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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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 하이킹을 하는 꺾다리 청년.
저녁을 먹은 뒤부터 대머리 사내는 서 있던 자세를 바꾸어 틈바구니를 비집고 앉았다. 더욱 좁아진 자리에도 불구하고 우선 방귀냄새로부터는 벗어났는가 싶었더니 이제는 입 냄새가 엄청나게 풍겨나고 있었다. 종합냄새박스같은 대머리사내다. 게다가 그는 쉬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보살행심!”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어 별들을 가린다 싶더니 바람이 불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이내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트럭의 짐칸에서 어찌 비를 피할 방법이 없는 우리들은 짐을 덮고 남은 검정색의 비닐을 바닥으로부터 잡아당겨 다함께 뒤집어쓰고 비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귀퉁이를 꽉 움켜잡았다. 지저분하기도 했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뚫어진 비닐을 통하여 흙물이 머리위에서부터 온몸으로 떨어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빗물에 젖어 들어가는 몸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가 더해지자 차가운 바람에 이제는 온몸이 식어져 추워지기 시작했다. 좁디좁은 짐칸에 탄 우리는 더 이상 밀착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밀착 되어 있었지만, 이내 다들 입술이 새파래져선 달달거리며 온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비닐의 뚫어진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는 흙탕물과 칼날같이 틈새로 파고드는 바람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몸을 더욱 웅크리게 만들었다. 비닐 한 장을 다함께 뒤집어쓰고 있으니 냄새도 지독했으나 이미 냄새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글의 정취를 그나마 나름대로 느껴가며 꽁무니에 실려 가던 우리는 점점 추위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맞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어 있었다.
 
이윽고 정글을 빠져 나온 자동차는 깨끗하게 새로 닦아진 포장도로를 만났다. 비는 얼추 그쳐 있었으나 신작로를 만난 자동차가 속도를 더하자 젖은 몸으로 부딪혀오는 바람은 더욱 그 위세를 더하고 있었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자동차가 멈추어 섰다. 이제 조그만 더 가면 국경 마을인 오이아포케라고 했다. 트럭의 꽁무니에서 뻣뻣해진 몸을 추슬러 내린 나는 또다시 담배를 달라며 손을 내미는 운전사에게 참았던 여러 말을 한 번에 쏟아 놓았다. 운전사이며 차주이기도 한 그는 자동차가 멈춰 설적마다 나와 프랑스 청년에게 담배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유! (자동차를 앞뒤로 가리키며) 꽌또 피플? 꽌또 꿰스따? (돈세는 시늉을 하며, 연달아 내가 피워든 담배를 가리키며) 씨가렛? 유! 노머니? (있는대로 삿대질을 하며) 와이 노 씨가렛! 룩! (짐칸을 가리키며) 씽꼬피플 백! 노 포시블! 으잉? ”
 
(“당신! 대체 몇 명이나 태웠냐? 돈 얼마나 벌었냐? 그런데 담배도 안사고 계속 달라고 하냐? 봐라! 여기 이렇게 좁은 자리에 5명이나 실어 오다니! 으잉?…….”)
 
이때까지의 내가 아는 토막 스페인어에 영어 단어를 섞어서 차주에게 야단을 친다. 담배를 달라고 내밀었던 운전사의 손이 슬그머니 내려졌다. 옆에 섰던 꺽다리 청년이 그런 나를 향해 “가라쥬”라고 하라고 한다. 그의 말을 들어 내가 운전사를 향하여 ‘가라쥬’를 수차례 외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는다. 운전사는 무안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물러서선 프랑스 청년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나 청년은 없다며 손을 흔든다. 내가 알기로 그는 아직 담배가 반 갑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다시 트럭에 올라 출발하자 나는 꺽다리 청년에게 물었다.
 
“그런데 ‘가라쥬’가 뭔 말이냐?” 꺽다리 청년이 깔깔거리며 대답한다.
 
그건 “뻑큐”다 라고…….
 
“뻑큐? 야 그건 좀 심하지 않냐!” 나의 대답이었다.
 
‘쉣!’ 이나 ‘갓뎀’ 정도의 세기라면 몰라도 ‘뻑큐!’는 아무리 그래도 좀 심했다 싶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내친걸음이다. 달려가는 자동차의 운전석을 향해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가라쥬’를 크게 외친다. “가~라~쥬~!”
 
트럭 꽁무니의 우리는 추위와 온몸이 뻣뻣해짐도 잊은 채 크게 웃는다.
 
소각장 앞을 출발 한 지 12시간여 만에 드디어 강변에 위치한 국경마을 오이아포케에 닿았다. 시계는 새벽4시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경지대여서인지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환하게 밝히고 영업 중인 강변의 몇몇 포장마차가 마치 우리를 기다린 듯하다.
 
차에서 내린 우리들의 온몸은 뻐걱거리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비상용타이어에 오른쪽 반쪽 엉덩이만을 걸친 채로 우측 편으로 몸을 꼬고 난간을 잡고 시종일관 왔기에 허리와 옆구리가 심하게 결려오고 있었다. 움직일 적마다 찌르는 듯 통증이 전해오고 있었다.
 
   
꺽다리청년이 침대 2개가 있는 좁은 방을 4명이 함께 쓰기로 하고 20헤알에 강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숙소를 잡았다. 사실 문을 열고 있는 숙소가 그 집밖에 없었다. 침대 하나는 내가, 다른 침대 하나는 프랑스청년과 꺽다리, 그리고 그 침대들의 위쪽으로 대각선으로 띄워서 작은 청년의 해먹이 걸렸다. 짐을 내려둔 우리는 찬물샤워로 더께 앉은 먼지를 얼추 떨어내고는 밖으로 나온다.
 
새벽의 일렁이는 검은 강과 어우러지는 포장집 노점의 불빛아래에 앉아 밥과 쇠고기조림, 그리고 시원한 맥주로 요기를 겸해 도착 축하 만찬을 벌인다. 두어 명의 바지런한 걸인들이 그런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새벽커피를 사달라며 졸라댄다.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났는지 둥근달이 자유를 향한 갈망의 땅! 가이아나와의 또 다른 울타리인 검은빛으로 낮게 일렁이는 드넓은 강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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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일주 - 적도에서 정글속으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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