머니가 또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숭이들이 자기 구역을 침범한 인간을 향해 돌맹이를 던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때문이었을까? 갑자기 허물어진 궁전담장 위에서 처음부터 내 움직임을 관찰하던 원숭이 한 마리가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피해 천천히 야무나 강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법 거리가 생기자 뒤를 돌아보니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원숭이 몇마리가 내려와 있다.  그 중 한마리는 마치 개선장군 같은 포즈로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순간 악바르 대제의 호위무사들이 저렇게 원숭이로 환생해서 지금까지 궁전을 지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온 후 잔뜩 찌푸린 날씨 탓이었는지 모른다.  주위에 사람도 없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원인모를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온통 붉은색 건물과 바닥만 본 탓인지 시공간의 개념이 흔들렸다. 얼핏 보기에 너무나 비슷한 외관이라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것도 몰랐다. 다행히 원숭이들이 있는 건물은 아니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가까이에서 담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관광객인지 구분이 안되는 남자는 힘들게 담을 기어 오르더니 얼마 후 창문처럼 생긴 큰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올지 몰라서 한 참을 기다렸으나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디완이카스라는 귀빈접견실의 외관.
   
   
 
   
벽을 기어오르고 있던 남자는 잠시후 창문 속으로 사라졌다.
미로처럼 생긴 적사암 바닥길을 조금 걸으니 눈 앞에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탑처럼 생긴 건물안에서 그들은 야무나 강쪽을 보면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 곳은 디완이카스라는 귀빈접견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야무나 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멀리 강 건너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타지마할 3개의 돔이 보인다. 
 
여기서 수면위로 솟아있는 타지마할을 보는 것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좀 더 매력적인 타지마할을 감상하려면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이다. 강에 붉은 빛이 반사되면서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타지마할의 상층부부터 아래로 서서히 물드는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라고 한다.
 
   
야무나 강 건너 우측으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타지마할이 보인다.
 
비록 강물에 출렁이는 타지마할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꽤 오랫동안 멀리 보이는 타지마할을 지켜보고 있으니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갈증은 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타지마할을 보고 싶은 욕망이 원인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기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었다. 아그라성 내부의 모습을 한 바퀴 휘 둘러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아마르싱 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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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풍경과 상상의 부스러기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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