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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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전경
[트래블아이=양은희] 제2차 세계대전당시 독일인은 나치의 점령 하에 있던 유태인, 폴란드인, 로마인, 공산주의자, 반 나치자등을 체포해 각지에 설치된 강제수용소로 보내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또 처형하기도 했다. 그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역사적 배경이 된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수용소로 들어가는 입구인 안내소 건물

현재는 박물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들어가기 위해서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안내소로 향했다. 각국어로 쓰인 가이드북과 자료를 판매하는 안내소 외에도  간단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와 셀프 레스토랑이  있다. 안내소 건물을 빠져나오면 본격적인 수용소 관람이 시작된다.


   
수용소 입구에 써있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뜻의 문구


입구 쪽에 보면 문 위에 'ALBEIT MACHT FREI' 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 뜻은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뜻이라 한다. 글자를 자세히 보면 첫 번째 단어에 알파벳 B자가 거꾸로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우슈비츠 노동자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심을 그것으로 나타냈다는 뜻이라 한다. 수용소 입구에 붙어 있는 그림이 그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노동을 하기위해 수용소 밖을 나서는 수용자들을 묘사한 그림


입구로 들어서면 강제 노동을 위해 문 밖으로 질서 있게 나가는 수용자들을 그린 그림이 보인다. 노동을 위해 문 밖으로 나갔던 수용자들이 돌아올 땐 그 숫자가 항상 모자랐다 한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 때문이다.

이 수용소엔 모두 28동의 건물이 있고 이 건물에 최대 2만 8천명을 수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학살당한 사람이 무려 400만 명(실제로 150만 명이란 설도 있다) 이라 하니 가히 인류 최대 잔혹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수용소 곳곳에 쳐 있는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


수용소 곳곳엔 전기가 흐르는 철책이 쳐 있어 탈출은 감히 엄두도 못 냈을 듯하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2번이나 탈출에 성공해 살아난 사람도 있다하니 그 사람은 선택받은 운명 이었나보다.


   
유럽대륙 곳곳에서 수용소로 징집 되어온 사람들의 모습


본격적으로 수용소 건물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한다. 유럽대륙 곳곳에서 수용소로 징집된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보인다. 실제로 나치가 유태인이나 반 나치인들을 수용소로 끌고 올 때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 시키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끌고 왔기 때문에 이때 까지만 해도 그들의 표정이 어둡거나 그렇진 않았다한다.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사진들


복도 양쪽엔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수백만 명중의 일부인 그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 지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사진을 찍기조차 미안했다.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 중에 노동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했고 그나마 노동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대개는 3개월을 못 넘기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다.


   
나치에 학살된 여자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놓은 모습



나치에 학살된 여자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한군데 모아 놓은 전시장을 보았다. 산더미였다. 머리카락의 일부로는 카페트를 짰다하니 사람이 어찌 이리 잔인할 수 있을까 싶어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치는 수용자들을 학살할 때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그들이 가지고온 소지품을 일일이 분리수거해 한 군데 모아 놓았다.


   
학살당한 수용자들의 소지품들


사진 왼쪽 위에 있는 것은 의족이라 한다. 과연 의족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도 저리 많은 의족을 모아 놓은 것을 보니 그들의 학살 규모를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그 외 생활에 사용되는 그릇이나 컵, 바구니, 빗, 옷가지 등을 보면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이 그들이 곧 죽을 운명이란 것을 모르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활용품을 함께 가져올 리 없지 않은가. 신발과 안경 외에도 옷가지와 심지어는 아이들 장난감 까지도 일일이 분리해 모아놓은 모습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런 유품 외에도, 나치의 잔인한 생체실험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도 여러 점 있었다. 어린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실험 사진 등이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거세를 당한 채 천진한 모습으로 사진에 찍힌 4명의 남자 어린이 사진이다. 그 사진은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충격적 이었다.


   
마구간 보다 못한 수용자들의 숙소


수용자들이 잠자던 곳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곳을 보니 마치 짐승과도 같은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구간 같은 곳에 칸을 막아 짚을 깔아 놓고 살았던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짐작이 간다.


   
유태인들이 총살 당했던 죽음의 벽


수용소와 수용소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과 그 밑에 가지런히 꽃이 놓여 있는 곳이 있다. 이곳은 죽음의 벽이라 한다. 바로 유태인들이 총살을 당했던 곳이다. 이유 없이 죽어갔을 그들의 슬픈 영혼 앞에 잠시 묵념을 한다.

유태인들은 노동에만 시달렸던 것이 아니라, 처참한 감옥에 갇혀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서 있는 감옥

일명 '서 있는 감옥'이라는 곳이 있다. 사진엔 앞이 개방되어 있으나 이것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앞을 허물어 놓은 것이고 실제는 사방이 꽉 막힌 밀폐된 공간이다. 밑에 보이는 나무 문 으로 4명의 죄수를 들여보내면 앉을 공간도 없이 넷이 똑 바로 서 있어야만 할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인간으로서 그 고통을 어찌 견뎌 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곳이다. 나치 학살의 실제 현장도 가 보았다.


   
유태인 학살이 자행 되었던 실제 건물


가스실과 화장장이 붙어 있는 건물로, 가스실의 건물 위쪽에 가스를 투입하는 구멍이 보이고, 화장장의 검은 그을음은 그때의 상황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상상이 되었다. 무서웠다.


   
수용소 하늘 위에 가득 드리운 어두운 먹구름


수용소 관람을 시작 할 땐 비교적 날이 맑았지만 수용소를 한 바퀴 돌아 관람이 끝날 쯤엔 비도 간간히 날리고 있었고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내 마음 같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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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여행] 어두운 역사의 현장,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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